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자녀의 선택에 간섭하기
가끔씩 나이 30세 혹은 40세가 넘어서 자신의 전공이나 직업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음을 봅니다. 비로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거나 그 동안 하고 싶었지만 참고 있었던 일을 시작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이런 결단을 하는 분들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가족들의 삶에 치명적인 위기를 안겨 주는 일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하고 즐길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런 선택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안정되고 보장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30-40대의 가장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때입니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그 일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일을 원하지 않지만 버릴 수도 없는, 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왜 그런 선택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요?
상담을 시작할 때 반드시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원하는가?’에 관련된 질문들입니다.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부부 관계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이 상담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등등의 질문을 던져 봅니다. 대부분의 피상담자들은,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대답하기를 어려워합니다. 혹은 원하는 것을 말한다고 해도 구체적이지 않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원인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그 원인 중에 하나를 ‘자녀의 선택에 대한 부모의 간섭’에서 찾고 싶습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보다 좋은 선택을, 보다 유익한 삶을 살기를 소망하지요. 기대에 부푼 부모들 앞에서 자녀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보다 나은 선택’을 강요 받습니다. 돌이 되면서 어린 아기 앞에 실과 붓과 돈 등을 놓고 선택을 요구하고 그 선택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 거리로 삼기도 하지 않습니까? 이후 자녀들은 부모 앞에서 무수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이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부모의 기쁨 사이를 고민하게 되고, 만족할 수 없는 자녀의 선택을 참지 못하는 부모는 간섭하고 가르치고 배려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더 낫잖아. 이걸 골라.”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겠니? 장래 희망이 그게 뭐야!” “이걸 입어봐. 훨씬 보기 좋구만” “뭐가 되려고 그러니? 아빠처럼 평생 장사꾼이나 할래?” “엄마가 어련히 알아서 했겠니. 너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
자녀들은 이런 부모의 간섭의 과정을 통해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을 마음에 쌓아두게 되고 선택의 책임으로부터 피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 어떤 문제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으므로 책임 또한 지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그 책임은 분명 자녀에 대한 사랑으로 오랫동안 자녀의 선택에 간섭해왔던 부모에게 있습니다.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속 시원히 밝히지 못하고 무엇이 더 중요하며 무엇이 더 시급한 문제인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성장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훈련과 중요한 것을 구별하는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청소년기를 거쳐서 성인이 되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린 자녀들일수록 그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기준이 뚜렷합니다. ‘하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사회적으로 학습한 것들과 주변 환경에 의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모든 선택의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선택을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에게 적합한 것’ 그리고 ‘보편적으로 유익한 것’ 등의 기준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익히는 일입니다. 자녀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여러분의 자녀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자녀는 그 소원을 분명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알고 있습니까?
“거리를 걷다가 지니가 들어 있는 요술 램프를 발견했다. 어떤 소원을 말할 것인가? 엉뚱한 선물을 받지 않으려면 소원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의 승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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