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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 5. 헌금의 원리(2) na kim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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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13.

 

* 본 문 : 고린도후서 81-15절 말씀

* 제 목 : 예배 - 5. 헌금의 원리(2)

 

예배에 대해서 다섯 번째 말씀을 나눕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예배하면서 드리는 제물즉 헌금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실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의 의미와 우리 교회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헌금의 4가지 성경적인 원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늘 헌금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 인생에 유일하게 나름 직장생활을 했던 3년이 있습니다. 공군 장교로 근무했던 시기입니다. 공군 교육사령부 의장대장으로 부임해서 가던 날 우리 부대의 작전과장에게 불려갔습니다. 방중령이라는 분이었습니다. “, 의장대장! 너 전도사래매?” 아주 삐딱하게 물었습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서 , 그렇습니다.”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비릿한 웃음을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잡사야! 임마~~” 너무 엉뚱한 말이어서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나가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좀 친해지고 나니 알 것 같았습니다. 군인으로 빠듯한 살림에 정말 알뜰살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희 단기 장교들을 불러서 짜장면을 사주고는 자녀들 과외를 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모태신앙일 뿐만 아니라 아내되는 분이 신앙이 참 좋았습니다. 출석하는 교회에서 당연히 집사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다른 봉사는 다 하겠는데... 헌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술만 마시면 제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너 나중에 목사되면... 성도들이 헌금을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목사가 되라!” 그리고는 늘 그런데 나는 잡사야!”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저와 함께 의장대에서 부사관으로 일했던 박중사라는 친구도 그랬습니다. 청년 때 다니던 교회 여자 전도사님에게 대쉬를 해서 결혼했습니다. 아들 둘 낳고 잘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애들을 교회 못나가게 했습니다. 아내 되는 분이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남편에게 말을 해서 교회 좀 나가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국 헌금이 문제였습니다. 당시에 중사 월급이 100만원 남짓 되는데 하필이면 아내되는 전도사님이 개척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건축헌금을 포함해서 102,3조를 바친다는 겁니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게 군에서 뺑뺑이치면서 버는 돈인데... 자신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신앙이 있다는데 대해 조금도 의심이 없습니다. 다만 헌금은 믿음이 있는가의 문제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자신을 잡사라고 주장했던 방중령의 부탁대로 성도들의 경제활동과 헌신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아는 목회자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1.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입니다.(5)

 

오늘 본문 말씀은 마게도냐 교회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헌금했던 일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중에 헌금의 성경적인 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5절을 봅시다.

 

우리가 바라던 것쁜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6)

 

헌금은 하나님께 돈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일하고 수고해서 그 열매로 얻는 소득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은혜로 고백해야 합니다. 나와 가정을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백합니다. 그것을 내 것으로 주장하지 않고 교회로 함께 모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만큼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라는 표현이 능동태로 사용된 것에 주목하십시오. 헌금은 누가 내게 강요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강요와 억지가 들어가는 순간 헌금의 생명성은 상실됩니다. 리버사이드 교회를 섬기는 윌리엄 카핀이라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헌금에 대해 설교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에 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들에게 내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나를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신 하나님, 나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주신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립니다.”

2. 예수님을 본받는 행위입니다.(9)

 

두 번째 헌금의 성경적 원리는 그것이 우리 주님을 본받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봅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마게도냐 교회를 격려하고 고린도 교회를 가르치십니다. 성도와 교회가 헌금에 동참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의 제단 위에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헌금은 우리 주님의 우리를 위한 사랑과 희생을 본받는 과정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헌신과 성도의 삶을 가난함부요함으로 설명하신 것에 대해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의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헌신과 성도의 물질적인 헌신을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물질에 대한 설교를 자주 하셨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하는 일에 대해 설교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 물질을 가장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합목적적으로 사용하는 일에 대해 설교하셨습니다. 그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19-21)

 

성경에서 가르치는 물질관 중에 가장 많은 오해가 이 말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마치 이 땅에서의 헌신과 헌금의 행위가 천국에서의 투자와 같은 개념으로 설명되었습니다. 30, 60, 100을 사용해서 헌금을 독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헌금의 양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선순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 다음에 어떤 말씀이 연결되는지를 보시면 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1)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과 나라와 부와 명예를 준다고 해도 하나님의 나라의 의에 헌신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도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고백하는 것이며, 우선순위를 삶으로 보여주신 주님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3. 균등하게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고후 8:13-15)

 

신약 교회의 헌금의 세 번째 성경적 원칙은 균등하게 하는 원리입니다. 사도 바울이 만나고 섬겼던 교회는 대부분 이방인들이나 이방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의 교회였습니다.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에 강점당해 있을 때 일본을 피해서 외국으로 나간 동포들이 있었습니다. 만주나 연해주, 그리고 미국 등 전세계로 흩어졌습니다. 그들의 삶이 일본 치하의 조선인들의 삶보다 보편적으로 풍부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해외 동포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물질로 헌신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사도바울의 시대에도 비슷했습니다. 유대땅이 아닌 이방 지역에서 교회로 모이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보다 재정적인 여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교회들 중에 마케도니아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부족하고 어려운 중에 예루살렘 교회를 헌금하여 도왔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일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헌금을 개념화하시기를 균등하게 하는 은혜라고 했습니다. 고후 8:13-14를 봅시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8:13-14)

 

그리고 바울은 한 가지를 더 언급합니다. 15절을 봅시다.

 

기록한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후 8:15)

 

마게도냐 교회의 헌금을 구약의 광야 교회에서의 만나의 경제원리로 해석합니다. 이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만나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매일 일용할 양식으로 주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충분하게 공급되었고, 욕심을 따라 축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평균케 되는 원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초대교회에 이 원리가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만나를 주시는 대신 은사를 주시고 기업을 주시고 소득을 주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식탁에 허락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의 경제원리 속에서 보자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나에게 필요한 만큼 공급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내게 필요 이상의 것은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성도와 교회의 재정의 원리가 만나경제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으로 고백하고 실천할 수 있는 성도와 교회가 될 때 방중령도 잡사가 아닌 집사가 되고, 박중사도 결혼할 때 서약한 대로 좋은 신앙인, 복된 가정을 이루게 되지 않겠습니까?

 

4. 기쁨으로 자원해야 합니다.(고후 8:10-12)

 

헌금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기쁨과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10-12절을 봅시다.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찌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0-12)

 

반복되는, 강조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지금 그들이 헌금에 대해 자원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없는 것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만큼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분량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일년 전부터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시작했고, 여전히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왜 우리들에게 헌금이 자원하는 마음과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헌금의 내면의 동기는 바로 감사에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의 연약한 성정에 숫자가 마음을 압박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만큼,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만큼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분량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헌신으로 칭찬받는 마게도냐 교회을 보여주시는 것은 우리 시대에 이런 감사와 기쁨이 있는 헌신으로 하나님의 만족한 칭찬을 받는 초대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 순종하여 늘 감사와 기쁨이 있는 헌신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초대교회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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