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편지입니까? " | na kim | 2017-01-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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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5. * 본 문 : 고린도후서 3장 1-5절 말씀 * 제 목 : “어떤 편지입니까?” 지난 주에 저는 편지를 한 장 받았습니다.(사진1) 자동차 판매회사에서 신년에 판촉을 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기 사진에 나온 사람이 눈에 익었습니다. 생각해보니 5년 전 우리 교회의 12인승 밴을 살 때 문전도사님과 제가 함께 만났던 분입니다. 참 친절한 세일즈맨이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흔쾌하게 맞춰줘서 차를 구입했고, 그 일이 인연이 되어서 지금은 한국으로 간 조양화 성도의 차를 저분에게 구입했었습니다. 이후에도 몇 번 더 찾아가서 차량 구입에 대해 의논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받고 저분의 얼굴을 보니 여러 가지 좋은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잠시 마음이 행복해졌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었습니다. 저분의 이름은 Len Appel입니다. 그런데 편지를 보낸 사람은 James Schwartz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자동차 회사의 매니저로 자신을 소개하고는 무거운 마음으로 편지를 보낸다고 썼습니다. 참 좋은 세일즈맨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좋은 친구였던 Len이 지난 해 말 연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어... 조금 놀랐고, 무거웠던 편지만큼이나 저의 마음도 무거워졌습니다. 함께 슬픔을 나누고 앞으로도 Len을 대신해서 자신들과도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받고 오후 내내 마음이 찹찹하니 가라앉았습니다. 사실 그 편지 자체는 제게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통씩 받는 고객을 관리하는 편지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로 저의 마음이 좋았다가 우울해졌습니다. 왤까요? 그 편지에는 사람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뜯고 Len의 얼굴을 봤을 때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많은 기억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이 교회당을 건축할 때가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교회당을 리모델링하면서 사용했던 15인승 밴도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타는 밴에 온갖 공사 자재를 실어 날랐던 그 밴을 꽤 좋은 가격에 트레이드를 해서 지금의 12인승 밴을 구입했습니다. 저 밴을 타고 신나게 아리조나까지 단기 선교를 갔었습니다. 미 대륙을 선교팀과 함께 여행하면서 참 좋은 기억들이 많습니다. 뉴멕시코의 끝없는 광야도 달렸고, 콜로라도의 산을 이어서 산으로 굽이치는 길도 달렸고, 유타의 신비한 마뉴먼트 밸리도 달렸습니다. 한 집사님이 사막 거미에 물려서 손이 퉁퉁 부어서 응급실을 찾아서 인디언 보호구역을 뒤지던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Len에게서 차를 구입했던 조양화 성도와 두 아이들과 타고 다니던 차도 생각이 났었습니다. 한 사람과의 길지 않은 만남이 풀어내는 참 좋은 이야기들, 즐거운 기억들이 이렇게 많았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편지에서 어떤 일로 갑작스럽게 부르심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 그 사무실에 한번 들러서 차에 대해서도 묻고 그리고 Len에 대해서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편지 한 장을 놓고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1. 빌레몬과 오네시모 2년 전에 주일 예배 설교에 빌레몬서를 몇 주간 나눠서 묵상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께 따라하라고 부탁했던 한 구절이 있는데 기억나십니까? 어떻게 보면 빌레몬서는 옥중서신의 백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고백되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지역의 귀족이자 골로새 교회의 장로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만나서 복음으로 변화시킨 한 사람 오네시모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큰 죄를 짓고 도망친 노예였습니다. 로마시대의 도망친 노예는 아무에게나 잡혀도 바로 사형입니다. 오네시모가 살 수 있는 길은 가능하면 로마의 통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고, 빌레몬에게서 잊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 쓰고 그 편지를 오네시모의 손에 들려서 보냅니다. 이건 정말 잔인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오네시모라면 사도 바울에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나를 구원하는 복음을 믿는다고 해도, 나를 죽음과 고통의 땅으로 돌려보내는 일에 순종해서 도망친 그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오네시모는 순종합니다. 복음이 얼마나 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는지를 삶으로 보여줍니다. 바울이 보내는 편지를 빌레몬이 받았을 때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도 종들이 웅성거릴 겁니다. 종들 중 하나가 뛰어와서 보고합니다. “주인님, 1년 전에 죄를 짓고 도망갔던 오네시모가 제 발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무런 생각이 없고 단순한 사람이면 “꽁꽁 묶어서 매우 쳐라!” 정도의 명령을 내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빌레몬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민할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오네시모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것 자체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레몬은 오네시모에게서 빌레몬서를, 함께 온 에바브라에게서 골로새서를 받아서 읽습니다. 빌레몬서에는 오네시모의 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에는 종이었고 해롭게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복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으며 죽음을 각오하고 빌레몬과 골로새 교회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일꾼이 되려고 합니다. 그리고 골로새서에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는 말씀과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골 4:1)의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일 바울이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기를 “내가 오네시모를 데리고 있는데 당신이 용서를 해줄 것 같으면 보내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복음을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어떻게 용서를 하지 않습니까?” 라고 했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빌레몬이면, 그래서 이런 편지를 받으면 용서할 수 있을까요? 저 같으면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회사를 보면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받았고, 함께 골로새 교회의 장로가 됩니다. 어떻게, 왜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 편지를 오네시모가 들고 왔기 때문입니다. 글로 쓴 편지가 아니라 삶으로 새긴 편지를 오네시모 자신이 들고 왔습니다. 오네시모의 변화는 사도 바울의 글에 기록되었고, 그리고 오네시모의 삶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레몬 또한 그리스도의 평안의 복음, 회복의 복음에 자신을 맡기고 하늘의 상전의 말씀을 따라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서로에게 복음이 되는 사람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부탁드린, 함께 따라했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도 서로에게 복음이 되는 삶을 살자고 다짐하면서 함께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시 한번 따라 합시다. “당신은 나에게 허락하신 복음입니다. 당신을 통해 복음에 합당한 삶을 배우겠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허락하신 복음입니다. 내 삶에 기록된 복음을 당신에게 전하겠습니다.” 우리 초대교회 성도들이 단순하면서 소박한 꿈을 하나 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우리가 조금 전에 고백한대로 서로에게 복음이 되고 서로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꿈입니다. 서로를 만나고 대화하고 경험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빌레몬은 편지를 들고 죽음의 예상되는 자리로 돌아온 오네시모에게서 글로 쓰인 복음이 아닌 삶으로 고백되는 복음을 읽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읽었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읽었습니다. 그 복음이 빌레몬의 마음에 다시 기록되고 빌레몬 역시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게 됩니다. 3.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바로 우리의 편지다”(2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고백한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3절에서도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는 그리스도의 편지니...”(3절)라고 했습니다. 참 아름다운 말씀이자 고백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말씀의 배경은 그렇게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고후 3:1) 당시에는 권위에 인정되는 사람의 추천의 편지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괴롭게 하던 유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율법주의적 주장을 강화하고 교회를 설득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초대교회들을 방문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 교회는 은사주의에, 율법주의에, 신앙적 영웅주의에 빠져서 혼란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강력한 추천서로 무장한 거짓교사들은 사도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바울의 사도성을 부정하고 가르침을 거짓된 것으로 비난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해서 사랑의 은사에 대해 가르쳤고, 아직도 혼란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교회에 대해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각종 이단의 사설로 무장한 많은 거짓 교사들이 화려한 문장과 대단한 배경으로 추천서를 써서 너희들에게 가져오지 않았더냐? 너희들은 그들의 말과 글에 마음을 빼앗겨서 이렇게 십자가의 능력을 의심하고 복음을 전하는 나의 사도성까지도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참된 편지는 스스로 자천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편지는 바로 너희들이다. 너희가 우리의 마음과 삶에 기록되어 있다. 너희는 우리가 쓴 편지요 주님께서 세상에 대해 쓴 편지다. 세상이 너희를 보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읽는다. 화려한 말과 글로 너희를 유혹하는 편지들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영으로 쓴 편지를 보자. 그 편지는 바로 너희 고린도 교회이다.” 사도 바울은 4절과 5절에서 확신과 만족에 대해 말합니다. 스스로가 하나님의 편지요,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의 편지인 것에 대해 확신하며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어떤 편지입니까? 본문은 두 가지 종류의 편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한 편지는 유대주의자들이 써온 자천하는 편지입니다. 자신들이 옳다는 편지입니다. 아마도 율법사들과 제사장들이 화려한 말과 무거운 권위로 쓴 편지일 것입니다. 여러 가지 말로 자신들을 칭찬하고 높이고 거짓된 사설로 교회를 혼란하게 했습니다. 거짓된 편지를 써서 고린도 교회에 다가온 사람들은 교회를 해롭게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사랑을 말하지만 희생하지 않고, 메시야를 말하지만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편지는 하나님을 말하지만 그들의 삶은 하나님을 적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삶에 기록될 때 사람은 곧 복음이 되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자신을 높이고 만족을 구할 때 사람은 복음의 적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편지가 있습니다. 그 편지는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교회입니다. 성도들입니다. 바울은 복음에 순종하고 복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하나님이 보내신 편지가 된다고 말합니다. 오네시모가 편지가 되고 빌레몬이 편지가 됩니다. 에바브라가 편지요, 디모데가 편지입니다. 복음을 받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시는 지울 수 없는 편지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묻습니다. 우리는 어떤 편지입니까? 서로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은혜를 읽을 수 있는 편지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과 감격이 읽히십니까?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과 겸손이 읽힙니까? 섬기고 나누는 삶에서 복음을 읽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삶에서 율법이 읽힙니까? 내 인격 하나, 성품 하나, 습관 하나 바꾸지 못하는... 다만 정죄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간섭하기만 하는.... 관계를 깨뜨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무너지게 하며 자천하여 자신만 높아지는 글로 가득합니까? 우리는 어떤 편지입니까? 우리의 삶을 경험하고 읽고 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읽힙니까? 답답한 이 세상이 그대로 보입니까? 우리 교회는 어떤 편지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교회의 예배와 섬김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갇`히고 속박당하고 세상의 나라가 번성하고 있습니까? 저는 오늘 제가 받은 편지 하나를 여러분께 소개했었습니다. 편지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편지에 있는 사람이, 그가 내게 보여준 친절이 많은 기억들과 함께 제게 다가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에게 물어 봅니다. 나는 다른 성도들에게 어떤 편지로 살고 있는가? 어떤 편지로 살기를 원하는가? 너무 자기 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우리 초대교회를 살아있는 하나님의 나라, 움직이는 복음으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이 지역사회와 시대에 대해 하나님이 보내신 편지입니다. 이 사명, 믿음으로 감당합시다. 이 은혜, 감사하게 받읍시다. 이 복음이 우리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용기있게, 담대하게 도전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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