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 9.이말을 들으라! | na kim | 2016-12-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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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4. * 본 문 : 사도행전 2장 37-42절 말씀 * 제 목 : 예배 - 9. “이 말을 들으라!” 오늘은 예배의 요소들 중에서 설교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질문을 먼저 드려볼까요? 설교 없이 예배가 할까요? 물론입니다. 예배는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을 성도들과 함께 경험하는 과정입니다. 성경을 그냥 읽어도 좋고, 찬양으로만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성경적인 예배의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가장 균형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다른 질문입니다. 균형 있는 예배를 생각할 때,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많은 경우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기 때문에 목회자를 예배에 가장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일부분 맞고 많은 부분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배는 회중과 하나님의 사귐입니다. 공동체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설교는 예배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과 공동체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함께 듣고 나누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하거나 없어서는 안될 요소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예배의 모든 순간과 요소들이 함께 중요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예배를 드리는 회중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자,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 설교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한국의 한일 장신대학원장으로 있는 정장복 교수님은 제자들에게 설교를 가르치면서 ‘유통업’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이전에 한번 말씀드린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영어에서 ‘delivery’라는 동사를 사용하는 몇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예, 편지나 피자를 배달할 때입니다. 또... 아기를 낳을 때입니다. 그리고 설교에서 사용합니다. ‘설교를 하다’는 영어의 표현은 ‘deliver a sermon'입니다. 왜 delivery일까요? 피자를 배달하려면, 피자가 식기 전에 가장 맛있는 상태로 배달해야 합니다. 피자를 시켰는데 짜장면이 오면 안됩니다. 아기를 낳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는 아들이었는데 낳아보니 딸이더라... 이런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있는 그대로 세상에 건강하게 나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설교는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좋은 설교는 단순하게 하나님이 드러나는 설교입니다. 정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유통업의 중요성이 제삼 강조되고 있다. 공장에서 아무리 좋은 물품을 생산할지라도,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그 제품의 가치는 반감되거나 심지어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유통의 분야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면, 언제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 단지 가격의 문제만은 아니다. 싱싱한 물건을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제 때에 제 물건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설교와 신학이라는 주제를 살펴봄에 있어서, 우리는 이러한 유통구조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현상황에 대한 비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을 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습을 눈에 보이도록, 마음에 느껴지도록, 그리고 우리 삶 가운데 경험되도록 하나님을 전달하는 것이 설교의 목적이다.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삶 전체에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설교하기는 하나님의 현존과 역사를 유통하는 것이다. 저는 이 교수님의 설교에 대한 가르침이 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예배에 있어서 설교의 위치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방법이 다양합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세 가지를 중심으로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선포’(proclaim)와 '가르침'(teaching)과 ‘나눔’(sharing)의 관점에서 봅시다. 1.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Proclaim)하는 것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개념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개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베드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초대교회의 최초의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각일까요? 아닙니다. 그 시대와 교회에 하나님의 생각을 전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선포라고 이해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의 생각과 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오으로 파송을 받아서 했던 사역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행 13:4-5) ”The two of them, sent on their way by the Holy Spirit, went down to Seleucia and sailed from there to Cyprus. When they arrived at Salamis, they proclaimed the word of God in the Jewish synagogues. John was with them as their helper.“(Acts 13:4-5) 한글 성경에서는 ‘전한다’고 표현되었는데 영어 성경에는 ‘선포했다’(proclaim)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설교가 선포인가? 그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선지자 예레미아의 시대상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외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거리에는 또 다른 외침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외치는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보다 더 놓은 목소리로 외쳤고, 예레미야의 뺨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설교일까요? 예, 설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을 떠들었을 뿐입니다. 좋은 설교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달 때도 ‘선포’는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활일까요? 때로 설교는 설득이 필요하고 공감이 필요합니다.
2. 말씀으로 가르쳐야(Teaching) 합니다. 그래서 설교의 두 번째 측면은 ‘가르침’입니다. 목사가 가지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은사는 바로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목사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고 개발되어야 할 은사가 있다면 바로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설교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물론 이 설교는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당시 베드로가 거리로 나가서 설교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십시오. 14-15절을 보시겠습니까?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행 2:14-15) 그는 먼저 상황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자신의 설교로 초청합니다. 16절에서 그는 선지자 요엘을 소개하고 17-21절까지에서는 그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22절에는 다시 청중을 자신의 설교로 초대하고 있고, 22절 중간에서부터 예수님을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못 박았던 예수, 죽였던 예수는 바로 그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야임을 설명하고 가르칩니다. 36절이 베드로의 설교의 절정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선포로 끝납니다. 베드로의 설교에는 설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복음에의 초대도 포함됩니다. 선포는 청중의 반응과 상관이 없습니다.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입니다. 하지만 가르침은 청중이 중요합니다. 37절에서 청중들이 마음에 찔렸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며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베드로는 38-40절까지 다시 말씀을 전합니다. 38절을 봅시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설교가 선포만이 아닌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설교는 설득의 과정과 배움의 과정, 즉 Teaching을 포함합니다. 3. 은혜를 나누어야(Sharing) 합니다. 세 번째 설교에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이 요소는 사도 바울의 설교에서 잘 나타납니다. 바울은 종종 자신을 아주 겸손하게 표현합니다. 자신을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고전 15:9)이며,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 3:8)이며, 죄인 중에서 괴수(딤전 1:15)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얼마나 큰 핍박자였는지를 고백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오호라...’ 탄식하며 고백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선포인가요? 가르침인가요? 그보다 더 중요한 면이 설교에는 숨어 있습니다. 바로 자기 고백을 통한 ‘은혜의 나눔’입니다. 설교자 또한 하나님 앞에서 한 성도요 예배의 청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존엄하심 앞에 설교자 또한 겸손하게 노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그 은혜를 나누는 것이 우리 예배에서의 설교입니다. 개인의 신앙 경험이 공동체의 경험이 되는 과정이면서 설교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선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솔직해야 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은혜의 나눔에 대한 지나친 열심 때문에 사실이 아닌 예화를 사용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이나 느낌을 과장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목회자가 삶을 통해 받은 은혜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설교입니다. 4. 설교의 능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정리해볼까요?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설교를 세 가지 개념으로 정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바른 삶으로 인도하는 것,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눔으로 은혜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는 이것이 잘 되고 있나요?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는 좋은 설교가 이뤄지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공동체와 예배에서 좋은 설교가 있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설교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책임은 설교자에게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일과 공부하는 일과 이 말씀의 context가 되는 오늘의 삶을 통찰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나아가서 청중들에 대한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설교가 좋은 대화이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허락하신 공동체를 더 좋은 말씀으로 섬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할 의무가 제게 있습니다. 설교 잘하는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delivery하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제가 선택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말씀 앞에서 낮아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나를 설명하거나 자랑하거나 주장하거나 합리화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낮아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높아져서 온전하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가 설교하고 37절을 보면 사람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그날 3000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는 거의 같은 내용으로 설교한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스데반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반응을 짧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행 7:54)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스데반을 돌로 칩니다. 그들은 같은 내용으로 설교했습니다. 같은 성령에 사로잡혔습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만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합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복음보다 더 놓은 곳에 놓인 그들의 마음에 있습니다. 설교자나 설교의 내용만큼 중요한 요소는 청중의 낮은 마음입니다. 낮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고입니다. 낮은 마음에 말씀의 능력의 채우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풍성한 은혜와 능력을 나누고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 사는 우리들이 하늘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을 느끼며 삶의 원칙과 질서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임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예배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채우심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더욱 낮아져야 합니다. 더욱 진실해야 합니다. 더욱 간절해야 합니다. 더 낮고 깊은 곳에 많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더 낮은 곳에서 더 간절히 말씀을 사모하는 교회와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배와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더 친근히 만나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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