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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너머, 교회 na kim 2017-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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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22.

 

* 본 문 : 요한복음 1014-16절 말씀

* 제 목 : 담장 너머, 교회

 

야곱의 축복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실은 야곱의 요셉에 대한 축복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은 요셉에 대한 축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49:22)라고 했습니다.

 

저는 담장 너머로 뻗은 가지라고 하니까 7-8년 전 플로리다에 갔던 기억이 났습니다. 잘 아는 권사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가는 길에 오렌지 과수원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플로리다 오렌지가 얼마나 좋은지 울타리를 넘어서 가지를 뻗치고 열매 또한 울타리 밖에 뚝뚝 떨어져 있었습니다. 권사님이 차를 잠시 세우더니 오렌지를 몇 개 주워오셨습니다. 플로리다 오렌지를 맛보라고 권하셨습니다. 먹어도 되는지... 머뭇거렸더니 권사님 말씀에 플로리다에는 워낙 오렌지가 많아서 울타리 밖에 떨어진 오렌지는 이웃들이 먹어도 된다고 하시더군요. 충분히 익어서 떨어진 오렌지여서 그런지 정말 달고 맛있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사랑하고 자랑스러운 아들 요셉을 축복하면서 담을 넘은 무성한 가지라고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자녀들에 대한 축복이 예언적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따라서 축복한 것이고 그것은 장차 이루어질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요셉을 다른 모든 야곱의 자녀들과는 다른 담장을 넘는 가지라는 말로 축복하셨을까요? 담장을 넘었다는 말은 과연 축복일까요?

 

1. 담을 지키려는 사람들

 

저는 플로리다에서 오렌지 농장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쳐놓은 울타리를 넘어서 떨어지는 열매를 그 지역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심고 가꾼 과일을 다른 사람들이 왜 먹어? 왜 나의 노력의 결과를 아무런 땀도 흘리지 않은 사람들과 나눠야 해? 차라리 내가 담장을 넘는 가지를 잘라버릴지언정 내 땀의 열매를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는 없지!” 이렇게 결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실은 이런 결정을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2000년 전의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민족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가 다른 민족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은 여러 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었습니다.(사진 예루살렘 성전) 각 공간을 나누는 것은 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방문한 이방인은 성전을 순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밟을 수 있는 땅은 이방인의 뜰이라고 이름붙인 성전의 앞마당뿐이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을 나누는 담이 있습니다. 유대인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담을 넘으면 여인의 뜰이 있습니다. 유대인이지만 남자와 여자 사이에 담이 있습니다. 담을 넘으면 이스라엘의 뜰, 즉 남성 유대인들이 들어갈 수 있고 제사를 구경할 수 있는 작은 뜰이 있습니다. 또 담이 있습니다. 담을 지나면 성소입니다. 제사장들만 들어갑니다. 제사를 준비하고 집행합니다. 그런데 또 담이 있습니다. 지성소입니다. 오직 대제사장만 정한 시간에 들어갑니다. 담은 단순히 공간을 분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차별의 표현이자 이기심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오셔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을 때, 그 복음에 동의할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이기심의 담장을 넘는 은혜였습니다. 성전의 담장을 허무는 모든 민족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만에 다시 짓겠다는 말씀을 그들은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했을 때 그들은 이 누구든지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메시야를 못 박고 더욱 높은 담장을 튼튼하게 쌓았습니다.

 

2. ‘담장 밖에 있는 양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10:14-16)

 

16절에서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한 개념을 소개합니다.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압니다. 그들은 담이나 우리, 장벽에 아주 민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그 안에만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것입니다. 우리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메시야로 왔다는 예수가 그들의 기대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메시야라면 우리만 누릴 수 있는 복과 은혜를 더 많이 부어주고, 그것이 새어나가지 않게 더 높은 장벽을 세우겠다고 해야 하는데,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의 범위가 우리에 들지 않았던 다른 양들에게도 미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만 허락되었던 것을 다른 민족에게도 주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도 선한 목자의 사역의 범주 안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메시야가 다른 민족을 위해서도 목숨을 버린다고!!! 유대인들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3. 담장 너머, 교회

 

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현대 교회에 대해 진단하는 공통된 의견이 있습니다.현대 교회가 세계 교회사의 한 중대한 고비를 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울타리를 세우고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 모으던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담장 안의 교회를 지향해왔습니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커지고 세상의 강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줄어듭니다. 분명 성장을 지향하고 여러 가 이전에는 갖추지 못한 것들을 구비했는데 교회는 점점 쇠락하는 것 같습니다.

 

풀러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는 앨런 락스버그라는 교수는 최근 서양의 교회가 침체된 이유로 다음 4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정보와 기술이 있으면 무엇이든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능적 합리주의, 둘째는 교회의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 프로그램, 셋째는 선교도 전도도 구제도 오직 교회를 위해서 해야 한다는 교회 중심적 사고, 넷째는 교회를 평신도와 목회자로 나누고 평신도는 관객으로, 목회자는 배우로 만드는 목회자 중심적인 사역입니다. 그는 이 네 가지 경향성을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아닌 성장과 번영을 추구하는 미신적인 확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현대 교회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담장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은 이미 교회의 담장을 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2000년 전, 예수님의 사역의 범위가 이미 예루살렘 성전을 넘어섰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의 사역의 범위가 교회의 담장을 넘어서 이웃에게로, 지역 사회로, 낮에도 빛이 임하지 않는 깊고 구석진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2000년 전, 인류의 모든 죄와 악을 책임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셨던 우리 주님의 복음입니다. 우리 안에 들어있지 않은 양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셨던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그리고 2000년 교회의 역사에 누군가는 구원과 교회의 은혜 안에 갇혀서 살았지만, 그 누군가는 복음을 들고 끊임없는 담장을 넘고 또 넘었습니다. 이기심과 자기 한계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복음이 명령하는 대로, 복음이 가고자 하는 대로 자신의 시간과 개정과 삶을 바쳐서 끊임없이 담장을 넘고 또 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사도행전 1장에서 승천하시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성도들은 담장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넘어서서 온 유대로 갑니다. 사마리아로 갑니다. 땅 끝까지 갑니다. 복음이 가고자 하는 모든 곳으로 갑니다. 모든 담장을 넘어섭니다. 그 담장 너머에 우리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원래 우리 안에 들어있지 않은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교회가 섰습니다. 담장 너머, 그곳에서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또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에게 목자되신 예수님이 묻습니다. 담장 안에 머무를 것인가? 담장을 넘을 것인가?

 

지난 해, 어느 늦은 가을 오후 저는 감동적인 장면 앞에 입을 벌리고 서 있었습니다. 너무 예쁘고 아름답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왔는데요, 보실까요?(사진1,2,3,4...) 그리고 시를 한 편 지었는데, 실은 오늘의 설교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이미 페이스북을 통해서 지난 가을 소개를 했습니다만... 오늘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담쟁이 연가

 

담쟁이

담장을 오른다.

빼곡한 얼굴마다

붉게 물들었다.

서리서린 호흡

서로 추스르며

담장을 오른다.

 

사랑은 이뤄지는 걸까?

하늘에 닿을까?

저 너머 구름에

뿌리 내릴 수 있을까?

 

이유를 묻지 마라.

얼굴만 붉어진다.

마음도 붉다.

 

담벼락 올라 담쟁이

손톱 갈라져도

다시 손을 뻗는다.

칼바람 씽씽

늦은 가을에

담벼락, 차가운 담벼락

빽빽하게

담쟁이

불을 지른다.

손끝마다

불꽃이 핀다.

 

사실 그렇게 잘 쓴 시가 아니라 부끄럽기도 합니다만, 제가 느낀 감격을 잠시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저렇게 우르르 담장을 올라가고 있는 담쟁이 이파리들을 보면서 이런 것이 교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혼자라면 못할 수 있겠습니다. 쉽게 시들고 꺾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파리들이 얼기설기 몸을 엮어서 딱딱하고 차가운 돌담장을 올라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넘어설 것입니다. 이미 오르기 전에 이번 가을이 다간다면, 추운 겨울이 온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봄이 오면 다시 담장을 오를 것입니다. 담쟁이는 담을 올라야 담쟁이입니다. 교회는, 우리 밖에 있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선한 목자 예수를 믿는 성도와 교회는, 교회라는 담장을 넘어서서 이웃으로, 지역 사회로, 시대로 나아가야 교회입니다. 받은 사랑을 내 안에 담지 않고 섬겨야 교회입니다. 받은 은혜가 고이지 않고 샘이 되어 흘러 넘쳐야 교회입니다. 담쟁이가 담을 넘습니다. 교회가 벽을 넘고 담을 넘고 다리를 건넙니다. 복음이 삶이 되어 세상으로 흘러나갑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4. 요셉의 참된 복

 

저는 요셉을 향한 야곱의 축복에 비밀의 열쇠가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축복의 서두에서 담장을 넘는 가지에 집중하다보니 소홀했던 한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26절의 말씀입니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49:26)

야곱의 자녀들에 대한 축복은 예언적 성격이 있다고 했습니다. 담장을 넘는 가지로서의 요셉의 역할은 예수님에 의해 성취됩니다. 초대교회에 의해 다시 실현됩니다. 교회 역사를 통해서 다시 재현됩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실천됩니다. 그리고 이 복에 헌신하는 모든 성도와 교회에 하나님은 정말 큰 복을 허락하십니다. 바로 26절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요셉에게 허락된 가지가 담장을 넘는 복은 다른 모든 복보다 뛰어난 복입니다. 그 복은 결국 다시 요셉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그것도 정확하게 정수리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담장 밖으로 나가서 손해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우리 밖에 있는 양들까지 돌보다 보니 부족할 줄 알았는데, 그 사랑과 은혜가 교회 밖으로 나가서 소진되고 사라질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모든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다시 모여서 요셉의 머리로, 정수리로... 교회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복은 당대에 그치겠지만 이 복은 섬기는 복, 나누는 복, 그리고 돌아오는 복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큰 축복을 받고 우리 것으로 삼기 위해서 담장 너머로 가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담을 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하는 초대교회, 그리고 오늘날 교회의 견고한 담장을 넘어서서 이웃에게로, 시대의 아픔으로 들어가는 교회들에게 허락되는 복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으로 세상을 섬기는 순종과 섬김의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2017년에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명도 주십니다. 어떤 사명입니까? 주님과 함께 담장을 넘는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밖에 있는 양들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와 복과 사랑을 나누고 섬기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담장 너머에 우리가 섬겨야 할 죽어가는 생명들이 있습니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과 함께 복음으로 이 악한 세대와 세상을 인도하는 성도들과 초대교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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