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하고 겸손하라 | na kim | 2016-07-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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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빌립보서2:5-8절 개역한글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016. 7. 17. 가족 예배, 성찬식 * 본 문 : 빌립보서 2장 5-8절 말씀 * 제 목 : 온유하고 겸손하라!
닉 왈렌더(Nick Wallender)라는 외줄타기 곡예사가 있습니다. 7대째 외줄타기를 하는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두 살 때부터 줄을 탔고, 지금은 성공한 외줄타기의 장인으로 기네스북에 7개 정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2012년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걸었고, 2013년 그랜드 캐년 위를 걸었습니다. 최근에 그는 시카고의 600피트가 넘는 빌딩과 빌딩 사이를 약 18도 정도의 경사로 연결하여 건넜습니다. 줄타기에 관한 한 그는 인류 역사상 최고일 수 있습니다. 그가 2014년 시카고 빌딩을 연결한 퍼포먼스를 마치고 난 후 했던 일 하나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약 5만의 청중이 빌딩 아래에서 그가 하늘을 걷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그의 성공에 환호하고 축하했습니다. 그리고 청중들은 떠났습니다. 그는 아래로 내려가서 청중들이 남긴 쓰레기를 청소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말렸습니다. “당신은 오늘 모든 사람들의 영웅인데 왜 쓰레기를 치우십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교만해질 것 같아서요. 사실 세 시간 동안 쓰레기를 줍는 일은 내 영혼에 매우 유익합니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겸손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낮추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이 위태한 세상에서 내가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나는 그분이 제자들의 발을 씻겼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합니다. 남을 섬기지 않으면 내 자아만 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만해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의지적으로 겸손을 연습합니다. 그의 겸손의 연습이 그를 세상이라는 외줄에서 안전한 걸음을 걷게 합니다. 1. 두 사람의 기도(눅 18:9-14) 누가복음 18장 9-14절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성전에 올라가는 두 사람의 비유를 주셨습니다. 이 비유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비유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To some who were confident of their own righteousness and looked down on everybody else, Jesus told this parable:/눅 18:9)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 -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예,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교만합니다. 강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의롭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더럽다고 여기고 멸시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이 비유를 그들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리새인입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The Pharisee stood up and prayed about himself: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men--robbers, evildoers, adulterers--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I fast twice a week and give a tenth of all I get./눅 18:11-12) 그런데 저 멀리서 감기 고개를 들고 기도하지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세리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But the tax collector stood at a distance. He would not even look up to heaven, but beat his breast and said,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눅 18:13) 여러분, 두 사람의 차이를 말씀해보시겠습니까? 예, 한 사람은 존경받는 바리새인이요, 한 사람은 멸시당하는 세리입니다. 한 사람은 종교적 논리로 무장하여 살고 있고, 한 사람은 경제적 논리로 살아갑니다. 한 사람은 높은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성공한 사람으로 서 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자신과 비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손가락질합니다. 한 사람은 낮은 곳에서 감히 하나님을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그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가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눈물 흘립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2.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5절에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마 5:5)라고 했습니다. ‘온유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온유함의 사전적인 의미는 ‘성격, 태도 따위가 온화하고 부드러움’입니다. 영어로는 ‘gentle’, ‘mild’, ‘meek’, ‘sweet’등의 뜻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어떤 의미일까요? 왜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온유함을 이해하면 온유한 사람에게 허락된 땅의 기업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온유함’에 대해 말할 때 같이 나오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겸손함’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마 11:29)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As a prisoner for the Lord, then, I urge you to live a life worthy of the calling you have received. Be completely humble and gentle; be patient, bearing with one another in love./엡 4: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Therefore, as God's chosen people, holy and dearly loved, clothe yourselves with compassion, kindness, humility, gentleness and patience./골 3:12) 온유함은 내 안에 있는 겸손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되는 행동을 말합니다. 교만한 사람이 온유할 수 없습니다. 정죄하는 사람이 온유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하신 성품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유대 민중들과 심어지 하나님에 대해서까지 강퍅한 태도를 보인 이유는 그들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은 온유한 자의 복을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땅을 기업으로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이 경작하지도, 상속받지도 않은 땅이었는데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그들의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언제 그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까? 그들이 가장 가난했을 때입니다. 가장 낮을 때였습니다. 430년을 노예로 살아서 모든 자존심이 무너지고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런 소망이 없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 그들의 신음과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온유한 자에게 허락된 복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겸손한 성도, 겸손하지 않을 수 없는 성도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 5:5의 말씀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성도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채우시는 은혜가 그에게 허락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기업입니다.” 3. 내 안에 있는 바리새인!
여기까지 이해가 잘되셨기 바랍니다. 제가 전에 소개해드린 ‘카일 아이들만’ 목사는 그의 책 'The End of Me'에서 우리 안에 숨쉬고 있는 바리새인의 모습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이 바리새인의 모습은 실은 우리가 정말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에게 허락된 복에서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이 복과 은혜에서 제외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는 우리 안에 있는 교만하고 강퍅한 바리새적인 요소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혹시 우리들이 이런 말을 할 때 자신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 - “당신에게 사랑의 지적과 비판을 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사람들이 당신을 지적하지 않는 건 괜히 지적했다가 서로 얼굴만 붉힐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 “사과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 -교만한 사람에게 가장 힘든 일은 진심으로 사과하는 일입니다. 3) “이건 공평하지 않아!” - 내가 느끼는 불공평이 다른 사람에 대한 지나친 비교와 의식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늘 비교합니다. 열등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4) “혹시 너도 들었니” - 바리새인들은 험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디서나 쉽게 ‘세리’를 찾아냅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는 그들의 대화의 좋은 소재입니다. 5) “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아” - 눅 19장에서 바리새인들이 성전에서 원하는 것은 헌금에서 금식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확인받는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과 나라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6) “바로 그 사람이 문제야!” 바리새인은 주변에서 문제를 찾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자신에게만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점검해서 누구는 3개, 누구는 5개.. 말씀하지 마시고, 내가 과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리새인의 교만과 강퍅함을 숨기고 있지 않는지를 점검해 봅시다. 4. 온유하고 겸손한 성도를 찾으시는 하나님 저는 오늘 여러분과 제가 세 말씀을 꼭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마음에 꼭 기억할 말씀은 마 11:29의 말씀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마 11:29)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삶과 마음을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배우려면 먼저 예수님의 멍에를 함께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멍에일까요? 낮아지는 것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온유해야 합니다. 이것이 왜 멍에일까요? 쉽지가 않아서입니다. 우리는 쉽게 교만해지고 쉽게 강퍅해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기억하실 말씀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but made himself nothing,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 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and became obedient to death-- even death on a cross!/빌 2:5-8)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교회와 성도들에게 권면하시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고 익혀서 그 마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기억해야 할 한 또 말씀을 주십니다. 그 마음,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사는 성도에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마 5:5) 가난하고 연약했던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께서 겸손하고 온유한 성도와 교회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시겠다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사는 시대는 교만과 강퍅함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높아지고 많아지고 강해지지 않으면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무언인가를 가지고 있으면 비교하고 자랑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인종이 인종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작은 차별에 아파하고 소리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자랑하는 교만과 편견은 무시합니다. 닉 왈렌더의 이야기를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는 오늘 우리가 묵상했던 말씀을 정확하게 실천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교만해지기 쉽고 강퍅해지기 쉬운 환경에서 스스로 마음과 삶을 낮추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 열심히 믿는 바리새인이 되어 자신의 성공과 부와 안전과 명예와 신앙을 자랑하며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고 품으라 권면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순종하여 그 마음을 세상에 증거하는 천국 시민, 초대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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