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16! | na kim | 2016-02-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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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2:42-47절 개역한글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015. 1. 24. * 본 문 : 사도행전 2장 42-47절 * 제 목 : “응답하라, 2016!” 저는 좀 특이하게도 어떤 노래를 들으면 냄새가 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제가 20대 초반 한참 감수성이 풍부하고 고민이 많았을 때 들었던 노래들이 그렇습니다. 혹시 ‘다섯 손가락’이라는 그룹 아십니까? ‘새벽기차’,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팀입니다. 아주 가끔... 그 노래를 들을 때는 저의 20대 시절 냄새가 납니다.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는 좀 어둡고 습한 냄새입니다. 비 오는 날 자취방 한 구석에서 나던 냄새, 라면을 끓여 먹고 난 다음 설거지를 하지 않은 냄비와 그릇들이 한 쪽 구석에 있고, 읽다만 책들이 그 옆에 쌓여 있고, 친구들이 오랫동안 빨지 않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자고 있는... 그런 방에서 나던 냄새입니다. 최근에 제가 그런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서 본 드라마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본 것은 아닌데, 워낙 언론에서 야단을 해서 궁금했었습니다. 그리고 전편을 다 보고 말았습니다. 바로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였습니다. 제가 그 드라마에 집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노래’였습니다. 저의 20대와 함께 했던 노래들이 계속 배경음악으로 나왔습니다. 특히 김창완이나 전인권의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저절로 눈이 감아지고 가슴이 울렁울렁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그 드라마는 ‘이야기’에 강점이 있었습니다. 함께 어깨를 부비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야망이나 성공이나 불륜이나 막장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경험했던 슬픔들, 기쁨들을 보여줬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아파했었는지,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줬습니다. 특히 이 드라마는 한 골목에 살았던 4가족이 어떻게 서로를 의지하고 돕고 함께 성장했는지를 담담한 어조로 들려줍니다. 그때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사람도 변하고 시대도 변하고 거리도 변하고 그 골목도 재개발되어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성장하게 했던 삶의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 안에 남아 있단다... 정말 그렇단다....라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1. 그때의 기억들 생각해보면 20대에는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85년도에 대학에 들어가서 매일 최루탄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교문을 들어서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했었습니다. 사회가 구조적으로 변화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저도 최루탄을 뒤집어쓰면서 학교 교문과 거리를 뛰어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 소위 운동권 선배들이 제게 붙여준 별명이 있었습니다. ‘예수 환자’였습니다. 아무리 사회 과학 서적을 읽고 토론을 하고 소위 의식화 교육을 해도, 아무리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던져도 제가 던지는 질문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선배들에게 던졌던 질문, 풀리지 않았던 의문은 늘 저의 신앙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변하고 사회가 발전해도 사람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죄성에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요...라는 것이 저의 질문이었습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토론할 때 저의 질문이 항상 우리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죄의 본성에 대한 문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말문이 막한 선배들이 저를 보면서 정말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응도 이 녀석은 정말 환자야, 환자... 예수 환자야...”라고 조롱 혹은 비난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 4학년 5월에 신학대학원을 가겠다고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내려놓았을 때... 결국 예수 환자는 어쩔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았었습니다. 제가 계속 예수 환자로 저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말씀 드린 대로 결국은 ‘사람의 죄성’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가 아무리 선진화되고 민주화가 된다고 해도 결국은 죄 많은 사람의 본성이 사람 사는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이 만드는 모든 제도, 사람이 만드는 모든 사상에는 부정할 수 없는 죄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완전한 선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제가 계속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죄성이 극복되고 영적인 자유, 관계에 있어서의 자유, 사람을 얽매고 있는 모든 세상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는 사회의 모델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과 관련이 있습니다. 2. 초대교회(初代敎會)의 추억 오늘 본문의 말씀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묵상한 것은 대학 1학년 때 훈련을 받았던 C.C.C.였습니다. 부산대학교는 금정산 기슭에 있습니다. 학교 교정의 중간을 흐르는 계곡이 있는데 ‘미리내골’(사진 1,2,3)이라고 불렀습니다. 계곡 곳곳에 동아리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하고 ‘서클 파크’라는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C.C.C.에서도 계곡 좋은 자리에 한 20-30명 앉을 수 있는 터를 마련해서 자주 모임을 했습니다. 특히 매일 아침 수업이 시작되기 전 8시에 모여서 Q.T.를 하고 잠시 기도회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첫 학기에 거의 매일 아침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이 말씀을 함께 읽고 한 선배가 꿈을 꾸듯이 초대교회의 모습을 설명했습니다. 날마다 교회에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서로 아낌없이 필요에 따라 물질을 나누어서 아무도 궁핍한 사람이 없고....성도들이 서로 만나고 교제하기를 즐거워하고....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이 항상 나타나고.... 아무리 로마의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서로 말씀으로 위로하고 섬기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칭찬하고 부러워하고, 서로 교회가 되고 싶어 해서 날마다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어떤 사회가 이런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이상향도 이런 아름다운 모습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침에 맑은 시냇물과 시원한 계곡 바람이 불어오는 미리내골에서 저의 마음에는 저를 지키는 아름다운 영적인 추억 하나가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3. 기억의 목적 하나님은 왜 초대교회의 이런 모습을 성경으로 기록하셨을까요? 성경의 기록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교회가 가진 공통의 영적인 기억입니다. 교회는 이 기억을 추억하며 그런 공동체가 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합니다. 그 교회는 가장 어리고 가장 연약한 교회였습니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그 어느 교회보다도, 교단보다도 작고 연약하며 위기 가운데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에는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오늘 함께 예배했는데, 내일 거리에서 함께 예배하던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핍박을 받아서 디아스포라...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고 쪼개지는 일도 자주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온 예루살렘 거리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고 먼 땅 아무도 없는 들판으로 혹은 도시로 오직 나를 찾아오신 예수를 믿기 위해 떠나야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결정이었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심지어 성경책 한 권 온전히 가진 적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아직 신약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고, 신학적으로도 건강하게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안수 받은 목사도 없고, 장로도 없고, 권사도 없었습니다. 이제 막 받은 은사를 서로 확인하면서 직분을 세우고, 교회를 조직하며, 역할을 나누고 있는 단계입니다. 교회당 건물을 가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비밀스럽게 모여야 하고, 장소를 옮겨서 모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는 놀라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본문을 다시 한번 읽읍시다. 읽으면서 본문에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를 설명하는 명사들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2-47) ‘사도의 가르침’ ‘교제’ ‘떡’ ‘기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기사와 표적’ ‘통용’ ‘(필요에 따라) 분배’ ‘성전’ ‘기쁨과 순전한 마음’ ‘찬미’ ‘칭송’ ‘구원’ 등이 눈에 보이는 단어들입니다. 이 예루살렘의 첫 교회를 소개하는 말들에서 어느 것 하나 걱정이나 염려나 두려움이나 연약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분쟁이나 다툼이니 시기나 질투가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연약했지만 가장 강한 교회, 가장 가난했지만 가장 풍성한 나눔이 있었던 교회, 가장 작았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 가장 시험과 핍박이 많았지만 가장 큰 감사와 기쁨이 있었던 교회, 적은 수가 모였지만 가장 큰 전도의 역사가 있었던 교회.... 하나님은 자랑스럽게 이 교회를 역사 속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가 우리가 우리를 비춰봐야 할 거울이 됩니다. 4. 응답하라, 2016년!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이 사진 하나를 보여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너희들의 처음 모습이란다. 비록 가진 것 없고, 연약하고, 핍박 받고, 때로는 죽음과 감옥과 고통과 슬픔이 너희들에게 찾아와도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오히려 복음을 전하며 승리하는 교회였단다. 이 교회를 추억하며 이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애쓰고 노력하지 않겠니?” 얼마 전에 컴푸터를 새로 장만했습니다. 사양이 좋아서인지 용량이 많고 속도가 빨라서 그동안 찍어서 모아놓기만 했던 사진들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고 2003년 겨울부터 사진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장과정도 천천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실은 가족들이 다 올라가고 혼자 거실에 남아서 사진들을 보면서 찔끔찔끔 눈물도 좀 흘렸습니다. 지나온 사진들을 보니 교회를 스쳐간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아예 소식을 모르는 분들도 있고, 멀리 한국으로 간 분들도 많고, 서부나 미국의 다른 지역으로 간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같은 지역에 여전히 살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저는 여전히 초대교회로 모입니다. 지난 사진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사연 많았던 분들이 참 많았었네....’ 한 분 한 분, 한 가정 한 가정... 생각해보면 참 사연이 많았습니다. 많은 성도들, 가정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었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모여서 우리들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야기가 아름다웠던 것 아니고, 즐거웠던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때로 우리들이 함께 모여 만든 이야기들 중에는 오히려 없었더라면 좋았을 뻔한 이야기도 있고, 다시는 만들지 말아야 할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가 걸어와서 오늘이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역과 이 시대에 우리를 교회로 모이게 하신 것은 2000년 전 초대교회를 허락하신 것과 같은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신의 결과이면서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 교회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고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함께 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 교회, 초대교회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2016년의 우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고 있습니까? 우리의 2016년은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되고 추억될까요? 만일 우리의 한 해가 우리가 그저 지나가야 할, 우리에게 그저 다가온 힘겨운 한 해라면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2000년 초대교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교회와 가정을 허락하시고 한 해를 은혜와 섭리 가운데 허락하셨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오늘 우리의 삶을 더욱 감사하면서 이 한해를 가치 있고 보람되게 보내야 하겠습니다. 초대교회를 설명했던 단어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리고 올 한 해 우리들을 설명하는 단어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성령의 역사하심, 성도의 사귐, 섬김과 나눔, 사랑과 은혜, 선교와 전도, 기쁨과 감사.... Snow Storm을 뚫고 드린 기쁨의 예배... 그리고 우리의 뜨거운 열심과 헌신... 이후에 우리의 한 해, 2016년을 추억하면서 그 시대가 다시 응답되기를 기도할 수 있는 우리들의 지금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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