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대결할 것인가? 가르칠 것인가?
지난 해 하반기에는 독특하게도 자녀를 군사학교(military school)에 보내고 싶어하는 부모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가정에서는 도저히 통제되지 않고 부모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지도 않기 때문에 무엇인가 다른 방법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결정에 대해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사실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군사 학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가정에서 해결되지 않는 자녀 교육의 문제를 다른 곳에 위탁한다는 것도 쉽게 동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동의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군사학교에 자녀를 보내고자 하는 부모님들의 ‘동기’ 때문입니다.
성호(가명)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전문직에 종사했던 어머니는 하나뿐인 성호를 잘 가르쳐 보겠다고 성호와 함께 미국으로 왔습니다. 어려서 아버지의 유학 생활 중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성호는 영어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도 그럭저럭 잘 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성호의 문제는 ‘관계’에서 드러났습니다. 혼자 자라오면서 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성호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같은 관심과 사랑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한국에서 온 자기 중심적인 성호를 그리 편하게 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성호는 그런 친구들의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는 친구가 어떤 운동을 하면 그 운동을, 컴푸터 게임을 하면 그 게임을, 유행하는 옷을 사면 자신도 그 옷을, 특정한 음악을 좋아하면 자신도 바로 그 음악에 빠져 들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관계가 만들어질 때까지 그 친구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시간과 마음을 다 쏟아 부어버렸습니다.
그런 성호를 보는 어머니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보기에는 그리 좋은 친구도 아니거니와 그 정도의 친구와 친하게 지내보려고 저렇게까지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공부나 취미 생활에 쏟아 부어야 할 시간을 친구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호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표현하지 못했던 모든 분노와 스트레스를 어머니에게 쏟아 놓았습니다. 혼자 자라면서 늘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에 익숙해 졌던 성호가 자신에게 무관심한 친구들의 관심을 얻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와 상한 자존심에 대한 짜증과 분노가 어머니에게 집중되었던 것입니다. 성호와 어머니 사이에 거의 매일 반복되다시피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말이예요, 지 친구들한테 하는 것 반만 제게 좀 해보라고 하세요. 아니 이건 하녀한테도 이렇게 하지는 않을 거예요. 내가 왜 미국으로 왔는데…. 저 하나 공부시켜서 성공하게 만들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고생인데 왜 이렇게 엄마를 못잡아 먹어서 야단이냐구요. 아니 그 친구들이 그렇게 중요해요? 그 친구들이 밥 먹여주나요?”
매일 성호와의 ‘전쟁’에서 지친 성호의 어머니는 얼마 전에 군사 학교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이렇게 철 없고 규범 없이 사는 성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해 줄 것 같았습니다. 부모를 존경하기는커녕 고마워 할 줄 모르는 이 철딱서니 없는 녀석이 그 학교에 가면 엄마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정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게 될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성호의 아버지와도 의논을 마쳤습니다. 성호의 어머니는 그 학교에 대한 정보를 잔뜩 들고 상담소를 찾아왔습니다. 한번 세상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호의 어머니의 의견에 흔쾌하게 동의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군사학교에 보내시겠다는 동기에 몇 가지 의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의외로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와 ‘대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그래, 누구 말이 옳은 지 한번 보자!” “그래, 네가 그렇게 얼마나 버티는 지 한번 보자.” “어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고생 실컷 하고 눈물이 쏙 빠져야 부모 고마운 줄 알 테니까…!”
물론 이런 말들은 저 역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듣고 또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말을 들을 때 겁이 나거나 반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하게 내 생각과 판단을 움켜쥐게 되고 내가 옳다는 것, 내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옛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 말이 그리 틀리지 않은 말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부모는 자녀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고 부모의 뜻이 자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의지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가끔씩 자녀를 군사학교에 보내시겠다는 분들을 만납니다. 전혀 통제되지 않고 규범 없이 사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모든 분들에게 제가 반드시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를 교육하고 가르칠 의무는 먼저 가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분노나 실망, 당황스러움 때문에 자녀를 가정 아닌 어려운 환경 속에 밀어 넣기보다는 좀 늦고 좀 힘들겠지만 부모와 가정이 먼저 변화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말씀 드리기도 합니다. 자녀와 결투를 벌이는 것보다 자녀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고, 자녀를 어려운 환경으로 밀어 넣어서 복수(?)하기 보다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의 좀 더 차갑고 깊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