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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na kim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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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

 

* 본 문 : 요한복음 1631-33절 말씀

* 제 목 : "Cheer Up!"

 

얼마 전에 한국에 계신 유영경 집사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습니다. 교회 여러 성도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유집사님 가정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집사님과 만나게 된 계기가 되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마 10년도 넘었을 겁니다. 유집사님과 친했던 한 청년이 교통사고로 코마 상태에 빠졌습니다. 아는 분의 부탁으로 유집사님을 만나고 그 청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병원에 1주일에 3-4차례씩 찾아가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약 한달 간 그 청년을 지켜보면서 이런 고민을 했었습니다. 의식이 없는 상태, 인지적인 자각이 없는 상태, 혹은 의식과 신체의 반응이 일치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이 사람에게 믿음이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분명 살아있는데 아무에게도 반응하지 않는 사람, 한국에서 부모가 오고 형제가 와도 손 한번 잡지 못하는 사람...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된 이 사람... 모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결국 혼자 있는 사람, 과연 하나님은 그에게 어디 쯤 계실까? 믿음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1.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지난 주일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 나누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또한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나눈 말씀이 마태복음이었고, 이번 주일은 요한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과 떠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질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비록 자신을 버릴지라도 자신을 제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그들의 가장 연약하고 부끄러운 곳으로 가시고 그들을 기다리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의 비겁함과 수치를 가슴으로 품으시고 그곳에서부터 다시 교회를 시작하십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말씀은 같은 배경에서 선포됩니다. 오늘 말씀의 본문인 16장의 상황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겠다 말씀하셨고 그들은 근심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요약하십니다.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16:6)

 

20절과 22절에서도 거듭 그들의 근심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 없는 삶이 불안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가 두렵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16:32)

 

예수님은 곧 다가올 일을 말씀하신 것이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0절에서 그들은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마음과 삶의 방향은 이미 분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때가 벌써 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혼자 남겨졌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그들을 떠나시기 전에 그들이 먼저 예수님을 마음으로부터 떠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혹시 여러분, 혼자 남겨지는 경험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가수 변진섭이 그렇게 노래했습니다.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도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

 

예수님은 자신의 버려짐에 대해, 남겨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슬프고 아플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3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음성이 힘이 없거나 슬프게 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나!’라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왜 예수님께서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답이 바로 뒤에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16:32)

 

너희들이 나를 떠나도, 버려도, 배반해도... 내 아버지가 나와 함께 하신다... 아버지께서 내 모든 고통의 자리에 함께 하신다... 내 모든 수치와 외로움의 자리에 함께 하신다... 철저하게 버림을 당할 때도, 침 뱉음과 채찍질 당할 때도, 지친 몸으로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도, 손과 발에 못이 박힐 때도, 고통에 몸을 뒤틀고...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깊은 신음이 터져 나올 때도, 모든 사람들 앞에 발가벗겨져서 나무에 걸려 있을 때도.... 수치심과 고통이 인간의 생명에 대한 애착을 넘어설 때도....이글거리는 태양에 온 몸에 수분이 다 말라 들어갈 때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아직도 내가 죽지 않았는지를 확인할 때도.... 심지어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칠 때에도 아버지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 나와 함께 고통하신다....

 

하나님은 함께 고통당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13장부터 주신 설교에서 자신과 하나님과의 일치를 여러 번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14:1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17:21) 바로 이 믿음, 이 사실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고 외로운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인도했습니다.

 

3.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곧 제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십니다. “너희들이 나를 떠나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함께 하신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제 필요없다... 가버려!” 이것이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16:33)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13장부터 마지막 설교를 하십니다. 17장의 기도를 드리시기 전에 모든 설교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33절에서 말씀하신 이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날 것입니다. 2)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과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제자들이 누릴 평안의 이유가 될까요?

 

저는 여기에도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옵니다. 그 어느 한 제자도 예수님의 품에 안기지 못합니다. 반갑게 맞이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부활을 알고도, 경험하고도 그들은 갈릴리 그들의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왜 그럴까요? 죄책감 때문입니다. 수치스럽습니다. 혼자 고통의 십자가에 남겨두고 떠난 것이 너무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나를 떠났다고 해서 내가 혼자 남겨진 것은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셨다.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말고,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마라.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 하셨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렇게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면 세상 모든 것이 너희들에게 등을 돌려도 외로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버려도 아버지께서 함께 하셔서 이렇게 영광의 부활을 맞이한 것처럼, 세상이 너희를 버려도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면 넉넉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으니까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세상 일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책망하시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인시키면서 격려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삶에 평안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4. Cheer Up!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이 마지막 말씀은 세상이 우리에 대해 하는 일, 우리가 할 일, 주님이 하시는 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세상은 악합니다. 성도와 교회는 복음의 원칙대로 살고자 할 때 반드시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과 세상은 서로에게 걸림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도 세상은 그 예수를 거절하고 십자가 못 박았습니다. 하물며 우리겠습니까? 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믿음과 삶을 지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주님이 하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미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담대하라!” - 이말을 NIV에서는 “Take heart!”로 번역했습니다. NASB“take courage”로 번역했습니다. 두려움과 염려에 마음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KJV에서는 재미있는 번역을 했습니다. “be of good cheer!"이라고 했습니다. Living Bible은 보다 적극적으로 “Cheers up!”으로 번역했습니다. 왜 이렇게 번역했을까요?

 

제자들의 지금 분위기는 어떨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신다고 하지요... 자신들은 이미 두려움과 근심에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지요...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싶어도... 그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은 더 무거워집니다. 침울한 얼굴로 예수님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괜찮다... 평안을 얻으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말씀하셔도 그들은 자꾸 고개가 숙여지고 어깨가 쳐집니다. 어찌 힘이 나겠습니까? 아직 그들의 믿음의 수준은 염려하고 두려워하다가 도망치는 것 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을 아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들을 위로하면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 바로 제자들아! Cheer Up!"입니다.

 

너희가 두려움과 염려로 나를 떠나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끝까지 나와 함께 하신단다. 너무 걱정하거나 미안해하지 말아라. 오히려 너희들의 마음에 나의 평안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살고자 하면 고난이 많을텐데... 그때마다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신단다. 내가 먼저 세상을 어떻게 믿음으로 이기는지를 보여줄테니... 너희가 지금은 연약해서 나를 떠나도, 사랑하는 제자들아, Cheer Up! 힘을 내기를 바란다. 용기를 내기를 바란다. 아버지가 너희와 함께,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한단다.”

 

그리고 예수님은 17장에서 자신을 위해, 제자들을 위해, 제자들로 인해 복음을 받고 믿음으로 살아갈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은혜 가운데 믿음을 선물로 받았는데... 우리는 믿음대로 살지 못하는 수 만 가지 이유를 준비하고 삽니다. 십자가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정말 창조적인 이유들을 개발합니다. 나의 비겁함을 합리화하고 나의 두려움과 염려를 포장하기 위해 참 많이도 노력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모든 것을 아십니다. 어이없게도 책망하지 않으시고 용납하십니다. 아직 우리의 믿음이 그렇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Cheer Up.... 힘을 내자... 내가 너의 버림을 받고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할 때도 아버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 두려우냐? 근심과 염려로 불안하냐? 담대하자... 조금만 더 담대하자...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금도 응원하고 격려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다 함께 한번 따라하고 마칠까요? 주먹을 이렇게 쥐고 가슴을 두 번 치면서 “Cheer up!!!" 해봅시다. 옆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해봅시다. ”Cheer Up"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Cheer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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