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향한 용기 | na kim | 2016-09-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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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11. * 본 문 : 마태복음 6장 31-33절 말씀 * 제 목 : 복음을 향한 용기 요즘 한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선한 목자 교회 유기성 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설교도 좋고, 글도 좋아서 온라인에서도 인기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 그가 존 파이퍼 목사의 설교를 보고 글을 하나 썼습니다. 존 파이퍼목사가 어느 청년 집회에서의 설교를 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꿈꾸는 행복한 삶의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경제적인 여유와 사회적인 성공, 그리고 유복한 가정... 건강하게 은퇴해서 안락한 삶을 즐기다가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 아닐까요? 그가 청년들에게 묻습니다. “그것이 정말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일까요?” 그는 성도가 이러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 불행하고도 슬픈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80세가 넘은 두 여선교사의 죽음을 소개합니다. 한 사람은 간호사요, 또 한 사람은 의사였습니다. 이들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불쌍하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살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그 날도 환자들을 찾아 카메룬의 어느 산악지역 마을을 운전해 가다가 자동차 브레이크 파열로 절벽에서 추락했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청년들에게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비극입니까?” 그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결코 비극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는 얼마 전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은 기사를 언급합니다. 제목은 ‘이른 시작 이른 은퇴’였습니다.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 목회를 했던 Bob과 Penny 부부는 각각 59세, 51세에 은퇴했습니다. 그들은 따뜻한 플로리다에 집을 샀습니다. 보트도 샀습니다. 매일 운동하며 건강하게 삽니다. 희귀한 조개껍질을 취미로 모으고 있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그는 안타깝게도 미국의 많은 청년들이 이런 비극적인 삶을 동경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외칩니다.
“청년 여러분! 이러한 삶을 동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비극적인 삶을 쫓아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가족, 좋은 직장, 즐거운 은퇴, 조개껍질 모으기가 전능하신 창조자 하나님 앞에 서기 전의 당신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이것을 보십시오. 제 집을 보십시오. 제 차를 보십시오. 제 몸을 보십시오. 제가 모은 이 조개껍질들을 보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삶이 하나님 앞에서 비극입니다. 삶을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 “피곤합니다... 복음!” 유목사는 자신 또한 목회자로서 성도들에게 담대하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수고하고 헌신하는 삶을 설교하지 못했다고 반성합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은 안락한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함께 지는 오늘의 현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존 파이퍼 목사의 설교와 유목사의 글에 동의하십니까? 저는 당연히 동의합니다. 교회는, 복음은 세상의 가치와는 다른 삶을 조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 페이스북 유저가 이 글에 대한 보편적인 반응이 아닌 특별한 몇 가지 반응을 소개했습니다. 보편적인 반응이라 함은, 은혜 받았다... 나도 반성한다... 뭐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고민할만한 특별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존 파이퍼 할아버지, 유기성목사님... 성도들 그만 좀 들들 볶으시지요. 당신들이 비극을 논하며, 은퇴한 사람들의 노후를 그렇게 무시해도 될 만큼 그런 인생의 경험이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카메론의 여선교사도, 바닷가에서 은퇴의 시간을 보내는 목사도 다 그들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탓하실 하나님은 아니지 않습니까? ...... 당신들이 한 말에 책임을 지려면, 지금 당장 대형 교회 담임 목사의 자리 버리고 오지로 가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런 설교를 하는 당신들의 진심을 조금이나마 수긍하겠습니다.” 이 글을 소개한 페이스북 유저는 자신 또한 존 파이퍼 목사의 설교나 유기성 목사의 글에 동의하지만, 몇 몇 성도들이 남긴 댓글에도 충분한 관심과 고민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저는 이 의견에도 동의합니다. 2. 복음과 삶의 경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아마도 성도라면 가장 자주 듣고 인용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한 번 더 읽어볼까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여러분은 이 말씀을 복음으로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복음대로 살고 있습니까? 저는 지난 10주간 여러분과 8복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매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이 과연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에서도 복으로 인정받고 실천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알고 복음으로 인정한다는 것, 그 복음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 말씀에서도 함께 묵상한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이 다른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도대체 복음과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거리는 얼마쯤 될까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 - 참 아름답고 좋은 삶인데... 그런데 나는 당장 예수님이 하지 말라고,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무엇을 먹고 입고 마시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면, 그것이 너무 중요하다면, 좀 더 편하고 안락한 노후를 기대하고 준비한다면.... 도대체 나는 복음 안에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에 의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의 치열한 삶과 깊은 고민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이나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3)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이들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힘들었을까요? 예, 그들은 정말 말씀대로, 믿음으로 살기가 힘들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믿음이 없거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당연히 우리들보다 훨씬....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은 신앙의 선조들입니다. 다만 지금 고백하는 것은 그들의 매일의 삶이 그들 안에 있는 복음과 충돌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윗과 사도 바울의 삶에서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삶에서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의 경계가, 복음과 삶의 경계가, 내가 원하는 복과 하나님 나라의 복의 경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3. 우리를 이해하는 복음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존 파이퍼 목사의 설교와 유기성 목사의 글에 반박하는 글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성도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메조키스트로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 복음적인 설교에 대해, 딱히 그들을 책망한 말씀이 아닌데... 이렇게 반발하는 것일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알 것도 같습니다.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거룩하지만 전하는 사람은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전하는 자가 본인의 연약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만약 큰 교회 목회를 버리고 아프리카 오지로 가서 그런 말씀을 전한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것일 아닐까요?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역시 충분히 동의됩니다. 저 역시 말씀을 가르치고 증거하는 설교자로서 가장 연약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고 고민해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연약한 사람이 아닌 그 복음은 우리들을 잘 이해하고 있을까요? 사랑하라고 하는데 못하겠고, 용서하라고 하는데 못하겠고, 희생하라고 하는데 힘들고, 인내하지 못하겠고... 그런 우리들을 복음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복음’이라는 말을 잘못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복음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복이 있다’고 선언해야 복음인 것도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들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조금 전에 함께 읽었던 다윗과 사도바울의 고민은 복음일까요? 당연히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고민이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연약함이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경계에서 하나님 나라에 속했지만 세상에서 자유롭지 않은, 복음과 일상의 삶의 충돌을 매일 경험해야 하는 - 이런 고민과 고백을 하는 그들을 하나님은 책망하시고 징계하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심지어... 이런 고민과 고백들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으로, ‘복음’으로 우리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복음은 사람의 연약함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우리를 이해합니다. 4. 먼저 구하는 믿음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무슨 말입니까? 오늘 본문을 봅시다. 이 말씀은 우리를 이해하고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염려하고 걱정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헸습니다. 그리고 위로하고 권면하십니다. 우리가 염려와 두려움 없이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책망하고 두려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알고 이해하기 때문에 이렇게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를 알고 이해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에 담대하게 먼저 복음을 따라 구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십니다. 자신의 죄를 날마다 만나는 다윗도 이 말씀으로 위로를 얻을 것이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했던 사도 바울도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비록 날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경계를 만나며 자신의 연약함을 경험하며 살고 있지만.... 주님은 “안다, 내가 너희들의 염려와 두려움을 안다...”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담대하게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결단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오늘로 8복의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서의 복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편 이 말씀을 전하는 마지막 주간에 하나님께서 귀한 음성을 들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전하는 직분을 맡은 일꾼으로 복음이 저를 이해하듯 성도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고, 주님이 저에 대해 겸손하셨던 것처럼 저 또한 말씀 앞에 겸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서 우리들 모두에게 복음을 따라 살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실현되는 우리의 삶이 되고 가정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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