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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함 vs 택함' na kim 201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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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22:1-14절 개역한글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저희가 돌아 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 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16. 3, 6.

 

* 본 문 : 22:1-14

* 제 목 : 청함 vs. 택함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열 가지, 혹은 백 가지 장점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있는 단 한 가지의 단점이 그의 모든 장점을 묻어버리는 일들이 있습니다. 참 좋은 사람인데.... 그 한 가지 이유로 가까이 할 수가 없고 혹은 계속 관계에 실패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그 사람은 참 단점이 많고 부족한데, 그래도 그 한 가지 장점이 있어서 다른 모든 단점들을 커버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야곱과 에서에게서도 이와 같은 면을 발견합니다.

 

야곱은 인간적으로 보면 참 가까이하기 싫은 면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혹은 분리를 경험합니다. 외로운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는 하나님께 더욱 매달렸는지도 모릅니다. 왜 우리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는데 인격적으로 혹은 성품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친구로 지내기에 적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신앙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흔히들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혹은 믿음이 있다면 그렇게 행동할 리가 없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 때로 신앙과 인격이 평행선을 그리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부족함과 자기 중심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면 에서는 선이 굵고 사람들을 이끄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들판으로 나가 많은 사람들의 대장이 됩니다. 아버지 이삭의 축복에서 제외되었지만 한 부족을 이끄는 우두무리가 됩니다. 자수성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릅니다. 끝까지 부모를 책임지는 것 같습니다.

씩씩하고 용감하게 보이고, 사소한 일 정도는 어험...하고 지나갈 줄 아는 것처럼 보이고, 마지막에 동생의 잘못에 대해서도 시원하게 용서하고 넘어갈 줄 아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비겁하고 야비하게 보이는 야곱을 축복하시고 에서는 외면하십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이 부분이 좀 불만이었습니다.

 

1. ‘망령된(godless) 사람

 

사람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온 사람들을 바르게 평가하려면 성경이 그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이자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16에 보면 하나님은 에서를 망령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5:34에서는 그 이유를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So Esau despised his birthright)라고 했습니다. ‘despise’라는 말은 멸시하고 경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장자의 권리를 가치 없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그런 행동과 판단을 망령되다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영어 표현을 보시면 재미있습니다. 망령되다는 부분의 NIV에서의 표현은 ‘godless’입니다. 직역하면 하나님의 없는입니다. 그러므로 망령되다는 말은 대단히 이상한 행동을 하고 특별히 나쁜 그 무엇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godless) ’(12:16)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복을 가볍게 여기는 삶의 태도’,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에서가 대단한 죄를 지었나요? 에서는 거짓말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남을 속여서 이익을 취했나요?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나요? 본인에게 중요한 관계들, 가족들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나요? 조금 전에 제가 드린 질문들은 모두 야곱이 한 일들입니다. 그는 거짓말했고, 속였고, 부당한 이욱을 취했고, 부모와 형제의 가슴을 아프게 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누가 범죄했나요? 따지자면 야곱이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에서를 망령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요? 그가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장자로서의 권리와 복을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했고, 자신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여겼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인생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2. 청함, 그리고 택함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다소 애매한 두 개념을 만납니다. 이것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에게 주신 천국 잔치 비유를 해석하시면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22: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청함택함의 개념을 무엇입니까? 비유를 주시고 해석으로 이 단어들을 사용하셨으니까 이제 우리는 비유를 살펴보면서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청함택함이라는 단어의 개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비유를 이해할 때는 그 배경과 청중, 그리고 비유의 목적을 생각하라 말씀드렸습니다. 그것들을 생각하면서 비유를 정리해볼까요? 한 임금이 자신의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풉니다. 그가 초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잔치에 오기를 거절합니다. 그들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자기 밭으로, 상업을 하러 갔다고 했습니다. 임금이 거듭 초청하자 그들은 임금이 보낸 종들을 능욕하고 죽입니다. 임금이 진노합니다. 그는 마을로 군대를 보내서 그들을 진멸합니다. 그는 다시 종들을 사거리로 보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혼인 잔치로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혼인 잔치가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잔치에 가득 찬 손님들을 만나러 들어오다가 그 중에 한 사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발견합니다. 임금은 다시 진노하여 그를 밖으로 쫒아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비유를 설명하시기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셨습니다.

 

, 여기서 청함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그야 말로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적용하자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유대인들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15절을 보시면 됩니다. 그들은 이 비유가 자신들을 향한 것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돌아가서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할 계략을 짭니다.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원래 하나님의 천국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까? 잔치에서 소외되고 있습니까? , 그들은 문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리에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이 예수님께 항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까? 우리가 도둑질이나 거짓말을 했습니까? 우리가 율법을 어겼습니까? 당신은 왜 우리들을 죄인취급하십니까?” 왜 그럴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천국 잔치라는 아름다운 가치를 그들의 삶의 일상적인 필요와 바꿔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명예, 자기 의, 자기 만족과 바꿔버렸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것을 이 땅의 가치와 바꿔버린 어리석은 사람들, 히브리서 12장의 표현대로라면 그들은 망령된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천국 비유인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 의하면 그들은 살았을 때 이미 좋은 것을 받은 사람들’(16:25)입니다. 이 땅에서 누릴 좋은 것을 선택하고 장차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버린 사람들입니다.

 

3. 믿음, 가치를 선택하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라는 말의 정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우리들의 매일의 삶에서 가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 항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천국의 잔치에 초청을 받기나 했습니까? 우리는 그 잔치를 오랫동안 기다리기만 했지 단 한 번도 제대로 초대받은 적이 없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한 관원이 영생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모든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18:22) 성경은 그가 큰 부자였기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 그에게 천국 잔치의 초대가 있었습니까? 그는 잔치에 초대받은 일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는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낙타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낙타에게 등에 있는 짐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늘귀는 낙타는 들어갈 수 있겠지만 등에 재물을 지고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낙타의 등에 있는 재물은 그의 일상의 삶의 가치와 중요성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바늘귀 앞에서 등에 잔뜩 짐을 지고 고민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심판날에 예수님 앞에서 항의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언제 주님을 만났습니까? 언제 주님이 우리를 초청했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만났던 수많은 연약한 사람들 속에 내가 있었고, 그들의 음성 가운데 나의 초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문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천국 잔치에 초대를 받은 일이 있습니까? 받으셨다면, 그래서 그 잔치에 참여하고 있으시다면 좋습니다. 하지만 만일 초대받지 못했다면.... 아니 여러분이 초대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논과 밭에 나가서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마음이 바쁘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시집 장가보내는 일 때문에 바쁘기 때문입니다. 장사하는 일 때문에 바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은 일보다 내가 이 땅에서 해결해야 하고 누려야 하고 즐겨야 하는 일들이 그 일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왕의 초대를 듣지 않았다고 여기고, 혹은 그런 것은 잔치의 초대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4. 팥죽, 일상의 선택에 대하여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인간적으로 에서에게 더 매력을 느낍니다. 강하고 자립심 있고 리더십도 있고 거짓말할 줄 모릅니다. 잘 속는 사람이고 앞 뒤 없이 즉각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가치 중심의 선택이 없습니다. 그는 필요 중심의 선택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때의 필요가 선택의 기준이 되는 삶.... 안타깝게도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습니까? 그는 그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를 가치 없게 여기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그렇게 해도.... 장자로서의 권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그는 장자로서 아버지의 축복을 기대하고 사냥해서 음식을 만들어서 아버지께로 갑니다. 그는 자신을 여전히 장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장자의 권리를 누릴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미 스스로를 배반했습니다. 배고파서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버렸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기를 원하는 장자면, 장자로서의 믿음과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의 선택과 판단은 그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청함은 받았으되 택함을 받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음이 무엇이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이며 영생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신이 너무 당연하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렇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천국의 잔치가 있는 삶을 선택해야 하는데.... 우리는 자주 우리의 일상의 필요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잔치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선택은 논과 밭에 있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에 있고, 장사하고 이윤을 남기는데 있습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구체적인 삶의 선택은 이 땅에서의 필요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 모든 성도들이 에서가 되어 아버지 이삭 앞에서 외칩니다. “아버지, 내가 받을 복은 어디 있습니까? 내가 누릴 잔치는 어디 있습니까? 왜 내게는 잔치가 허락되지 않습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가치를 선택하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과정입니다. 때로 배고플 수 있고, 때로 고난과 고통을 만날 수 있고, 때로 외롭고 어두운 길을 걸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고 검소한 식탁으로 자신을 지켜야 할 때가 있고, 때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고 감옥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능욕의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할 때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로마로 가야할 때도 있습니다. 넓고 편한 길이 아닌 좁고 험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이요, 예수라는 문을 선택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그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선택, 하나님의 나라와 의라는 가치에 기준한 선택들이 바로 믿음입니다. 임금의 부르심 앞에 내 생각과 판단으로 주저하는 사람들, 나의 필요와 욕구로 거절하는 사람들.... 청함은 받았지만 잔치의 즐거움을 아직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가 열리는 왕궁 문 밖에서 자신이 선택한 팥죽 한 그릇을 움켜쥐고 눈물 흘리게 됩니다.

 

설교의 마지막에 함께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옥중에 있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리고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교회와 성도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의 선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판단하는 기준과 가치관은 분명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3:18-20)

 

  

25:29-34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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