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과 은혜 - 9.빈들에 서라. | na kim | 2017-06-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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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4. * 본 문 : 마가복음 6장 7-16절 말씀 * 제 목 : 우상과 은혜 - 9. 빈들에 서라. 최근 우리 교회에는 연달아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스스로 태어나는 일이고, 또 죽음을 막는 일 아닐까요? 하나님은 내가 자신에 대한 아무런 의식이 없을 때 세상에 보내셨고, 부모를 통해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허락된 시간을 살다가 내가 원하지 않은 시간에 선택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 앞으로 가게 됩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허락하신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모든 선택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지는 못합니다. 수많은 환경의 변화가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의지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인생을 나그네길에 비유했습니다. ‘인생여정’(人生旅程)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줄 알지 못하는 그 사이에서 울고 웃으며 함께 산다는 뜻입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가치 있게 사는 것일까요?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서 어떤 여행을 하는 것이 좋을까요?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떠나 첫 번째 여행을 하게 하시면서 우리들에게 어떤 인생을 살아야하는지, 우리 인생의 여정을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은지를 보여주십니다. 먼저 제자들의 여행을 생각할 때.... 정말 특별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자들의 여행의 결과입니다. 성경은 제자들의 여행의 결과를 한 줄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4절 상반절을 봅시다.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요 6:14) 성경은 제자들의 여행의 결과를 통해서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며, 우리가 어떤 결과를 만날 때 가장 빛나는 인생을 산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여행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내 삶의 결과가 내가 아닌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이렇게 살고 싶으십니까? 이런 삶을 위해서 우리는 제자들의 여행을 한번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무엇을 들고 갈 것인가? 여러분은 여행을 할 때 가장 먼저 챙기는 물품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여행의 목적에 따라 다를 겁니다. 8월이 되면 우리 교회는 선교여행을 갑니다. 무엇은 들고 갈까요? 사역에 필요한 것들, 그리고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들, 예수님의 마음과 닮은 마음을 들고 가면 되겠지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 첫 여행을 떠납니다. 전도여행입니다. 무엇을 들고 갈까요? 예수님이 그들에게 두 가지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먼저 전할 말씀을 주셨습니다. 12절에 보면 제자들 또한 예수님이 전하셨던 복음과 같은 복음을 전합니다. 또 하나 주신 것은 7절에 복음의 능력-‘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입니다. 복음 아닌 것을 구별하여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전해야 하는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버려야 할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전도 여행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가지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만 신고 두벌 옷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좀 더 편하게, 좀 더 여유 있게 해도 되는 것 아니었을까요? 2.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우리는 이들의 전도 여행의 결과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과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당시 유대 민중들이 필요로 했던 돈이나 빵이나 권력을 가지고 그들의 마음을 사려 했다면.... 전도 여행의 결과는 제자들의 이름이 드러나거나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것들이 드러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만을 전하겠다는 예수님과 민중들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이 아닌 빵이요 권력이요 영광이라고 주장하는 사탄과의 논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전도여행에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만 가능할 줄 알았던 일들이 자신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12-13절을 보면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막 6:12-13)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전도했고, 그 시대에 흐르던 더러운 영을 쫓아냈고,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복음이 증거되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는 예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선교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합니다. 우리가 지역사회를 돕습니다. 우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아니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우리가 인생의 여정,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의 여행을 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우리의 모든 사역도 제자들과 같이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는 열매가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3. 네 가지 사건 원래 마가복음은 시간 순서에 따라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전도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던 마가는 갑자기...세례요한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시간 순서를 깨뜨렸습니다. 어떤 이유일까요? 오늘 말씀에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혼돈되기 쉬우니까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마가복음 6장에는 4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제자들의 전도여행(6:7-13) 2) 세례요한의 죽음(6:14-29) 3) 오병이어의 기적(6:30-44) 4) 풍랑이는 바다 위의 제자들(6:45-52)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30절을 보면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낱낱이 있었던 일을 보고합니다. 서로 자랑합니다. 좀 흥분했습니다. 우와... 예수님, 우리가 복음을 전하니까 사람들이 믿더라니까요... 귀신이 쫓겨나더라니까요.... 병이 고쳐지더라니까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했다니까요.... 할 말이 많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제자들의 뒤를 따라 와글거리면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막 6:31) 그리고 배를 타고 제자들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사람들이 걷고 또 뛰어서 예수님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와는 다른 일이 발생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먹이십니다. 오병이어로 남자만 5천이 넘는 사람을 먹였습니다. 우와... 제자들은 도대체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이 잠시 경험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45절에 보면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막 6:45-46) 예수님은 제자들을 군중들로부터 분리시키시고 자신 또한 혼자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이 두 사건과 함께 기록된 것이 하나는 세례요한의 죽음, 다른 하나는 풍랑이는 바다 위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마가는 그들의 성공적 전도여행 다음에 시간적 순서를 깨뜨리고 세례요한의 죽음을 기록했으며, 왜 오병이어의 놀라운 이적 다음에 풍랑이는 바다에서 헤매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했을까요? 저는 예수님의 권면에 그 핵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라고 말씀하셨고, 자신은 산에 올라가 혼자서 기도하십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칭찬을 뒤로 하고 하나님과 대면하여 교통하는 자리로 나가셨습니다. 여기에 오늘 우리가 본 네 사건의 맥을 잇는 핵심이 숨어 있습니다.
4. 다시 빈들에 서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오직 복음만, 오직 복음의 능력만 들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돌아올 때는 마음을 빵빵하게 자랑거리로 채워서 왔습니다. 그럴 만 한 것이 자신들도 놀랄 만큼 복음이 증거되고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제자들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정말 달콤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보십시오. 내가 이런 일을 했단 말입니다.... 제자들이 앞을 다두어서 예수님께 자랑할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한적한 곳으로 가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가는 한 사람을 기억합니다.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왕의 도덕적인 잘못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았고, 헤로디아의 계략에 의해 톱으로 목이 잘려서 죽었습니다. 그의 삶은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가리켜 말하기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크다고 했습니다. 그는 복음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권력자에 의해 비참하게 죽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마가를 통해서 성경을 기록하시면서 제자들이 머물러야 할 마음의 자리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있었던 자리, 가장 겸손하고 낮은 자리... 오직 복음만 들고 복음의 능력만 나타내는 자리... 그곳에 제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그리고 너무 쉽게 마음이 높아지고 분주해지는 우리들에게 요한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한적한 곳, 빈들에 가서 서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교회와 성도를 그냥 두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제자들을 따라왔고 예수님을 따라옵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경험합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이자 이제 됐다....됐어... 다 해결될 것 같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다시 바빠지고 높아집니다. 예수님은 다시 그들을 한적한 곳으로 보내십니다. 이번에는 풍랑이는 바다입니다. 그렇게 자랑할 것이 많은 것 같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은 갈릴리 바다의 풍랑조차 이길 수 없습니다. 죽음을 예감합니다. 그들 스스로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들이 겸손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 오직 복음과 그 능력만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다시 보여주십니다. 선교의 열매와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서 마음이 높아지고 분주해진 그들에게 주님께서 요구하신 것 - 한적한 곳, 빈들에 서서 다시 하나님만을 바라보라는 명령입니다. 저는 최근에 두 어르신이 천국으로 가시는 것을 가까이 지켜봤습니다. 그들의 인생이 아무리 화려했을지라도, 아무리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인기가 많았다고 하더라도... 주님 앞으로 가는 길은 외로운 길입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생의 여정을 바쁘게 정신없이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문득 빈들에 서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내밀한 만남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 내가 인생의 여정을 걸어가는 이유와 목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늘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 나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를 향한 목적,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다시 결단하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복음과 복음의 능력만을 의지했던 제자들의 선교의 여행이 우리들의 인생의 여정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이름만이 나타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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