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부모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30대 중반의 J는 지금 직장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그에게 어떤 Project를 맡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 일을 맡고 싶지가 않습니다. 직장에서 요구하는 그 일은 자신이 완벽하게 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사는 “최선을 다하면 되지!”라고 말하지만 J에게 있어서 ‘최선’이라는 말은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최고의 결과, 자신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일에는 손을 대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직장에서의 요구와 J의 입장은 팽팽한 평행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회사에서 J의 업무 능력에 대한 평가는 아주 높습니다. 그에게 맡겨진 일은 언제나 좋은 결과로 끝났습니다. 다만 가끔 J는 직장의 상사들이나 동료들과 일 때문에 논쟁을 벌이곤 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분명치 못한 태도나 실수에 대해 매우 민감했고, 결국 함께 시작했던 일을 혼자 끝내게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가끔 자신이 속한 회사가 동료들의 나태한 근무 태도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자신이 최선을 다해 일한다고 해도 자신의 노력의 대가를 다른 사람이 나눠 가진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J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20대까지 매를 맞은 경험이 있습니다. 학력에 있어서나 사업에 있어서나 교회에서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조금의 허물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J의 아버지는 아들에게도 언제나 완벽한 결과를 원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그는 한 때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그는 ‘아버지’와 ‘자신’을 발견합니다. 가끔 자녀들에게 무서운 얼굴로 소리치고 있는 자신에게서 엄한 얼굴로 매를 들고 있던 ‘아버지’를 보게 됩니다. 아직 어린 자녀들이 아빠의 분노 앞에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의 교회 생활은 그리 평탄하지가 않습니다. 그는 아주 ‘원칙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나 직분자들이 성경이 말하는 원칙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습니다. 표면적으로 같은 교회를 섬기는 교우들과 좋은 관계들을 맺고 있긴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교회 생활은 즐겁지가 않습니다.
한편 J는 가끔 깊은 고민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과 자기 자신의 삶 사이에 어떤 간격이 있음을 느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간격을 혹 알지는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그 간격을 받아들 일 수밖에 없는 자신이 싫기도 합니다. 그 간격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메워질 때 한없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지만 결국 극복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을 때 감당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J는 표면적으로는 잘 훈련되고 헌신된 교회의 집사입니다. 능력 있는 직장인입니다. 책임성 있는 가장입니다. 하지만 그는 늘 만족과 불만족 사이를 오고 갑니다. 그는 늘 불안합니다. 그는 늘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는 결국 행복하지 않습니다.
J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에게 무엇이 있으면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눈앞에 있는 이 project를 해 낼 수 있는 능력일까요? 높은 지위와 명성일까요?
이미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일을 이뤄왔고, 많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잠시 우월감을 주었을 뿐 다시 그는 자신을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더 많은 능력일까요? 더 많이 인정받는 것일까요?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면 만족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고후 12:9에서 J에게 자신이 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간증합니다.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하나님의 능력은 바울의 완전함 가운데 충만히 역사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울의 연약함, 바울의 어리석음, 바울의 부족함 가운데 더욱 빛나고 아름답게 드러난 것입니다. 바울이 만일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이루고자 했다면 그의 부족한 부분(weakness)만 드러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이미 그 부족한 부분을 마음껏 드러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바울의 연약한 부분에 찾아오시고 그 연약함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비로소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같은 구절을 New Living Translation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My power works best in your weakness."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은 우리가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채워주시는 은혜를 소망할 때 가장 크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J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울의 깨달음입니다. 그에게 매를 들었던 그의 아버지도, 아들에게 소리치는 자신도, 그리고 이 땅에 그 누구도 ‘완벽’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 완벽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완벽을 넘보기보다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케되기 위하여 보다 성숙하고 잘 준비되고 그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 늘 노력한다면 그의 삶은 어느새 기쁨으로 충만하여 질 것입니다.
만족한 삶을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나의 부족을 드러내십시오. 하나님이 그 부족한 부분에 임하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누구나 다 그 정도의 부족함은 가지고 있습니다. 자녀의 삶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까? 더 큰 능력, 더 성공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용납함으로써 자녀가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연약과 부족’에 임하셔서 하늘의 은혜와 긍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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