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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과 은혜(7) : 이생의 자랑 na kim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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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14.

 

* 본 문 : 요한1215-17절 말씀

* 제 목 : 우상과 은혜 - 7. 이생의 자랑

 

오늘은 2017년 어버이 주일입니다. 요즘 말씀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우리가 그 은혜를 외면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우상에 대해 나누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게 부모님을 공경하자는 등의 말씀을 준비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번 주 중에 보고 감동 받았던 영상 하나를 먼저 보고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영상 1) 부모가 되어 갈수록 부모님의 사랑의 깊이를 깨닫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가 함께 부모 되고 또 자녀 되어서 허락하신 은혜를 풍성하게 나눌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제 11회 동부지역 목회자 체육대회가 뉴욕에서 열렸습니다. 필라델피아 목사회에서도 30명 정도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축구와 배구와 족구를 토너먼트로 해서 이번에는 필라델피아 목사회가 종합 우승을 했습니다. ... 크게 의미는 없습니다.

 

각 지역 목사회가 돌아가면서 주최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뉴욕 목사회가 주최를 했었습니다. 목사회장 되시는 분이 나와서 개회사를 했습니다. 나이가 한 60쯤 되시고, 건강 관리를 잘 하신 것 같았습니다. 얼마 전에 자신이 딸과 함께 아틀란타에서 열린 하프 마라톤에 참여했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나이 6020km가 넘는 장거리를 완주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것도 2시간 정도에 주파하셨다고 했습니다. 우와... 목사님들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기분이 좋아지신 그 목사님은 비결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은 뛰면서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4가지로 된 구호를 외친다고 했습니다. 마라톤을 할 때뿐만 아니라 목회를 할 때도 그런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선창을 할테니 모두 따라해보라고 했습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성령 충만!” 마지막 구호가 압권이었습니다.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구호였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그 목사님은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무적 해병!” .... 침묵이 흘렀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좀 오래되기는 했고, 또 다소 거부감을 줄 수는 있지만... 또 본인이 원하면 외칠 수 있는 구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적해병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 목사님은 자신이 60이 넘은 나이에 마라톤을 하고 이렇게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무적해병정신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체육대회를 하면서 계속 던졌던 질문은 해병은 정말 무적일까?’하는 것이었습니다. ^^

 

1.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니라!”

 

사도 바울은 여러 서신서에서 자신을 다양한 말로 소개합니다. 그의 자기 소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받은 은혜와 사명에 근거한 소개입니다. 예를 들어서 로마서 1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 신분이 무엇이며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사명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밝힙니다. 받은 은혜와 사명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가 가득합니다. 그가 보낸 모든 서신서의 11절에서 자신을 그렇게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울은...”

 

반대로 그는 때로 자신을 겸허하게 표현합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는 자신이 자도로서, 성도로서, 그리고 은혜를 입은 죄인으로서 어떤 존재인지를 고백합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 15:9)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3:8)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이런 고백들을 통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겸손함과 그가 느끼는 하나님의 높으신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낮아지고 더 많은 감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2. ‘흠이 없는 사람’ vs. ‘배설물

 

그런데 빌립보서 3장을 보면 바울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당시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내야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괴롭히고 어지럽게 하던 유대주의자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과 전통을 강조하면서 빌립보 교회를 비롯한 이방인 성도들이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 대해 자신도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4절부터 6절까지를 보실까요?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3:4-6)

 

그는 스스로를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율법적인 의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지키는 전통과 율법이 자신들을 의롭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관점에서 보면 지금 유대인들이 공격하고 있는 사도 바울 자신은 그들이 손가락질할만한 아무런 흠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랑할 것이 많습니다. 난 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혈통적으로도 히브라인으로 부족함이 없고, 율법적으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는.... 그 열심이 지나쳐서 다른 신앙을 고백하고 전하는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의로는 그는 완벽한 사람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자신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분이 있으십니까? 바울은 적어도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는 흠 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7절을 봅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3:7-8)

 

사도 바울은 자신이 자랑할 만한 그 모든 것, 자신이 흠이 없다고 말할만한 그 모든 증거들을 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3. 이생의 자랑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교회에 대해 권면하면서 먼저 세상이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세 가지로 정리하기를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잊는 중요한 것 하나는 이러한 권면들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 것이 아니라 믿는 성도들과 교회에 전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와 성도들 또한 여전히 세상에 대한 정욕과 자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것이 성도의 마음에 가득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 숭배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나는 뭐... 세상의 정욕에 사로잡힌 것도 아니고, 뭐 그렇게 자랑이 많은 사람도 아니니까... 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의외로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자랑하는 것, 믿는 것,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서 걸려 넘어집니다. 제 친구 목사님 중에 한 분, 거의 성악가의 수준으로 찬양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저희가 신학교에 다닐 때 결혼식 축가나 부흥회 특송에 불려다녔습니다. 여러 번 CCM 가수로 추천되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여전히 목청 하나는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목회에 늘 어려움이 있습니다. 찬양을 좋아하고 잘하다보니 열심히 하고 많이 하는 것은 좋은데, 그 교회 찬양 사역자와 늘 부딪히게 됩니다. 지휘자나 반주자에게 간섭을 합니다. 음향에 지나치게 민감합니다. 찬양에 은사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하나님이 그에게 그 은사를 선물로 주신 것은 맞는데... 그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면 좋은데... 그의 찬양의 은사는 차라리 없는 것이 목회에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실은 그런 목사님들이 제법 많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자랑하며, 그것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감정을 사용하고 관계를 사용합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이 됩니다.

 

저는 뉴욕 목사회 회장님이 한국에서 마라톤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60이 넘은 어른이 42.195km의 절반을 2시간 조금 넘는 시간에 주파하려면...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나고 죽을 고비를 넘나들면서 뛰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가르쳐준 구호를 외치고 또 외쳤을 겁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모두가 한국말을 못알아듣는 미국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만일 어떤 한국 사람이 목사님 옆을 지나가는데 누군가가 뛰면서 ....... ......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좀 이상한데, 거기다가 ...!”까지 해버리면.... 아마도 뛰다가 잠시 멈춰서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성령충만과 무적해병의 신학적인 상관관계에 대해서 말입니다. 제가 그 목사님의 목회를 다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해병대정신으로 목회를 하신다는 그 목사님은 그것이 자신의 목회의 한계를 설정하는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행하는 성도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율법주의자들에게 선언합니다.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유대주의적인 모든 가치는 내게 있어서 해가 되는 것, 반드시 버려야 할 배설물에 불과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울의 고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가장 귀한 보석을 발견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 또한 새로운 가치로 발견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주는 모든 가치와 자랑거리를 담대하게 버릴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가치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요한1217절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 2:17)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다 지나갑니다. 우리의 욕심과 즐거움도 다 지나갑니다. 사라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던 시간,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명에 헌신했던 삶,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자랑이 되었던 수고와 희생은 영원합니다. 우리들의 시간과 삶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간에 드렸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의 삶을 씨 뿌렸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기쁨과 영광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요한1212절에서 자녀들아....”로 권면하고 있고, 13절에서 아비들아...”로 권면하며, 14절에서 아이들아...”로 다시 권면합니다. 자녀이든 부모이든 아이들이든... 성도가 허락하신 시간을 사는 원칙은 동일합니다. 세상에 뿌리는 내린 자랑과 욕심이 아닌 오직 하나님에게서 허락된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의 강물에 던지는 믿음과 지혜의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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