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 - 12. 큰 비 소리 | na kim | 2017-10-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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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
* 본 문 : 열왕기상 18장 41-46절 말씀
* 제 목 : 우리 교회 - 12. 큰 비 소리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중에서 ‘누군가 먼저 꿈을 가지고...’라는, 제 삶에 아주 중요한 문구를 남겨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1970-80년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역사적 과정을 지나오면서 늘 어렵고 낮은 사람들 편에서 헌신했습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자가 그런 삶을 계속 살아가기에 힘들이 않으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힘들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는 없지요. 하지만 누군가 먼저 꿈을 가져야 해요.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준비하고 헌신하면 어느새 모든 사람들에게 그 꿈이 삶이 되어 있을 거예요.”
요즘 젊은 세대를 ‘꿈을 빼앗긴 세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런 것 같습니다. 항상 바쁘고 분주하긴 한데 나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전망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오늘을 부지런히 살고 있지만 내일을 잊고 삽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지를 물으면 대답은 비슷합니다. 매일 지고 가야 하는 삶의 무게가 무겁다보니 내일을 생각할만한 여유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정말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대를 살았던 한 사내를 만납니다. 그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 어떤 사람들이 듣지 못했던 내일의 소리를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 소리에 의지하여 오늘을 죽어 있는 것처럼 살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입니다.
1. 열왕(列王)의 시대
우리가 읽은 성경은 ‘열왕기상’입니다. 영어로는 1Kings입니다. 왜 이런 제목을 가졌을까요? 예, 열왕기상하와 역대기상하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조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역대기는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흐로보암의 계보를 잇는 남쪽 유다왕국을 중심으로 기술하지만 열왕기는 북 이스라엘 왕국까지 포함하는 이스라엘의 갈라진 두 나라의 왕조를 함께 기술합니다. 누구를 중심으로 기록했을까요? 예, 각 나라의 왕들입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열왕기상 17장부터 열왕기하 2장까지 왕들보다 더 많이, 더 집중적으로 다뤄지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왕들을 중심으로 기록한 열왕기에서 엘리야 선지자의 사역이 많은 페이지에 걸쳐서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의도와 목적이 있는 기술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시대에 폭정에 반란을 일으킨 여로보암을 따라 10개의 지파로 새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정치적으로 남유다와 구별된 왕국을 세우기를 원했고, 정책적으로 종교적 분리를 먼저 시도합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남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제사하기 위해 순례하는 것에 위기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먼저 남쪽 유다에 속한 예루살렘이 아닌 북쪽 이스라엘의 여러 곳에서도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제단을 만듭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아는 우상숭배를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도덕적, 윤리적인 타락과 우상 숭배가 극에 달했던 때가 바로 아합왕의 시대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7대왕으로 등극한 그는 2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결혼과 종교’를 중요한 통치의 방법으로 선택합니다. 즉 이방의 왕족과 결혼을 하면서 화친을 맺었고, 그 나라의 우상을 함께 받아들였습니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우상으로 시돈왕의 딸이었던 이세벨과 함께 들어온 바알과 아세라였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우상들을 섬길 것을 강요했습니다. 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과 우상 섬기기를 거부하는 경건한 백성들을 탄압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악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대가 그렇습니다. 누가 봐도 아합왕의 시대요, 이세벨의 시대요, 바알과 아세라의 시대입니다. 시대를 이끌어 갈 하나님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죽거나 피하거나 변절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나라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 시대를 ‘우상과 악한 왕의 시대’로 내어준 것 같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람들의 시대
한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가 하는 것은 곧 역사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를 아합과 우상의 시대로 해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이스라엘의 역사에 투입하십니다. 그가 바로 엘리야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그 시대를 아합의 시대가 아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시대로, 바알과 아세라의 시대가 아닌 하나님이 여전히 역사하는 시대로 말씀하십니다.
잘 이해가 안되십니까? 역사를 조금 큰 시각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던 시대가 있습니다. 누가 봐도 바로의 시대입니다. 적어도 모세가 나타나기 전에는 그렇습니다. 바로의 시대, 하나님의 백성이 노예가 되고 바로의 영광과 탐욕이 법과 질서가 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이 모세를 역사의 전면에 세우십니다. 그에게 무기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돈과 권력을 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애굽으로 가서 바로 앞에 선포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시대가 바로의 시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시대가 됩니다. 시대는 권력이나 돈이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다른 예를 한번 볼까요? 예수님이 오시기 전 근동지역은 로마의 기세가 등등했습니다. 지중해 근방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아프리카와 유럽을 정복하시 시작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로마가 왕으로 세운 헤롯일가는 대단한 폭정을 행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2살 이하의 모든 남자 아기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대는 로마의 시대이자 헤롯대왕의 시대였을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메시야 탄생 이전에 주의 길을 평탄하게 하는 한 선지자가 있을 것이라 예언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그는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메시야임을 확정하여 증거합니다. 모두가 가이사와 헤롯의 시대라고 말할 때, 모두가 그 힘과 영광에 굴복할 때 회개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외쳤던 한 사람, 성경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그 시점을 세례요한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3. 큰 비 소리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에 그 시대를 내어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그 시대를 개척할 수 있을까요? 열왕기상에서 엘리야는 그 좋은 예를 보여줍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 17:1) 그때까지 엘리야는 아합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한 백성에 불과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믿음과 용기를 가집니다. 권력을 가진 왕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참 신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왕에게 전합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가 담대하게 말합니다. ‘내 말이 없으면...’ 이 땅에는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납니다. 정말 3년 반동안 비가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엘리야를 부르십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오랜 기간 가뭄과 기근이 든 것은 죄악의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 비를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엘리야는 그 말씀을 들고 아합왕에게 나아갑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갈멜산에서의 불로 제단을 태우는 역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엘리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갈멜산에서의 영웅담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그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하나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엘리야가 그 야만의 시대를 어떻게 이기고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갈멜산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 보여준 엘리야는 왕에게 말합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왕상 18:41)
뜨거운 태양이 여전히 내리쬐고 있는데 엘리야는 큰 비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큰 비 소리라면 왜 엘리야만 들을 수 있었을까요? 다른 모든 사람이 아닌 엘리야만 들을 수 있었던 큰 비 소리.... 왜 하필이면 엘리야에게만 그 소리가 들리는 것일까요?
4. 하나님이 움직이는 소리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가 기도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시겠습니까? 그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합니다. 엘리야가 사환에게 말합니다. 바다 쪽을 보라는 것입니다. “구름이 보이는가?” “보이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합니다. 사환에게 구름이 보이는지 다시 묻습니다. “구름이 보이는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기도합니다. 일곱 번을 반복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갈멜산에서 제단을 쌓고 불을 기다리는 것보다 3년 넘게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던 비를 기다리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아닐까요? 갈멜산의 제단이 문제가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에 가뭄과 기근을 해결하는 큰 비가 와야 하니까요...
엘리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가서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를 선언하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다시 아합에게 가라고 할 때, 갈멜산에서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 앞에서 불을 기다릴 때, 그리고 지금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비를 기다리며 기도할 때.... 기도하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구름 한 조각이라도.... 비를 머금은 젖은 바람 한 자락이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머리를 무릎에 파묻고 기도하는 그 심정은 어떠할까요?
성도 여러분! 이 시대가 왜 아합이나 바알의 시대가 아닌 엘리야의 시대인지 아시겠습니까? 엘리야에게는 큰 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귀는 믿음으로 얻습니다. 용기가 있어야 지킬 수 있습니다. 시험이나 유혹, 시련이나 고통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며, 비를 약속하셨으니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그 소리를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마음에 울리는 비 소리를 들으며 아합에게 나아갔고, 갈멜산에서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싸웠고,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비 소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알고 보면... 그 비 소리는 단순한 비가 내리는 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비 소리... 그것은 실은 ‘크신 하나님이 움직이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소리’입니다. 엘리야의 마음에 쩡쩡 울렸던 그 소리는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움직이는 소리,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움직이시는 그 발자국을 들으며 어두운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시대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참 바쁘시지요? 정말 힘드시지요?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도 힘겨우시지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시대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시대로 드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나 개인의 삶과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뚜벅뚜벅 걸어오시는 하나님의 발자국을 찍어야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 돈과 힘의 우상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를 하나님의 시대로 영광 돌려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마음의 귀를 열고 큰 비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귀를 열고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발합니다. 오늘 나와 함께 발걸음을 옮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내일 나를 인도하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 삶으로 들어오시며, 우리의 시대로 걸어오십니다. 믿음과 용기로 이 시대를 하나님의 시대, 믿음의 사람들의 시대로 드릴 수 있는 초대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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