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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 10. 친구가 되다. na kim 201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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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10.

 

* 본 문 : 요한복음 1512-15절 말씀

* 제 목 : 우리 교회 - 10. 친구가 되다.

 

지난 달에 허리케인 하비가 텍사스를 강타했습니다. 그 피해가 140조에 달하고 50명 가까운 사람이 사망했으며 43천명의 사람들이 집을 떠나 대피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 플로리다를 강타하는 더 큰 허리케인 어마가 있습니다. 플로리다 전역에 몰아칠 전례가 없는 큰 허리케인이라고 합니다. 아무쪼록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바라고, 또 모두가 힘을 모아서 이 재난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텍사스 피해 사진들 1,2,3,....)

 

그런데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과정에서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한 교회가 크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인 Lakewood Church입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피난처를 찾아서 헤맬 때 교회가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교회당 또한 물이 차서 재난민들을 받을 수가 없었고, 교회는 따로 그들을 위한 피난처를 마련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교회가 적극적으로 그 사실이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에 대한 여론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그것은 평소 그 교회의 신앙적 지향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43000명이 모이는 교회이고, 1류와 최고를 주창하는 목회를 하는 교회입니다. 잘되어야 하고 행복해야 하고 성공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잘되는 나라는 설교집을 냈겠습니까? 그 교회의 영적 지향성이 재난을 당해서 울부짖는 사람들과 잘 맞지 않았습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 대해 교회당의 문이 닫혀 있더라...는 소문만으로도 그럼..그렇지... 그 교회 그럴 줄 알았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바른 정보를 줘도 대중들의 교회에 대한 감정과 평가가 변하지 않았습니다.

 

1. 교회의 자리

 

저는 지난 주에 한 뉴스를 접하고 정말 많이 화가 났습니다. 먼저 영상을 한번 보실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p8jLuaQdOcs

 

어떤 이야기인지 아시겠습니까? 서울 강서구에는 장애를 가진 자녀들이 다닐 전문학교가 없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구로구까지 1-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통학해야 합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강서구에 마침 폐교한 학교가 있어서 그 학교를 장애인 전문학교를 설립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일부 주민들이 반대를 시작했습니다. 장애인 시설을 혐오시설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입니다. 장애자녀를 가진 가정도 강서구에 살고 있는 주민입니다. 당연히 교육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교육시설을 세우겠다는데 집값하락을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 저렇게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보신 것처럼 한 어머니가 울면서 무릎을 꿇습니다. 장애인을 자녀로 둔 어머니들이 다 나와서 무릎을 꿇습니다. 쇼하지 말라는 비난이 빗발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어머니들 앞에 한 남성이 무릎을 꿇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발 나가달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이익을 막지 말라는 것이지요. 정말 너무 화가 났습니다.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악할 수 있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아픔, 눈물과 고통에 대해 이렇게 냉담하고 이기적일 수 있을까요?

 

서울 사람들은 약 40%가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장애인 자녀를 둔 가정들 중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 반대편에서 집값을 걱정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제가 고민되는 것은 저 지역에 있는 교회는, 목회자들은, 성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제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그들의 이기심을 자극하는, 그곳에 한방의료원을 세우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한 정치인이 있더군요. 역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단 판단을 보류하구요....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시설을 혐오시설로 분류하고, 오직 그들의 이익에 맞는 이웃을 선별해서 받기를 원하는 성도가 있고, 교회가 있다면.... 아니 우리 삶에서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이웃의 눈물과 한숨과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고 오히려 정죄하고 판단하는 교회와 성도라면.... 그들의 삶에 예수님의 자리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낮고 천한 우리들의 삶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친구가 되신 분이십니다. 교회의 관심과 성도의 삶의 자리는 예수님이 계사는 자리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이 머무는 곳에 십자가의 은혜로 예수님의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된 성도와 교회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그런 교회, 그런 목회자!

 

말씀을 준비하다보니 가슴 아픈 기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지난 주에 저는 한 영화를 두 번 봤습니다.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입니다. 한번은 아내와 함께 마음과 몸을 떨면서 봤고, 가일이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같이 한 번 더 봤습니다. 그 영화는 1980년에 광주에서 있었던 한국의 아픈 역사에 대한 작은 기억입니다.

 

사실 1980년의 광주는 제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여름에 광주를 1주일간 방문했고, 그 일주일은 저의 대학 생활을 완전히 바꿔버렸습니다. 말로만 듣고, 글로만 읽었었는데, 광주를 방문하고 사람들을 만나보니 그 모든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아들과 딸과 남편과 형제를 잃은 사람들.... 그들의 고통스런 기억을 직접 찾아가서 들었습니다. 그들을 죽인 책임자는 대통령이 되어 있었습니다. 20세 젊은 가슴이 그 슬픔과 분노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노는 어이없게도 저의 아버지에게 향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목회자가 되겠다고 말해왔던 제게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저는 아버지께 선언했습니다. 저 이제 예수 안믿습니다. 목사 안됩니다.” 이유를 묻던 아버지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죽었는데 한국 교회는 무엇을 했고, 목사인 아버지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저보고 이런 한국 교회에서 아버지같은 목사가 되란 말입니까!” 그리고 야무지게 뺨을 맞았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맞아도 싸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께서 그 시대에 대한 책임을 다 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정말 철없이, 싸가지 없게 대들었습니다. 다만... 그 때는 너무 당황스럽고 분노스러웠습니다.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일이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이야기도 들려줬고, 그리고 저의 대학 시절 이야기도 들려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음이 있다면... 이웃의 삶에 대한 고민과 헌신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있는 신앙인이 된다는 것 - 저는 이 단순한 말이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왜 이렇게 힘들게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

3. 친구가 되다.

 

요한복음 15장은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절부터 보실까요?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하나님을 농부로 설명하십니다. 제자들을 가지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들에게 당부하시기를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과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 ‘사랑이라는 말과 기쁨이라는 말을 병행해서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법, 예수님을 사랑하는 법,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법, 예수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법은 모두 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당부하신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과 소원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의 기쁨이 되며 사랑이 되며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소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15:12)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이 보이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에 대해서 하신 일을 우리가 서로에게 행하는 것 - 그것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소원이자 계명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5:13-14)

 

예수님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지를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의 명령, 허락하신 계명 -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삶을 선택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5절에서 다시 한번 확정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15:15)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14절에서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라고 말씀하셔 놓고는 15절에서 이제부터는...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라고 말씀하실까요?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이미 잘 지키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우리를 찾아오셨고, 선택하셨고, 자신의 목숨을 버려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명령을 지켜서 친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선택하시고 사랑해주시고 친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이렇게 읽는 것이 옳습니다.

 

너희는 이제 나의 친구가 되었다. 내가 너희를 위해 목숨을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친구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다. 이제 너희도 서로 친구가 되어라. 서로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해라. 그것이 너희가 나의 친구가 된 증거이다.

4. 교회가 사는 법

 

성도 여러분! 요즘 교회의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교회는 더 이상 영적인 권위와 자격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의 지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던 시대, 힘들던 시대에 가지고 있던 소원과 기도의 제목들을 계속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곳으로 가려하고, 많이 가지려고 하고, 잘 되려고 합니다. 이민 사회에서 힘들게 살다보니 우리들이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아, 초대교회야... 너희는 나의 친구냐?” 여러분, 예수님의 친구이십니까? , 당연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여러분과 저를 먼저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과 은혜로 감격스럽게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죠? 모든 친구가 다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친구는 싸우고 배신하고 멀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어떤 친구이십니까?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친구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사랑, 그 친구됨을 이미 허락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여러분도 예수님께 여러분의 귀한 것을 드릴 수 있습니까?

 

아마도 예수님께 우리의 생명을, 시간을, 귀한 것을 드려야 한다면 여러분은 순종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구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먼저 귀한 사랑을 주셨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것을 우리가 서로 나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교회는 이웃들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복음과 사랑을 함께 전할 수 있을까요? 교회는 이 시대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이기심이 복음을 이기는 시대에 우리의 사랑에 복음을 실어 이웃을 섬길 수 있을까요? 더 큰 사랑, 예수님의 마음과 삶에 새긴 그 사랑으로.... 교회의 닫힌 문을 열고, 우리의 닫힌 마음을 열고, 이 시대의 높은 장벽을 허물고.... 교회는 이 세상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 바로 우리들에게도 복음의 열매가 열릴 수 있을까요?

 

우리 시대, 교회가 사는 길은 오직 한 길입니다. 세상이 자신을 위해 친구를 희생시킬 때 우리는 친구를 위해 우리를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받는 친구가 되고, 세상을 사랑하는 친구가 되어 복음의 꽃과 열매로 십자가를 영광스럽게 하는 초대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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