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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 아들에 대해서 말하지 마!” 이응도 목사 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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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 아들에 대해서 말하지 마!”

K 집사님 부부는 얼마 전에 교회를 옮겼습니다. 미국에 온 지 이제 4년, 벌써 세번째 교회를 옮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교회를 옮기게 된 이유는 다른 두 번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은 아들 문제였습니다. K 집사님 부부에게는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첫째는 늘 두 분의 걱정거리였습니다. 잦은 병치레를 할 뿐 아니라 주위가 산만하고 독점욕에 강해서 늘 사소한 말썽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학교에 불려갔던 K집사님 부부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큰 아들의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하면서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내 놓았던 것입니다. 그날 K 집사님 부부는 선생님과 크게 다투었습니다. “정신과에 가보라니요? 우리 아들이 정신 병자라도 된다는 건가요? 아직 어려서 뭘 몰라서 그런건데 선생님이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정신병원에 가라구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어요!” 그리고 K집사님 부부는 한국보다 교육 환경이 좋은 미국으로 오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미국에 온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부모가 맞벌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언어를 배우는데 심각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는 K집사님 부부는 자녀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컴푸터 게임과 T.V.에 아이들을 맡겨 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큰 아들의 언어 사용 문제는 아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둘째는 쉽게 영어를 배웠고 지금은 학교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6학년에 올라가는 큰 아들은 학교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선생님 혹은 친구들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었고, 집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면서 부모님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계속 징계를 받고 있었습니다.


큰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또래가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교회를 처음으로 옮겼던 K집사님 부부는 그 교회에서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큰 아들이 교회의 Youth Group(중고등부)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로 옮겼지만 그곳에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작은 교회는 그래도 세심한 신경을 써 줄 것 같아서 옮겼는데 지나친 관심과 간섭 때문에 도리어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에 교회를 옮길 때는Youth Group의 담당 교역자와 큰 갈등이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이 큰 아들의 증상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하여 몇 가지 듣기 싫은 말을 한 것입니다. 여자 집사님은 교회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전도사님과 다투었습니다. 자신이 상처를 받은 만큼 전도사님에게도 상처를 크게 줬습니다. 이제 새롭게 옮긴 교회에서 두 집사님은 과연 성도들이 자신의 아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특히 Youth Group에서 큰 아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주시하고 있습니다. 혹시 누구라도 아들에 대해서 좋지 않은 말을 꺼내기라도 하면 절대 그냥 넘어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민 가정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녀중심적인 가정’의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K집사님의 가정 또한 그렇습니다. 그 가정이 이민을 결정한 것도, 열심히 일하는 것도 모두 자녀를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를 사랑하는 모든 부모가 자녀에게 유익한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K집사님 부부는 자녀를 정말 사랑하지만 자녀에 대한 지나친 연민과 사랑으로 오히려 자녀를 해롭게 하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의 문제를 객관화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큰 아들의 미처 성장하지 못한 성품과 자신들을 동일시하면서 마치 웅크린 고슴도치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만약 K집사님 부부가 큰 아들의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말 아프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자신들의 자녀 양육에 잘못된 점이 있지는 않은지 점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문제가 있을 때마다 피하고 옮기고 대신 싸우기보다 문제를 직시하여 아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무조건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엄한 부모의 모습으로 자녀를 다스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담을 하다 보면 자녀들의 문제를 알면서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주변 환경을 비난하고 자녀의 친구들에게 책임을 떠 넘깁니다. 자녀의 삶이 개선되기를 원하면서도 자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자녀를 그 잘못된 삶 가운데 버려두겠다고 결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중한 우리의 자녀, 바른 생각과 건강한 정서를 가진 자녀로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자녀에 대한 지나친 연민과 사랑, 자녀에 의해서 결정되고 움직이는 가정 -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약점을 보완하며 원만한 인격으로 성장시키는 일은 때로는 뜨거운 사랑보다 차가운 이성을 필요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차가운 이성이 자녀의 인격적인 약점을 도려내고 성숙한 성품의 새 살을 돋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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