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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사람들 / 7.이렇게 기도하라(눅 11:1-13) 김나래 20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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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11:1-13절 개역개정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초대교회 수요예배                                                        2024. 2. 14. 

 

기도하는 사람들 / 7.이렇게 기도하라(눅 11:1-13)

 

찬송가 /  374. 나의 믿음 약할때 [(구)423장],  401. 주의 곁에 있을때 [(구)457장]

 

누가복음 11장이 시작하면서 우리는 ‘기도’에 대한 독특한 상황을 만납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기도의 예를 든 것은 요한의 제자들의 기도였습니다.  즉, 요한과 제자들이 드리는 기도가 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드려온 기도가 있고, 예수님의 기도가 있습니다.  물론 11장 후반부에는 하나님과의 소통이 완전히 단절된 종교인들도 등장합니다.  굳이 그들의 기도까지 비교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다만 “왜 제자들이 요한의 제자들의 기도에 주목했을까?” 하는 궁금함은 있습니다.

 

제자들에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던 상황을 보면 그들 역시 당시 유대사회 속에서 영적인 갈급함을 느끼고 있었고, 진리의 부름에 모든 것을 버리고 과감하게 순종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삶의 연장에서 기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헌신하고 순종했는데 무엇인가 기도에서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혼자 기도하시고 예수님의 기가 막힌 소통과 능력을 아직 자신들은 힘입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당시 예수님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제자들과 함께 집단생활을 하며 신앙과 삶을 전수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에세네파’의 삶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세기 당시에는 지식과 철학 심지어 신앙에 이르기까지 한 스승과 그 스승을 본받기 원하는 제자들이 함께 공동생활을 하면서 삶을 통해서 지혜와 지식이 전파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며 복음을 가르치시고 전파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광야에서 고민하며 부르짖으며 하나님과 소통했던 같은 방식의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 기도는 바리새인들과 달랐고 서기관들과도 달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마음과 삶의 변화를 원하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세상의 소원과는 다른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를 들으면서 제자들은 우리도 그런 기도를 드리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를 배우면... 요한의 제자들보다 더 좋은 기도를 드릴 수 있을텐데.... 저 기도를 배우기만 하면.... 기도를 통해서 세상의 존경과 인정을 받을 수 있을텐데....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1. 예수님의 기도 vs. 제자들의 기도

 

` 그렇다면 당시에 드렸던 기도를 비교해볼까요?  예수님의 기도와 제자들의 기도는 어떻게 달랐을까요?

 

우선 제자들은 어려서부터 종교적 환경에서 자랐고, 자연스럽게 기도의 틀과 내용을 배웠을 것입니다.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기도가 녹아들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Oh my God'이나 'Jesus!'를 반복하는 것처럼 그들 또한 종교적 용어가 그들의 삶의 일부였을 것입니다.  내가 굳이 지각하지 않아도 입술이 습관처럼 움직여 드리는 기도가 그들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한편 그들의 기도는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 기도이기도 했습니다.  유대의 독립과 부흥을 위해 기도했으면 하나님이 이루실 때를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대한 제국의 군대 앞에 처절하게 무너졌습니다.  기도하지만 이미 패배했습니다.  내가 기도는 했으므로 나의 영적인 의무는 끝이 났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습관처럼 기도하고 습관처럼 망각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기도일 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마음과 귀를 여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원은 있으되 소통하지 못했고, 기도는 하되 응답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주체이시고 또한 기도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근본 같은 본체이시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있었습니다.  소통에서 일치했고, 그 뜻과 마음에서 일치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예수님의 기도가 일치했습니다.  그 완전한 일치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예수님의 소원은 일치합니다.  고난과 고통은 소원과 거리가 있습니다.  아들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도 십자가의 고난은 소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은 언약의 대상인 인류의 구원에 있습니다.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을 일치시킵니다.  소원이 있고, 소통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고, 삶의 순종이 있었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통해서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2. 세례요한의 제자들의 기도, 제자들의 기도

 

11장은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신 것으로 시작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가 아닌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주목했습니다.  왜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가 아닌 요한의 제자들의 기도를 보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요한의 제자들과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요한은 당시 시대를 이끄는 선지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스승으로 따랐고,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영향력을 헤롯왕이 경계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광야를 중심으로 엣세네파의 영적 회복운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들의 영적 운동의 핵심은 묵상과 기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영적인 방향을 잃고 있었고, 그들은 최소한의 경제생활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처럼 유대 사회로 진입하여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드문일이었습니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짐승의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를 띠로 동인 그들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상징하고 있었고, 그들의 외침은 죽어가는 이스라엘의 영성을 깨우는 각성의 목소리였습니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예수님과 제자들보다 영향력이나 활동의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감히 세레요한과 예수님의 기도를 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자신들도 요한의 제자들과 같은 기도, 그들처럼 영향력있는 삶을 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요한의 제자들과 같은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먼저 2-4절에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고, 낙심하지 않는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이 드려야 할 기도가 요한이나 그의 제자들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3-1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3. 요한의 기도, 예수님의 기도

 

그렇다면 요한의 기도와 예수님의 기도는 어떻게 다를까요?  당연히 두 기도는 우리의 평가를 넘어서는 참으로 좋은 기도입니다.  다만 이 두 기도는 구별점이 있습니다.

 

요한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는 참으로 고통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고, 그 뜻을 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음성을 들었지만 눈에 보이는 시험과 유혹에 흔들렸습니다.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자신이 기도하고 기다려온 메시야가 예수님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기도는 짙은 안개 속에서 좁은 비탈길을 걷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알았을 때 자신의 생명을 드리며 헌신했습니다.  그는 결국 순교했습니다.

 

예수님 또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미 하나님과의 완전한 소통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기도와 소원과 삶이 일치했습니다.  하지만 한편 예수님의 삶의 여러 정황 속에서..... 때로 기도와 소원과 삶의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의 연약함을 이해하셨습니다.  어쩌면 사랑하는 제자들과 더 오래 사역하고 싶을 수 있고, 완전한 사람으로서 십자가의 고난을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가 됩니다.  다시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은혜의 현장을 만나게 됩니다.      

 

4.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누가복음에서 소개하는 주기도문은 마태복음 6장의 기도문과는 조금 다릅니다.  말씀의 전체적인 맥락을 위해서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눅 11:2-4)

 

누가복음에서 소개하는 예수님의 기도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기도의 중심이 하나님의 뜻과 나라에 있습니다.  둘째는 이 땅을 사는 성도와 교회의 필요와 소원입니다.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의 일상의 삶과 관계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지만 이 땅에서 수많은 관계 속에 살게 됩니다.  일상의 삶에서 죄와 악의 유혹과 시험에 빠지지 않아야 하고, 모든 관계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기도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당시 수도자들은 그들만의 기도의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기도의 전승은 꽤 깊은 철학적인 사고와 문화적인 전통을 함께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깊어 보이고 풍성해보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의 배경은 그리 윤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요한의 제자들의 기도는 그들이 느꼈던 부족함을 채우는 도구일 수 있었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장 간결하고 분명한 소통의 길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들의 소원과 이 세상에서의 일상의 삶에 주목하는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제자들과 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잘 기도하고 싶고, 좋은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무엇인가 영적인 만족과 자부심을 얻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기도는 나의 자존감과 만족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소통과 소원과 삶과 관계의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고, 유혹당하지 말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쁜 사람도 누군가 간절히 간구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을 터인데.... 우리에게 그 아들을 선물로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와 소원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만나고 그 뜻으로 함께 기도하며 깊은 사귐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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