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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 2. Remember, Re-member 김나래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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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예배                                                        2024. 4. 3. 

 

십자가 / 2. Remember, Re-member

 

찬송가 : 285.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구)209장] / 278.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구)336장]

 

기도제목 : 1. 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2. 연약한 성도들의 회복을 위해

           3. 가족 수련회에 은혜를 주시도록

   4. 나바호 건축선교와 연합 여름학교를 위해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교회에서 늘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계획이 하나님께 있고, 그것은 이미 창세 전에 완성되었다는 신학적 명제에 대한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선언 또한 늘 질문의 대상이 됩니다.  “언제 어떻게 믿는가?”보다 믿었다는 사실 자체에 관심을 두다 보니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마지막에 믿는다고 고백하기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그 좋은 예가 예수님의 한 쪽 편에 사형을 당하고 있던 강도입니다.  성경은 그를 ‘강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께 자신을 의탁했고, 예수님은 그의 의탁을 구원을 얻는 믿음으로 해석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그의 삶을 예로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애쓰고 노력하여 예수를 믿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살다가 마지막 때에 이렇게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죽기 직전에 잠시 실족할 수도  있는 것이고, 베드로처럼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혀서 믿음을 부인하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인데.... 너무 불공평하고 불확실한 것 아닙니까?”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교회와 신앙을 조롱하는 말들에 대해 우리가 딱히 속 시원한 대답을 주지는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강도가 구원 받은 것은 사실인 것처럼 보이고, 성경이 그를 강도라 지칭한 것으로 보아 그가 바르고 의로운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믿는다는 말 한마디로 구원을 얻는다면, 누구나 죽기 전에 잠시 회개할 시간만 있으면 평생을 교회에 헌신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고통스러운 신앙의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논리와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오늘 십자가 위에 있는 예수님과 강도의 대화를 통해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나를 기억하소서!

 

성경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에 대한 각각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강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군중들과 같은 음성,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메시아라면 이 십자가 형들에서 벗어나 세상을 심판하고 스스로를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이 음성은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던 음성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제자들의 질문을 받을 때에도, 갈릴리 해변에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일 때에도 같은 질문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유혹 혹은 시험합니다.  로마와 유대의 병정들도 같은 말을, 예수님을 못 박도록 요구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같은 말을 합니다.  그리고 함께 죽어가는 사형수로부터 예수님은 절박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침묵으로 그에게 대답하십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의 강도는 자기 마음의 진실을 말합니다. 그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오히려 예수님을 변호합니다.  그는 아마도 갈릴리나 유대땅에서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복음을 접한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Then he said, "Jesus, remember me when you come into your kingdom.”) (눅 23:42)

 

2. 강도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

 

여기서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당신의 나라’라는 말과 ‘기억하소서’라는 부탁입니다.  강도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는 비교적 정확합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은 공포가 아닌 경외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분이면서 또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이 강도는 하나님을 경외할 이유를 그 마음과 삶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죄 없으신 주님에 대한 고백을 합니다.  자신들은 행한 일에 대한 보응을 받지만 예수님은 죄 없으시지만 벌을 받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중요한 일을 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왕으로 인식했습니다.  장차 올 그의 나라에서 자신을 기억(remember)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강도는 예수님을 왕으로, 그리고 그 나라가 임할 것에 대한 소망을 품었던 것입니다.

 

강도의 부탁을 다시 주목해보십시오.  그는 예수님께 “그 나라에서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부 탁했습니다.  ‘나를 구원해주소서’ 혹은 ‘나도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해주소서’가 아니었습니다.  ‘기억하다’는 말은 그런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뭔가 생각할 것이 많은 표현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강도의 이 말을 신앙의 고백처럼 여기셔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구원에 대한 확증으로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나를 기억해주소서(Remember me)’라는 말을 신앙의 고백으로 받으신 것일까요?

 

3.  나를 기억하라!(Remember me)

 

복음서에는 ‘기억하라’는 문장이 다른 환경에서 사용된 흔적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성찬을 행하실 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찬의 예식을 제자들을 위해 행하신 후에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눅 22:19) 

 

이 말씀을 바울은 이렇게 정리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여기서 예수님은 ‘기억한다’는 일이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주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음을 기념하는 사람은 26절에 의하면,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한번 더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다시 그 사건을 내 삶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마치 영어의 ‘remember’라는 단어의 어원이 단순히 한번 더 기억에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re-member’ 즉 ‘다시 지체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찬을 통해 주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떡과 잔을 마시면서 주님이 내 안에 다시 살아서 내가 하나님 나라의 지체요, member가 다시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두뇌의 기능으로서의 기억이 아닌 삶의 변화로서의 기념인 것입니다.  

 

4. “나를 기억하소서, 나도 기억하며 살겠나이다!”

 

예수님께서 한편에 있던 강도의 고백을 신앙의 고백으로 받으신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억하다’는 단어는 단순한 생각이나 상상 이상의 것입니다.  비록 그 강도에게는 예수님은 기억하는 변화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이미 짧은 고백으로 그의 삶에 중요한 변화가 찾아왔음을 예수님께 보여드렸습니다.  십자가, 가장 깊은 고통 가운데서 그는 가장 중요한 고백을 했고, 가장 아름다운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중요한 순간에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기억하는 사람이었고, 예수님은 그 나라에서 그를 기억하여 하나님 나라의 member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기 때문에, 괜히 열심히 평생을 헌신하는 손해 보는 삶을 살지 말고, 죽기 전에 짧은 회개와 고백이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천박한 수준의 신앙을 논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고민할 것은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강도의 고백은 어쩌면 “나를 기억하소서, 내가 기억하나이다.”라는 간절한 부르짖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이미 그의 남은 짧은 삶에서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성경이 그의 고백과 짧은 마지막 삶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의 변화가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공포와 고통을 이기고 양심과 신앙에 근거한 바른 고백을 했던 그 강도는 분명 예수님을 삶으로 re-member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믿음은 구원의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그보다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을 re-member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기억하기를 거절하고 삶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강도가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서 만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묻지 않으시고, 오직 그의 고백과 믿음에 근거하여 구원을 선포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던지, 지금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묻지 않으시고, 오직 우리의 마음과 삶의 지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 안에서 다시 기억되는 삶,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다시 하나님 나라에서 기억되는(re-member) 오늘의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은 넉넉한 웃음으로 우리에게 손 내미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 네가 너의 삶 속에서 나를 너와 하나로 받았으니(remember했으니), 나도 너를 나의 나라에서 나와 하나로 너를 받을(re-member) 것이다.  너는 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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