기도하는 사람들 / 3.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 김나래 | 2024-01-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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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86:1-17절 개역개정1.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2.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3.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9.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10.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12.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13.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17.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초대교회 수요예배 2024. 1. 17.
기도하는 사람들 / 3.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시 86편)
찬송 : 364.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구)482장], 292. 주 없이 살 수 없네 [(구)415장]
기도의 종류를 나누는 것은 그리 지혜로운 일은 아닙니다. 기도를 기본적으로 하나님과의 소통이라고 할 때 소통의 종류를 일일이 분석하고 나누는 것은 소통에 대한 진실된 자세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기도의 방법이나 자세를 배울 필요를 느끼기도 합니다.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도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고 오해에 빠질 때가 있는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과의 진실된 소통은 더욱 그럴 것입니다. 오늘은 시편 86:3에서와 같이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라고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 청원 기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려고 합니다.
1. 청원기도란?
“청원기도는 나의 현재의 관심사를 놓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물론 이 기도를 드리는 전제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입니다. 관계가 건강하지 않은데 강력한 청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나의 관심사와 문제를 가지고 가까이 나아가서 소통하는 중에 나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되는 관점 또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마치 마술과도 같은 해결책을 기대했던 마음을 버리게 되고,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세상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를 파악하게 되며, 현실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렇게 성도가 성장하고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얼굴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하나님과 그대 / 윌리엄 A. 배리)
윌리엄 A. 배리의 글은 청원기도를 아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인가 요청하는 기도를 ‘청원기도’라고 말합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의 소원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구하는 내용에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기복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는 ‘구하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구하는 내용이 지극히 현세적이고 물질적이기 때문입니다.
2. 무엇을 구할 것인가?
한국 교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김정준 목사는 짧은 자신의 기도문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이 무엇을 기도하는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기도하는 것이 좋은 일이었는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여,
이전에는 / 은혜가 시련보다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간구했고 / 제게 있는 시련은 없어지기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주여, 지금 생각하니 / 은혜만이 은혜가 아니라 / 시련도 은혜입니다. 은혜만이 아니라 / 시련도 간구할 것입니다. 은혜만 욕심 낼 것이 아니라 / 시련도 원할 것입니다. 시련에서 받는 은혜처럼 고귀한 것이 없고 / 은혜로 받는 시련처럼 보배로운 것이 없습니다.
주여, 주께서 주시는 은혜이고 / 주께서 주시는 시련이므로 어느 것을 더 사랑하고 원하겠습니까? 모두가 축복이오니 / 은혜와 시련에서 주님만 찬양하게 하옵소서.
아멘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성공을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며, 예수 닮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함께 교회가 되어 세상을 교회로 만드는 일에 헌신하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서의 성공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세상의 안일과 쾌락과 풍요를 거부하고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 충돌이 일어나고 고난을 받는 일이 있을 수 있고, 가난과 궁핍의 삶을 견뎌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나의 모든 소원이 성취되고 불편함과 부족함과 걱정과 근심이 없이 살아가는 삶을 목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직 복음의 인도하심을 받는 가운데 받을 모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견디며 성도와 교회로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 3:14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고백은 김정준 목사의 고백과 같은 맥락 가운데 있습니다.
3. 청원으로 기도하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청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의 일상적인 문제들이 기도의 제목이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의 권리입니다.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여행을 갈 때,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이 왔을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을 생각하며 기도해 봅시다.
1) 하나님의 action을 주문하지 맙시다.
청원하는 기도를 드리는 중에 우리가 자주 빠지게 되는 유혹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따라 구체적인 행동의 지침을 하나님께 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소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기도란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열매로 맺히도록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방식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의탁’해야 합니다. 청원이 ‘이렇게 해달라’는 요구가 아닌 ‘하나님께 맡기는’ 의탁임을 기억합시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님의 기도는 좋은 예가 됩니다.
2) 상황의 변화가 아닌 사람의 변화를 기도합시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으로부터의 탈출입니다. 하지만 나와 사람들의 인격적, 영적 변화가 먼저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상황에서 같은 문제를 역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의 변화입니다. 따라서 성급한 환경의 변화보다는 나를 비롯한 사람의 궁극적인 변화를 하나님께 부탁합시다.
3) 반복해야 할 청원과 반복하지 말아야 할 청원을 구별합시다.
꼭 얻고 싶은 것이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얻기까지 동일한 청원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털어 놓읍시다. 그리고 그 일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비로소 간절히 원하는 그 일에 대한 마음의 평안아 찾아올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평안이 찾아올 것입니다. 이것이 막 11:24절의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발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먹고 마시고 자고 입는 것’에 집착하지 말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에 관심하는 것입니다. 한번 구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은 먹고 자고 입는 것이라면 지속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에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원하는 일’은 하나님께 한 번 맡기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하나님이 내 삶에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일’에 대한 우리의 요청은 반복되고 지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이 우리의 삶의 변화를 통해서 삶의 현장에서 충분히 이루어질 때까지 말입니다.
4.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요 11:41-42에서 우리는 청원 기도를 드리는 성도의 기본 자세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말을 듣는다는 것은 ‘요청에 순응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귀로 듣고 마음에 담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에 대해 외면하거나 귀를 막지 않으시고 그 모든 내용을 다 듣고 계신다는 것,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까? 전능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주의 한 점 보다 못한 우리의 무익한 말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주목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소원과 생각을 들으시고 아신 후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길, 가장 선한 길을 제시하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이 믿음으로 청원 기도를 드린다면 우리는 청원하기 전에 이미 응답을 받는 기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내 삶이 충만히 성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내어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점검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 혹은 ‘나를 위한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혹은 ‘하나님의 유익을 위한 것’을 나눠 봅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제목으로 이 두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것으로 분류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묵상과 생각, 우리의 소원이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청원이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이뤄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인도하시고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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