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3.예배를 보다 | na kim | 2016-10-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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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3. * 본 문 : 요나서 1:17~2:10 * 제 목 : 예배 - 3. 예배를 보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한 사람을 만납니다. 요나라는 선지자입니다. 성경은 그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하나님을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삶과 사역 중에 한 부분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B.C.760년 경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2세 때 활동했습니다. 여로보암2세는 북이스라엘의 정치적 경제적 부흥기이면서 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 그가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다른 선지자들과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 특히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 속에 있던 앗수르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하나님의 이방을 향한 부르심을 거절하고 반대편인 다시스로 도망을 갔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그가 탄 배는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이 재앙이 누구로부터 왔을까...? 배를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절규할 때 오직 한 사람 요나만은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대답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욘 1:9-12) 사람들은 결국 그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다는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큰 물고기에게 삼켜집니다. 3일 동안 물고기의 배 속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3일은 요나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3일이며, 오늘 요나와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는 우리들에게도 소중한 3일입니다. 요나는 이 3일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들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자신을 보다. 요나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거절했던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받은 사명과 삶으로 하나님을 사귑니다. 사명도, 헌신도, 우리의 일상의 삶도 그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가 됩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 안에만 있는 하나님, 이스라엘 밖의 세상에는 관여하지 않는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이스라엘 밖으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니느웨 반대편,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반대편의 삶을 선택합니다. 그가 받은 사명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는 선지자이자 예배자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사귐이 단절된 사람은 예배할 수 없습니다. 외식이며 거짓일 뿐입니다. 저는 실은 식탐이 좀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워낙 형님들 사이에서 전투적인 식사를 하는 습관이 든 것 같습니다. 가끔씩 배가 고프고 맛이 있고...해서... 한참을 먹다보면.... 그야말로 주변의 모든 상황을 잊고 먹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허급지급.... 와구와구.... 냠냠쩝쩝... 뭐 이런 겁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 좀 부끄럽습니다. 여러분은 그럴 때가 없으십니까? 무엇엔가 정신을 잃고 집중하다가 문득 자신을 객관적으로 발견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요나가 그랬습니다. 배의 맨 밑 칸에서 잠들어 있는데 이방인인 선장이 그를 깨웠습니다. 풍랑이 일었으니 자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요나가 자기 때문에 풍랑이 왔다고 고백하자 모든 사람들이 다 외칩니다. “왜 그랬습니까? 왜 선지자인 당신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그들 앞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이 불순종과 거역의 식탐을 부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회개합니다.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결단합니다. 사람들에게 선지자 요나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거절했던 자신을 깊은 물속에 던집니다. 바로 이 지점이 요나의 삶에서 참된 예배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물고기가 그를 삼킵니다. 물고기 뱃속이라는 절망적인 공간과 3일이라는 제한적인 시간 - 참으로 상징적인 상황입니다. 그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사귐을 다시 연결합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고난과 바다와 물고기의 뱃속’이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처참함이 자신을 에워쌌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성도의 삶의 현실이 어떠한지를 고백합니다. 성도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 때 세상의 즐거움과 만족에 대한 식탐에 사로잡혀서 허급지급 세상과 교통하다가 하나님을 잊고 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말씀을 알기는 하지만 내 삶에 다가온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되지 않아서 의지적으로 불순종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내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기 직전까지... 나는 나의 선택을 믿고 룰루랄라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풍랑을 만납니다. 깊은 바다에 빠져 듭니다. 물고기가 삼켜버렸습니다. 세상을 향한 모든 희망으로부터 단절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을 만날 일만 남았습니다. 그는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과의 사귐을 회복하려 합니다. 의식이 남아있고 힘이 남아 있을 때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마음과 삶을 다해 엎드립니다.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배의 시작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의 상황 속에 있는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예배를 시작할 때 조용한 묵상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보며 내 삶이 거친 풍랑 가운데 있었음을, 내 삶이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멀어져 있었음을 발견하고 고백하며 애통해야 합니다.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를 허락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 하나님과의 사귐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통애하는 성도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심령을 제물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성도들을 기다리십니다. 비로소 그들의 삶에 참된 예배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을 바라보다. 요나는 고백합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 2:4) 요나고 고백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단절이면 다른 하나는 연결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다시 바라봅니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욘 2:7) 내 삶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리면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는 거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만나는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요나 시대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에 하나님이 지쳤다는 것입니다. 내가 기뻐하지 않는 예배, 받지 않는 예배, 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자신들의 소원과 권력과 즐거움을 위한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이되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 수 있고, 예배이되 하나님 없는 예배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오히려 왕위를 빼앗긴 사울왕을 보십시오. 그는 삶에서 하나님을 떠났고, 예배에서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예배의 회복을 강권하십니다. 그는 예배를 통해서 권력을 사모했지만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그와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배의 회복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되심을, 주가 되심을, 왕이심을 다시 고백하고 연결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3.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다. 세 번째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는 것입니다. 요나는 예배하면서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바다 끝에 가면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가 바다와 바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피조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아무리 세상의 끝으로 달려가도 하나님 안에 있음을 확인합니다. 또한 그는 징계하고 벌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가 세상 끝으로 가서 하나님 없는 곳에서 살고자 했을 때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배와 거친 파도는 요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요나가 그의 기도를 통해 거듭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은 요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2절)이며, ‘요나의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시는 분’(6절)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9절)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는 절망 가운데서 ‘주의 성전을 바라본다’(4절)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7절) 하나님은 요나의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9절) 요나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됩니다. 어떻게 회복되었습니까?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고백할 때 그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으로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우리의 소원을 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배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예배의 결과는 무엇으로 나타나야 할까요? 요나는 중요한 예배의 결과를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요나가 보여주는 예배의 결과는 바로 ‘소원의 변화’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예배하기 전과 후의 변화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예배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을 믿고 선지자였고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삶에 예배가 사라졌을 때 그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1:3) 발버둥쳤습니다. 선지자였고, 하나님의 백성이었는데도 그랬습니다. 예배가 삶에서 사라지만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예배하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으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자신의 영적인 실체를 만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봅니다.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리고 그는 니느웨로 갑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요나가 다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지 않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요나는 참 못된 사람입니다. 순종하여 니느웨로 갔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니느웨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여전합니다. 복음을 전했지만 니느웨의 회개보다는 하나님의 진노를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분노의 논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가 하나님을 믿었고 선지지였고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했던 것처럼, 예배하고 순종하며 니느웨로 갔지만 결국 다시 하나님의 마음과 부딪힙니다. 하나님은 왜 요나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셨을까요? 예배는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번 예배하면 우리가 순결해지고 정의로워지고 흠이 없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서 밀어내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하고 또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하고,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확인하고 고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의 뜻으로 변화시키고 또 변화시켜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이어야 하고, 일상이어야 하고,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 참 좋은 예배를 드리는 성도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과 삶이 변화되고 날마다 더욱 성숙해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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