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

  • 홈 >
  • 예배와 말씀 >
  • 주일 예배
주일 예배
우상과 은혜 - 11. 높이시는 이유 na kim 2017-06-18
  • 추천 0
  • 댓글 0
  • 조회 578

http://chodaepa.onmam.com/bbs/bbsView/82/5284489

 

 

 

2017. 6. 18.

 

* 본 문 : 마가복음 933-37절 말씀

* 제 목 : 우상과 은혜 - 11. 높이시는 이유

 

혹시 마다가스카(Madagascar)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사진 1) 2005년에 1편이 만들어졌고, 이제까지 3편이 나온 애니메이션 시리즈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그중에 1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영화는 뉴욕의 한 동물원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알렉스(사진2)는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좋은 숫사자입니다.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어느 날 알렉스는 얼룩말 마티와 기린 멜먼, 하마 글로리아와 함께 동물원을 탈출하여 아프리카를 향해 탈출합니다.(사진3) 하지만 그들은 남극으로 가고 싶은 펭귄들의 계략에 빠지게 되고, 아프리카의 미지의 섬 마다가스카에 표류하게 됩니다. 뉴욕의 동물원에서 태어나 평생 서로 좋은 친구로 살아온 네 동물은 이제 야생의 섬 마다가스카에서 생존해야 합니다.

 

그 섬에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평화롭게 삽니다. 친절한 동물들은 네 친구를 반갑게 맞이하고 큰 잔치를 엽니다. 네 친구는 뉴욕에서처럼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큰 일이 났습니다. 그 섬에는 푸사'(Foosa)로 불리는 하이에나(사진4)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들이 공격해 온 것입니다. 잔치는 끝나고 모두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동물원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남에게서 공격을 받거나 공격해 본 적이 없었던 네 명의 친구들은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무서운 하이에나들과 마주선 네 명의 친구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하이에나들이 숫사자인 알렉스의 위엄에 놀라서 오히려 도망을 가버린 것입니다. 섬의 모든 동물들은 자신들을 지켜준 사자 알렉스를 왕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다시 잔치가 벌어집니다. 알렉스는 마음껏 교만해집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는데 사자라는 이유만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음악에 취하고 동물들의 환호성에 취해서 춤을 추던 그는 문득 이상한 증상을 느낍니다. 다른 동물들의 친구가 되었을 때는 잠들어 있는 야수의 본성이 다른 동물들 위에 군림하게 되자 깨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렉스는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동물들이 스테이크로 보이기 시작합니다.(사진 5) 특히 가장 친한 친구인 얼룩말 마티가 고깃덩이로 보입니다. 갑자기 발톱이 날카로워지고 입 안에 가득 침이 고입니다. ‘으흥~~’하고 한번 포효했더니 온 섬에 사자의 위엄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알렉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 마티의 엉덩이를 한입 베어 물게 됩니다. 야수의 본능이 살아났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자 메시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알렉스는 아주 중요한 기로에 섭니다. 얼룩말 마티는 알렉스의 저녁 식사거리일까요? 좋은 친구일까요? 아니 그것보다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자인 알렉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다른 동물들의 보호자요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가장 강력한 포식자로 살까요?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1. 사자(獅子)의 신화

 

여러분도 기억하실 텐데, 10여 년 전에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친구라는 영화가 크게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든 곽경택 감독이 저와 비슷한 시기에 부산 동래구라는 같은 지역에서 자랐던 사람이라, 그 영화에는 저의 청소년기에 사용하던 말과 어울리던 문화가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가 마치 좁은 교실에서 60-70명의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과도 같았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공부하고 대학을 들어가는 것까지 오직 경쟁과 생존이 중요했던 시기였습니다. 말과 행동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모릅니다. 그 중에 잊혀 지지 않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언젠가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는 중에 한 친구가 제게 이렇게 핀잔을 줬습니다. , 임마... 개 풀 뜯어 묵는 소리 하지 마라!” ... 머라꼬?” “개 풀 뜯어 묵는 소리 하지 마라꼬!” 분명히 욕을 들은 거였는데, 그 말이 너무 우스웠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한테 다시 물었습니다. “니 이거... 니가 생각한 기가? 어디서 배운 기가?” 개가 풀을 뜯어 먹는다고...? 정말 상상만 해도 웃겼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실은 이것보다 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가 풀을 뜯는 것이 아니라 사자가 풀을 뜯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11:6-9를 봅시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11:6-9) 이사야는 1020절부터 12장에 이르기까지 그 날에...” “그 때에...”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줍니다. 특히 1본문에서 선명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 날이 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삽니다.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워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송아지와 어린 사자를 이끕니다. 암소와 곰이 함께 먹고 있고, 놀라운 것은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고 있습니다. 어린 아기가 독사와 함께 장난을 칩니다. 그리고 9절에서 말씀하기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다!”고 했습니다. 맹수들이 가진 모든 특권적인 신화가 무너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바다처럼 세상에 충만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2. 사자가 아니어도 좋다.

 

사자에 관한 멋있는 말들이 많지 않습니까?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 “사자는 죽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사자는 절벽에서 새끼를 떨어뜨려 살아남은 새끼만 키운다.” 사실인지 확인되지도 않은 많은 말들입니다. 그 속에는 보이지 않은 신화가 존재합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weak-to-the-wall), 즉 강자로서의 사자가 약자인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권리요, 상식처럼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정글에서 살면서 잡혀 먹히는 토끼나 사슴의 입장에서 보면, 사자는 자신의 생존의 권리를 빼앗는... 멋있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는 잔혹한 포식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동물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함과 성공에 대한 신화, 그들이 가진 폭력성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당연하게 생각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강하면, 성공하면, 잘되면.... 더 많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면.... 그것 자체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강함 자체가 목적이 되고 정의가 됩니다. 양육강식이 상식이 되는 세상에서 강하면 미덕이요, 약하면... 순응하도록 만듭니다. 한번쯤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과연 우리가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양육강식의 신화는 과연 성경적인 생각일까요? 하나님은 왜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능력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왜 더 강하거나 잘되거나 높이 올라가게 하셨을까요?

 

구약의 선지자들이 꿈꾸고 증거하던 하나님의 나라 - 그 나라는 거룩합니다. 해도 없고 상함도 없습니다. 그 나라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이 충만합니다. 사자와 어린 양이 친구가 되고, 함께 풀을 뜯을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어떤 능력과 자질을 가졌든지 오직 하나님의 생각과 목적에 충성하며, 서로 돕고 섬기는 나라입니다.

 

, 어려분!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를 만납니다. 첫째, 우리는 이 나라를 원하고 있습니까? 둘째, 그렇다면 아직 그 나라가 오지 않았는데...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 것입니까? 약육강식의 상식으로 살까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살까요?

 

3. 사자의 사명

 

마다가스카라는 영화는 꽤 스마트합니다. 알렉스는 고민합니다.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자신에게 있는 야수의 본능을 이제는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친구를 저녁 식사거리로 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알렉스는 자신의 야수성을 막기 위해서 스스로 울타리를 만듭니다. 자신이 친구들을 해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가둡니다. 친구 마티가 찾아와서 괜찮다고... 우리는 친구니까 실수는 용서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알렉스는 마티가 고깃덩이로 보입니다. 본능이 의식을 이깁니다. 그는 자신의 야수성이 두렵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깊은 동굴로 들어갑니다. 그때... 푸스가 다시 무리지어 나타납니다. 굶주린 하이에나들이 마티를 비롯한 멜먼과 글로리아 그리고 그 섬에 있는 모든 동물들을 위협합니다. 절대절명의 순간.... 마티와 친구들이 하이에나의 밥이 되려는 바로 그 순간, 알렉스가 돌아옵니다. 알렉스는 자신의 야수성이 과연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신이 자신에게 숫사자로서, 동물의 왕으로서의 능력과 지위를 준 것은 그것으로 사냥하고 자신을 위해 다른 동물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 자격을 준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능력은 세상에 존재하는 포식자들, 양육강식을 상식으로 알고 자신의 강함으로 약한 동물들을 먹이로 삼는 하이에나들로부터 친구들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 허락된 선천적인 능력을 자신의 주린 배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알렉스는 숫사자로서의 위용과 야수성으로 모든 하이에나를 쫓아내고 친구들을 보호하고 섬을 평화롭게 지킵니다.

4. 하나님의 나라에서 삽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서 자주 있었던 대화입니다. 제자들이 가진 소원과 상식, 그리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가르치시던 복음은 자주 충돌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자들이 가버나움으로 가는 중에 서로 다투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내용을 아십니다. 하지만 다시 물어보십니다. 제자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다툰 내용이 예수님께 꾸중을 들을만한 내용입니다. 누가 더 높고 크고 강한지 그들은 논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천국에서는 섬기는 자가 높은 자다 그리고 어린 아이를 그들 가운데 세우십니다. 그 자리에서 가장 약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안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9:37/ "Whoever welcomes one of these little children in my name welcomes me; and whoever welcomes me does not welcome me but the one who sent me.") 예수님은 크고 높고 강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강하고 높고 많은 것을 허락하셨다면... 그것은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를 안으신 것처럼, 자신보다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들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삶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그들 사이에 다시 다툼이 일어납니다. 형제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한 사람은 예수님의 우편에, 한 사람은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분노합니다. 서로 다툽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10:42-44/Jesus called them together and said, "You know that those who are regarded as rulers of the Gentiles lord it over them, and their high officials exercise authority over them. Not so with you. Instead, whoever wants to become great among you must be your servant, and whoever wants to be first must be slave of all.)

 

예수님은 이 말씀을 주시고, 마가복음 전체의 주제가 되는 한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메시아이신 예수님... 심판의 주가 되시며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님께서 10:4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For even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섬기는 죽임 당한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정글과 같습니다. 모두가 높아지려 하고 강해지려 하고 많이 가지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세상을 옳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제자들에게 이제는 새로운 삶을 결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다 양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자가 되어도 좋고 호랑이가 되어도 좋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과 은혜의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숫사자 알렉스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할 때는 얼룩말 친구 마티조차도 생고기로 보이지만, 자신에게 있는 능력의 목적을 알 때 비로소 연약한 모든 동물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과 은혜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아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하고, 사자가 되고 호랑이가 되고 사슴이 되고 양이 되고, 제자들이 되고 모든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삶이 이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우리 교회 - 1. 예수님의 마음으로 na kim 2017.06.25 0 725
다음글 우상과 은혜 - 10. '세 왕 이야기' na kim 2017.06.11 0 8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