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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경적 교제는 가능한가? 이응도 목사 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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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경적 교제는 가능한가?

“그리스도인의 사귐보다도 사귐에 대한 자기의 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본래의 뜻하는 바가 정직하고 진지하고 희생적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그리스도인의 사귐을 파괴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리스도인의 사귐을 꿈으로 그려보는 사람은 하나님이나 남이나 자기에게 자기의 꿈을 이루자고 요구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의 사귐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생각하고 사람들이 그의 꿈에 복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무엇이나 그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것을 그는 실패라고 말합니다. 그의 꿈이 부숴지면 사귐은 깨어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그는 형제를 비난하다가 하나님을 비난하는 사람이 되고 나중에는 절망 상태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과 함께 사귀는 생활로 들어갈 때 요구하는 자로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서 받는 자로서 들어가야 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신도의 공동생활’ P.32-33

지난 주에 본회퍼의 책을 읽다가 이 구절에 마음이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귐’이라는 말이 마음 깊은 곳을 찔렀습니다. 그 말에서 마음 한편으로는 감사가,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 깊은 곳에 아릿한 아픔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민 사회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사귐에 대해서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민자로서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것 중 하나는 이민 사회에서 좋은 친구 한 사람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많은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고 매일 반복되는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부분 이민자들은 서로가 지친 마음과 지친 몸으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상처가 깊어 보이고 자신이 입은 손해가 커 보이기 쉽습니다. 나아가서 피해의식으로 칭칭 자신을 감싸고 주변의 모든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가장 슬픈 것은 이런 인간관계, 이런 만남이 교회 안에서도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성도의 교제’와 ‘교제에 대한 성도의 기대’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본회퍼가 말하는 ‘성도의 교제’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나누는 것 자체에 어떤 기쁨이나 의미를 두는 것을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성도와 성도와의 관계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고 그 십자가가 있으므로 성도의 평화의 사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이루게 하시고 다른 성도를 만나게 하시고 경건한 사귐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의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회퍼는 “다른 그리스도인과 함께 사귀는 생활로 들어갈 때 감사하면서 받는 자로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남 자체에 기쁨이 있고 의미가 있는 이유는 그 만남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십자가가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만남에는 그 만남에 대한 ‘기대’가 선행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만남을 가능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의 기대와 꿈이 드러나는 만남이 있습니다. 자신과 만남을 가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대와 꿈에 복종해 줄 것을 요구하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거절감을 느끼고 분노하게 됩니다. 본회퍼가 언급한 것처럼 성도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감사보다는 더 많은 사랑과 관심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를 앞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민 교회에서는 ‘만남에 대한 기대와 꿈’이 ‘성도의 교제를 통해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앞서고 있는 것을 봅니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고 그것이 반복될 때마다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분노, 그리고 더 좁아진 마음과 더 두터워진 벽을 가지게 됩니다. 교회와 교회가 분열하고 성도와 성도가 분열하는 모습을 봅니다. 늘 긴장하고 있는 삶, 늘 경계를 풀지 않는 수많은 만남들을 봅니다. 만남을 통한 평안과 기쁨과 행복보다는 자신의 기대와 꿈이 거절될 지도 모른다는 경계와 두려움으로 무장하고 있는 분들을 봅니다. 그리고 그 속에 저와 여러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가 되셨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부정적인 벽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만남 자체가 감사하고 얼굴을 대하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전쟁터와 같은 이민 사회 속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만이, 감격만이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주님의 은혜가 날로 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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