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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로 드리는 감사 na kim 20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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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0.

 

* 본 문 : 시편 1071-3절 말씀

* 제 목 : 공동체로 드리는 감사

 

2016년이 거의 다 지났습니다. 이제 11월의 마지막 주일이 남았고, 12월이 됩니다. 지난 한 해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자녀들과 함께 추수 감사주일로 예배하면서 교회가 지키는 여러 절기들의 유래를 생각하면서 추수 감사 예배의 의미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아실 것은 실은 추수감사절은 원래 교회에서 시작된 절기는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미국의 역사 속에 만들어진 국경일입니다. 청교도들의 미대륙 정착과 관련이 있고, 워싱턴 대통령이 제정했고, 링컨 대통령 때 국경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11월의 네 번째 목요일을 미국이 추수감사절, Thanks Giving Day로 지키는 것과 교회가 11월 셋째 주일 혹은 넷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제정하고 지키는 것은 연관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물론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미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교회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교회의 역사일 뿐입니다.

 

먼저 연관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전통적으로 신약의 교회가 지켜오던 절기는 대부분 예수님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예수님의 오심을 기념하는 성탄절,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주현절,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고 동참하는 사순절,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그리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기념하는 오순절입니다. 신약의 교회가 역사적으로 지켜오던 절기는 이상의 여섯 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추수감사주일은 지킬 필요가 없는 절기일까요? 구약의 3대 절기는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역사와 관련이 있고 또한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시작했던 농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유월절은 유대절기로 아빕월에 있었고, ‘아빕월의 절기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브리어로 아빕은 어린 이삭을 뜻하고 또 유대력으로 1, 현대력으로 3,4월이기도 합니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농사로 풍성한 수확을 올리기 전에 먼저 어린 이삭 한 단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모든 농사의 열매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초실절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두 번째 절기인 오순절은 유월절이 지난 지 50일이 되는 때, 현대력으로 5,6월 경에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유월절 시기에 심은 보리를 거두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에 맥추절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추수한 첫 소산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세 번째 절기인 초막절은 수장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장막생활을 했던 것을 기념하여 7일간 초막을 짓고 생활하는 절기입니다. 9,10월에 수고한 모든 곡식으로 추수하고 감사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과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1. 우리가 지키는 절기들

 

정리해 볼까요? 구약에서 지키던 절기는 두 가지 핵심 정신이 있습니다. 그들이 역사에 대한 감사와 관련이 있고 삶에 대한 감사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던 출애굽의 역사와 가나안에서 은혜로 허락하신 삶에 대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의 교회가 유대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지키던 절기보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력의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구약의 율법을 대신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역사에 교회력의 초점을 두었고 앞서 소개한 6개의 절기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절기를 따르는 것이 좋을까요? 구약이니까 따르지 않아도 될까요? 신약의 교회가 정한 모든 절기를 다 따를까요? 아시겠지만 신약의 교회가 정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6개의 절기 또한 종교 개혁을 지나면서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카톨릭적인 형식주의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성탄절과 부활절을 모든 교회가 지키고 요즘은 사순절을 지키려는 개신교회가 많아진 반면 대강절이나 주현절, 오순절을 기념하는 개신교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개신 교회가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고 있고, 한 때 한국 교회는 맥추감사주일 또한 지켰었습니다.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2. 절기를 허락하신 이유

 

고대 이스라엘에는 절기를 결정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을 포함해서 그들은 꽤 많은 절기를 지켰습니다. 먼저 중요한 기준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시간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안식일과 안식년, 희년을 구별하여 예배했고, 월삭과 신년절과 속죄일을 구별해서 예배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기준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역사였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과 오늘날 하누카라고 일컬어지는 수전절과 부림절은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준은 농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월절과 같은 초실절, 오순절과 같은 맥추절, 초막절과 같은 수장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절기가 1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년 같은 시기에 반복해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periodical'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너무 쉽게 잊었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을 살면서 애굽에서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잊었습니다. 매일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를 받고 매일 아침 만나를 거두면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잊었습니다. 노예였던 그들을 인도하여 자유의 땅 가나안을 주신 것을 잊었습니다. 구약 선지서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탄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너무 쉽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그 은혜를 망각합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기 자체가 아닌 그 절기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둘째, 그래서 절기를 때를 따라 지키는 이스라엘과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어떤 삶의 현실 속에 있든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행하신 일을 기념하고, 오늘의 삶을 인도하심에 대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가 예수님과 관련한 교회력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키려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교회가 잊지 않도록, 성도들이 그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감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성찬을 제정하신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찬의 예식을 가르치시면서 나를 기념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성찬의 의미를 기억하고 예수님의 희생을 삶으로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절기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의 마음에 기억하고, 우리의 삶으로 기념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3. 자녀에게 가르치라.

 

절기를 지키는 중요한 목적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도 유월절에 부모와 함께 성전에 올라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토록 먼 길을 요셉과 마리아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성전으로 절기를 지키기 위해 갔을까요? 시편 785-8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78:5-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주시고 후대에게 가르치라 명령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자손들에게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잊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반대로 그들의 조상들 곧 하나님과의 언약을 잊고 욕심을 따라 살았던 세대와 같지 않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그들에 대해 행하신 일 - 역사를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 - 그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가르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은혜와 복을 기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기에도 이런 정신을 담아서 후손들과 함께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요, 우리 삶의 가치 또한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우리의 소망이 온전히 하나님께 있음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른 역사를 후손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4. 가족에서 공동체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절기들이 혼자 혹은 한 가정만 지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지켜야 했고, 오늘날 이 땅에 속한 교회들이 함께 절기를 지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에 추석이나 설날 명절이 되면 전국민이 이동을 합니다. 미국도 그렇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많은 이동이 있습니다. 한번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밖에서 하려고 해도 딱히 문을 연 식당이 없지 않습니까? 평소에는 다 다른 것 같고, 각자 자기 생각으로 사는 것 같아도 그 공동체가 서로 합의하고 지키는 절기가 되면 함께 축하하고 기념하고 교제하게 됩니다. 그 공동체의 정체성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교회에 절기를 함께 지킬 것을 명령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같은 절기에 같은 노래를 부르며 같은 소망을 품고 한 성전을 향해 올라가도록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한 공동체임을 확인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살다보면 각 지파끼리 이익이 충돌하고 가치가 충돌하고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 수 있습니다. 같은 성경을 봐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같은 사건을 놓고 편이 나뉘기도 합니다. 다 좋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공동체성을 잊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를 따라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부족함을 채우시는 은혜임을 고백하면서 함께 예배하고 함께 노래하며 함께 감사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기를 개인의 것으로 허락하지 않으시고 공동체의 자산으로 허락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공동체성을 회복했습니다. 이 원리가 오늘날 교회에서도 지켜지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함께 예배하는 사람들이며 오늘 함께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고민해야 합니다. 나의 감사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공동체성이 있는지 말입니다. 나의 감사가 이웃에게는 부당하지는 않은지, 나는 기쁨으로 감사하는데 누군가는 슬픔 가운데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 나와 함께 감사를 나누지 못하는 또 다른 공동체의 구성원은 없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혹은 어떤 사람은 지난 한 해 저렇게 많은 감사의 제목으로 하나님을 만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메마른 마음으로 만나는지...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하라는 것이 성경에서는 명령으로 선포되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감사가 아닌 필요와 욕구 앞에 내 마음과 삶을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지고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교회의 절기는 교회가 하나되고 함께 공동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나아가서 함께 감사와 찬양과 기쁨을 나누는 복된 시간입니다.

 

우리는 2016년의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의 1년에 함께 하셨음을 확인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한 해에는 더 큰 기쁨과 감사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을 자손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감사만이 아닌, 우리의 감사가 되고 이웃의 감사가 되며 우리의 자손들의 감사가 되는 추수감사예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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