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가 누군지 알아?" | 이응도 목사 | 2011-10-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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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가 누군지 알아?"
그리 길지 않은 미국 생활 가운데 교포들을 만나면서 정말 안타까웠던 것 중 하나는 이민 사회가 지극히 과거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향수를 가지는 것이야 당연합니다. 하지만, 많은 한인들이 한국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고, 미국에 오기 전에 어떻게 성공했었다는 사실을 오늘 자신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자기 삶에서 가장 화려했던 날을 중심으로 자기 스스로를 평가하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평가해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일당을 받고 살건, 주급을 받고 살건,오늘 일터에서 미국 사람에게 무시를 당했건, 영어를 못한다고 자녀들과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건, 외롭고 서러워서 날마다 눈물을 흘리건 나는 과거에 한국에서 이런 사람이었다… 내가 미국에 오지만 않았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평가해 주기를 강요하고 그렇게 평가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합니다. 현재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면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서 그와 자신을 비교하고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 합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을 만나면 무시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의 성공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과거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 과거를 그리워하고 과거를 자랑하는 사람이 과연 건강하고 든든한 오늘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상담을 마친 W선생님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어떻게 사나.... 한숨을 쉬는 분이었습니다. 저녁에는 술 한잔 하지 않으면 잡생각이 나서 잠들 수 없습니다. 요즘은 친구도 만나기 싫고 아내의 다정한 음성도 부담스럽습니다. 가끔 멀리 있는 자녀들이 보고 싶긴 하지만, 막상 자녀들이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면 싸워서 돌려보냅니다. 왜 사는 것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생기 가득 찬 눈을 반짝거리면서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한국에 있을 때 대학교수로 어떻게 인정 받았었는지, 어떤 연구를 했는지,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할 때에는 얼굴에 환한 자신감과 웃음이 번집니다. 자신보다 못했던 동기들이 어떻게 출세를 했고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이 어떻게 한국의 지도자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할 때면 얼굴에 희열은 극에 달합니다. 그분에게 있어서 제일 신나는 일은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를 들려주는 일이요, 반면 제일 괴로운 일은 오늘의 현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가 끝나면 관계가 끝나는 만남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술이 친구가 되고 자기 안으로 갇혀 버린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의 지혜서 중에 하나인 전도서 7장 10절에는 ‘옛날’과 ‘오늘’에 대한 지혜자의 권면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에 가장 잘 적용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땅을 소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날마다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하며 보호하고 있었고 날마다 내리는 만나와 때를 따라 주시는 메추라기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과거를 그리워합니다. 고난과 시련이 다가오면 모세를 원망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었다면 이런 위험은 당하지 않았을 것인데 모세의 말을 듣고 광야로 나와서 이렇게 죽게 되었구나. 차라리 이런 고생을 하지 않는 애굽이 더 낫지 않았느냐!” 그들은 울부짖고 원망하고 후회하고 낙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망 그대로 그들 모두는 광야에 자신들의 뼈를 묻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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