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기도 - 7. 아버지께 맡깁니다. | 김나래 | 2024-05-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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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24:44-49절 개역개정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24. 5. 23.
십자가의 기도 - 7. “아버지께 맡깁니다.”(눅 24:44-49) 425.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구)217장] / 384. 나의 갈길 다 가도록 [(구)434장] “하나님의 뜻에 맡깁시다.” 우리는 결정이 힘들 때, 의견이 대립될 때, 잘잘못을 판단하기 곤란할 때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책임을 피하고 싶다”, “나는 모르겠다...너희가 알아서 해라”, “어떻게 되겠지....”, “더 이상 싸우지 말고 이제 집에 가자...” 등등의 말들을 포괄적으로 대표하는 말로 사용하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다는 것과 예수님이 바로 죽음 직전,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지고 죽음의 깊고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기 직전에 사용하셨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문장을 대충 사용하는 것에 대해 좀 고민해 봐야 합니다. 1. “하나님께 맡깁니다.” - 위로와 회피, 또는 포기?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맡깁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는 다음의 몇 가지 상황입니다. 첫째 임종을 지켜 볼 때입니다. 믿음은 있지만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떠나는 성도에게, 그리고 그를 떠나보내는 가족에게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면서 우리는 이 말을 합니다. “이제 이 영혼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이 위로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또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이렇게 말합니다. 함부로 대답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심각한 어려움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성도들에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평강을 얻으라.”고 권면하기도 합니다. 내가 더 이상 어떻게 도와줄 수 없고, 딱히 다른 답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대화를 종결하는 좋은 방버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맡긴다.”는 표현은 포기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맡겨 버렸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손을 털어버리는 장면을 많이 봅니다. 이 말이 정말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탁의 의미를 획득하려면 힘이 있고 가능성이 있을 때 순종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은 ”나는 이제 포기했습니다“는 말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이 표현을 사용하셔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거나 격려하고, 혹은 상황에 대한 해석이나 도움을 줬던 경험, 그리고 손을 털었던 경험이 있다면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그 때 여러분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리고 그 말의 결과로 그들은 위로와 격려를 받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내가 포기하고 난 후에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까요? 따라서 이 말은 가장 신앙적일 수 있지만 또한 가장 비신앙적인 변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통해서 정작 우리가 책임지고 도와야 할 슬픔을 외면하기도 하고,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회피하거나 도피하기도 하고, 내 뜻과 욕심대로 살다가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께 모든 책임을 넘기는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말이 이러한 부정적인 가능성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우리를 맡기는 믿음의 고백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중심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2. 아들만이 할 수 있는 기도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누가복음 23:46) 예수님은 사역의 마지막인 십자가의 사건을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다가올수록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더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들로서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친밀하면서도 비장한 소통의 방법이었습니다.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의해 십자가를 지기로 결정하셨고, 이제 그 사역의 마지막을 하나님의 손과 마음에 온전히 맡기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 호흡, 이 땅에서의 마지막 사역이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까지 맡기는 기도로 끝난다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과 예수님이 얼마나 깊은 친밀감과 신뢰를 서로에게 보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단면이 됩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고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음을 고백하셨던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을 맡기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주님께서 이 기도를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드리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책임을 회피하는 일도 아닙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으므로 손을 터는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 기도는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음이라는 현실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인류에게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사역, ‘다리를 놓은 작업’입니다. 요 14:6에서 요한은 아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고 증거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또 요한복음 6:44에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인데, 하나님 또한 자신에게 올 수 있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성부와 성자의 영적 일치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의 뜻이 되고 길이 되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으로 섬겨야 할 사역이 끝났습니다, 다 이루었습니다. 다 섬겼습니다. 사람으로 남은 힘 하나 없고, 남은 피 한 방울 없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와 허물을 내 안에 담아서 아버지께 맡깁니다. 아버지께 내 안에 있는 모든 영혼들을 부탁합니다.” 성도와 교회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거룩하신 뜻과 헌신에 의해 결국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으로 아들이 세상에 왔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이제 아버지께 자신을 맡김으로 그 뜻 가운데 구원하기로 작정한 모든 영혼을 함께 맡기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죽음을 단지 다른 사람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보편적인 모델로 간주한다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일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그런 죽음으로 선한 삶을 마감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을 단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것 또한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증거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본받을 만한 사람은 많습니다. 얼마나 당당하고 확신 가운데 죽어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 안에서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일들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 모든 죽음과 다른 차원의 죽음입니다. 하나님이신 그 분은 피조물에 의해 죽임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피조물의 죄와 허물은 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피조물에 대한 사랑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으로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아들의 희생은 아버지가 아들의 희생의 근거가 되는 모든 생명을 구원하는 이유가 됩니다. 아버지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는 기도는, 그래서 구원론적인 기도이면서 오직 하나님의 아들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3.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시편에는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와 비슷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시편 13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절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시 13:1-4) 이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절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자신의 절망으로 깨뜨리고 싶은 유혹도 느낍니다. 때로 사람의 인생은 이런 위기 속에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곧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시 13: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한다”는 말과 “내 영혼을 주께 맡깁니다.”는 말은 서로 같은 내용의 고백입니다. 시편 31편에서는 이것이 이렇게 고백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시 31:1-5) 시 31편은 좀더 성숙하고 건강하게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나의 영을 주이 손에 부탁합니다.”라는 고백을 통해서 자신의 생명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합니다. 사망의 위엄이 자신의 연약한 삶을 뒤덮고 있을 때에도 자신은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여 이 사망의 시간을 지나가기를 원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편 31:5와 같은 고백을 삶의 다른 위기가 아닌 죽음의 고개를 넘고 있는 십자가 위에서 합니다. 이 고백 이후의 삶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편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심깁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영혼을 책임지며, 아들과 함께 아들의 희생의 이유가 되는 모든 생명의 영혼을 책임집니다. 그래서 아들의 기도는 아버지의 마음에 심긴 시편이 되어 생명의 향기를 온 세상에 불어넣고 있습니다. 4. 맡김, 연합으로 가는 길(롬 6:5) 로마서 6:5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맡김’이 다르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개념을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설명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5)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심으로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루셨던 것처럼 성도와 교회는 그리스도의 세상에 대한 죽음과 같은 죽음으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됩니다. 내 삶에 대해 나의 욕심과 생각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은 나를 포기하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는 일이라는 사실을 발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말씀을 따라서 담대하게 자신의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맡김’의 삶, ‘연합’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 그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성취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삶을 결단하고 나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연합’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때로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버려지는 듯 하고, 때로 그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 하고, 때로 그것은 외롭고 힘든 여정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님과의 영적 연합에 이르는 바른 길입니다. 그리스도와 내가 함께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십자가의 길, 주님은 기도로 시작하셔서 기도로 마치고 있습니다. 그 기도는 철저한 순종의 기도이면서 내려놓음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을 주님과 함께 걷고 싶습니까? 우리의 여정의 끝을 하나님 아버지와의 연합으로 마치고 싶습니까?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면서 하나님께 우리를 맡기시는 주님의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그 길 위에서 교회를 만나며 성도를 만나며 서로를 만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24. 5. 23. 십자가의 기도 - 7. “아버지께 맡깁니다.”(눅 24:44-49) 1. “하나님께 맡깁니다.”라는 말의 의미 1) ( )할 때 2)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고 대화를 ( )할 때 3) ( )의 다른 표현 4) ( )의 고백과 의탁 2.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 - ‘( )를 놓은 작업’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 )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누가복음 23: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 )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 ) 수 없으니.....”(요 6:44) 3.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 )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시 13:1)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 )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시 13:5) “여호와여 내가 주께 ( )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 )하나이다....”(시 31:1-5) 아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 )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심깁니다. 4. 맡김, ( )으로 가는 길(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 )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 )한 자도 되리라”(롬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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