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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 7. 포도나무 na kim 2017-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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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6.

 

* 본 문 : 요한복음 151-5절 말씀

* 제 목 : 우리 교회 - 7. 포도나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언어를 허락하신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사람이 가진 다양한 은사 가운데 가장 하나님을 닮은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언어는 창조적이고 영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참 중요하고, 하나님의 언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요즘 우리가 하고 있는 신약 통독은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언어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화법을 배울 수 있는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말씀하실까...? 하나님은 어떤 논리로 우리를 설득하실까? 하나님이 즐겨 사용하시는 단어와 문장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이해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말씀하신 대로 4복음서는 각각 다른 관점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설명하되 각각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관점으로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실은 이것이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 쯤 되면 그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조선 시대 왕이 각 지방 방언으로 공문을 내려 보내지 않았습니다, 왕의 언어를 백성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차이를 인정하시고 네 가지 다른 관점으로 예수님의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십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는 누가복음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탕자 비유를 함께 묵상했습니다. 누가복음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비유를 사용하는 면에서도 우리는 요한복음만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단 하나만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그것도 이야기 구조를 가진 누가복음의 비유와는 많이 다른 은유에 해당하는 비유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주에 생각했던 탕자 비유를 보십시오. “저기... 어떤 집에 아버지와 두 아들이 살았거든.... 그런데....”라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비유는 조금 다릅니다. 나는 포도나무, 아버지는 농부, 너희는 가지!”로 끝납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포도나무의 예를 들어 설명한 것입니다.

1. 관계의 선언

 

본문을 제가 읽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청중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말씀을 한번 들어 봅시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1-5)

 

본문에서 예수님은 설명하고 있습니까? 선언하고 있습니까? , 선언입니다. “, 지금부터 하나님과 나와 교회의 관계를 보여줄게... 포도나무 잘 알지? 그 나무와 같은 거야. 하나님은 농부이고 나는 포도나무인데, 너희는 가지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먼저 알 것은 이 선언이 얼마나 복된가 하는 것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아들 예수님을 포도나무로 삼으시고 누가 그 가지가 될 수 있는지 살피고 계신다...라고 한다면... 큰 일 아닙니까? 누가 예수님의 가지가 될 자격이 있을까요? 누가 이 포도나무에 적합한 가지로서의 삶을, 같은 동질의 삶을 살고 있느냐?를 물으시면 아무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가지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선언에 복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의 말씀과 같습니다. 구원에 그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자격을 논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를 그저 가지로 택하셨고 부르셨습니다. 자격과 능력을 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은혜요 감사의 본질적인 이유입니다.

 

2. 일치의 명령

 

오랫동안 한국 교회는 관계에 대한 선언만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관계 속에 들어온 성도와 교회에 대해 명령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일치의 명령입니다.

 

요한복음의 요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과 세상을 하나 되게 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십자가에서 하나가 되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20) 하나님은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영적 일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일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와 교회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입니다. 오직 믿음을 통해서 얻는 이 놀라운 신비를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하나의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참포도나무입니다. 하나님은 그 포도나무를 가꾸시는 농부입니다. 성도와 교회는 가지와도 같습니다. 포도나무와 농부와 가지가 뜻과 목적을 같이해야 합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와 같이 분명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즐겁지 않거나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이 더 커 보이는 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비유는 늘 그 이야기 구조 속에서 듣는 사람의 삶의 자리를 확인시킵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의 자리는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포도나무에 든든하게 잘 붙어 있는 가지입니까? 잎사귀가 풍성하고 꽃은 아름답고 열매는 향기롭습니까? 아니면 분명히 가지인 것은 사실인데 더 이상 포도를 맺을 수 없는, 죽은 가지입니까? 교회가 예수님과 일치된 증거는 바로 십자가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지가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것과 같고, 농부의 정성이 더해져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3. 불순종에 대한 경고

 

오늘 본문 말씀이 첫 번째가 관계의 선언이요 두 번째가 일치의 명령이었다면 세 번째는 불순종에 대한 경고입니다. 우리를 포도나무 되신 주님의 가지로 부르신 하나님은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 가지마다 열매가 맺힙니다. 그런데 나무에 붙어 있기를 거절하는 가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가지들은 첫째 열매를 맺지 못하고 둘째 농부가 제거할 것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15:2)라고 했습니다. ‘붙어 있다는 것을 예수님과의 일치라고 볼 때 성도와 교회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농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성도와 교회에 기대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바로 포도나무되시는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매라고 하면 전도를 생각합니다. , 전도가 우리의 믿음의 열매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전도가 열매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결과가 열매라고 본다면 그 열매는 예수님의 삶이 우리들, 교회와 성도들의 삶의 모습에서 발견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자 결단할 수 있고 그것은 열매가 됩니다. 하지만 먼저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이 바로 신적인 일치, 즉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같은 삶의 목적과 관심, 같은 삶의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What Would Jesus Do? / WWJD)라는 말이 교회에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습니다. 찰스 M. 쉘던이라는 목사님의 자전적인 소설의 제목입니다. 그는 자신이 실직자의 모습으로 거리를 방황할 때 사람들이 보여준 냉대와 무관심에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성도들 또한 그랬습니다. 그는 맥스웰이라는 한 목회자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맥스웰은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제안합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어떤 상황이든 결정을 하기 전에 먼저 이 질문을 하고 자신의 양심이 대답하는 대로 실천해볼 것을 성도들에게 제안합니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가도다우리가 만약 이런 찬양을 진실되게 부를 수 있다면 제자도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우리의 정의가 단순히 예배의 특권을 누리고, 자신을 희생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남에게 관대하며, 재미있는 오락거리와 안락한 환경에 싸여 세상의 큰 죄악과 고통을 부담스러워하며 외면하는 삶이라면 이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실로 이것이 우리가 정의하는 기독교라고 한다면 확실히 우리는 잃어버린 인간들을 위해 신음과 눈물, 그리고 고통의 흐느낌으로 걸어가셨던, 땀이 굵은 핏방울로 변하며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셨던 주님의 발자취와는 동떨어진 길에 서는 셈입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제자도의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크리스천의 정의를 다시 재고할 용의가 있습니까?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예수님을 닮아가며, 그분의 방식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의 불순종은 좀 더 적극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것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것, 그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와 생각이 다른 것, 가지가 나무의 가치와 다른 중심을 가지고 사는 것, 가지가 나무의 선택과 다른 이유를 가진 것, 그래서 그 가지가 나무가 맺기를 원하는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이 바로 불순종입니다. 예수님은 불순종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하십니다.

4. 교회를 향한 권면과 약속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교회를 향한 권면과 약속을 주십니다. 권면은 무엇입니까?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가지가 나무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것 -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원리 아닙니까? 그런데 어떤 가지는 분명 포도나무의 가지인데 나무로부터 분리된 가지들이 있습니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분리되어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될까요? , 분리된 나무는 그저 나무토막일 뿐입니다. 불쏘시게 외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분리되면 우리는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불쏘시게에 불과합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는 사울왕이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소년 다윗이 왕을 넘어서는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이 큰 성 여리고를 이기고, 하나님이 떠난 이스라엘이 작은 아이성에 패배하는 것처럼...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우리가 세상에서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잘 붙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주십니다.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과 동행하고자 애쓰는 성도와 교회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 열매는 세상의 모든 열매와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삶에 아무런 열매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열매가 종류가 다를 뿐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예수로 말미암은 열매, 예수의 삶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새롭게 해석되고 실천되는 일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성도, 어떤 교회입니까? 우리에게는 선언하신 관계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적인 일치가 삶에서 실천되고 있습니까? 경고의 말씀을 받고 예수의 열매를 맺는 삶에 충실하고 있습니까? 허락하신 권면과 약속을 잘 순종하며 실천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우리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우리를 가지로 부르시고 나에게 붙어 있으라말씀하십니다. 붙어 있는 가지들마다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가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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