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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2. 루디아의 교회 na kim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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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 : 사도행전 1611-15절 말씀

* 제 목 : 선교적 교회 - 2. 루디아의 교회

 

로마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 에베소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1:1) 고린도전서는 이렇게 시작하지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고전 1:1) 그리고 빌립보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1:1) 각 서신서의 서두에 나와 있는 인사말들인데요, 다른 세 인사말과 빌립보서의 인사말의 차이를 찾아보십시오.

 

사도 바울의 서신들의 11절을 비교해보면 대부분의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성에 대해서 먼저 강조를 합니다. 당시에 사도 바울을 질투하여 그의 사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바울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이라는 사실을 먼저 확증하고 편지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빌립보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단순히 예수의 종이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왜냐하면 빌립보교회와 바울의 친밀함 때문입니다. 굳이 사도성을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대신 바울은 개인적이고 친밀한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1:3-11)

 

누군가가 이런 편지를 여러분께 보냈다면 야... 얼마나 가슴이 떨릴까요?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항상 기쁨으로 기도한다는 말... 너희가 항상 내 마음에 있다는 말.... 너희가 나의 모든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는 말.... 내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고 해도 가슴이 떨릴 일인데... 예수님의 붉고 뜨거운 심장으로 나를 사모한다고, 그것이 얼마나 간절한지 하나님이 아신다는 말....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바란다는 축복... 이런 말들을 친구에서 들어도 가슴이 떨릴텐데... 지금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이 편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편지를 받고 왜 이렇게 감상적이야...” "왜 이렇게 뻥을 치지..?" 라고 느끼지 않고 진심으로 바울의 마음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과 빌립보 교회가 함께 경험한 그들의 관계에 있습니다.

1. 첫날, 하나님의 시작

 

바울이 5절에서 언급하는 말을 보십시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는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라고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첫날, 그들의 시작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현재와 그리스도 예수의 날, 미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기억하는 이 교회의 첫날은 어땠을까요?

 

빌립보 교회는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원래 그들이 세웠던 선교계획을 내려놓고 유럽으로 인도하사는 성령님께 순종했습니다. 성경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16:11-14) 그들은 환상을 보았던 드로아를 떠나서 마게도냐를 향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사모드라게와 네압볼리를 지나서 빌립보에 이르게 됩니다. 사도 바울과 전도팀은 아마도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썼을 것입니다. 주목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안식일이 되어 기도할 처소를 찾던 중에 성문 밖 강가에 앉은 여인들을 발견합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자주색 옷감을 파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루디아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기록할 때 루디아를 중심으로 서술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라고 했습니다. 루디아의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교회 또한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첫날, 루디아가 강가에서 복음을 받던 바로 그 첫날을 바울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지금도 착한 일을 쉬지 않으시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계속하실 것입니다.

 

2. 교회가 되다.

 

그렇다면 빌립보 교회가 바울이 편지를 쓰는 오늘 이렇게 건강하게 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복음을 받는 첫날부터 있었던 일을 통해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4-15절에서 루디아가 복음을 받던 상황을 다시 봅시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16:14-15)

 

14,15절은 짧지만 많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여셨습니다. 복음을 받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복음을 온 집안에 소개합니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루디아는 자신의 가정의 복음의 열린 문이 됩니다. 루디아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나아가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합니다.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입에 들어와 유하라!” 얼마나 강력한 요청입니까?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 집이 교회가 됩니다. 빌립보 교회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성경이 루디아의 이야기를 삽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사람이 마음과 삶의 문을 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루디아가 복음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 때 그녀 자신이 복음의 문이 됩니다. 그녀의 가정에 대해 그녀가 복음의 문이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루디아의 집은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 복음의 문이 됩니다. 이웃과 함께 빌립보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3. Copy and Paste

 

사도행전은 신약성경에서 유일한 역사서입니다. 교회의 초기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빌립보 교회의 처음과 유럽 선교의 첫 발걸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구조가 재미있습니다. 조금 전에 우리가 본 사도행전 1614-15절은 교회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40절을 보시면 그 교회가 이미 성장했습니다.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16:40) 15절과 40절 사이에 빌립보 지역의 교회에 대한 엄청난 이야기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빌립보 성에는 귀신이 들려서 점을 치는 여종이 있었습니다. 그 여종의 주인들은 여종을 통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여종을 통해서 돈을 벌지 못하게 된 주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고소했습니다. 두 사람은 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오히려 감옥이 떨리고 모든 묶인 것들이 풀어지게 됩니다. 죄수들이 도망친 줄 알았던 간수는 절망합니다.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때 바울과 실라가 자신들이 도망가지 않았음을 알렸고, 감동한 간수는 그들을 청해서 복음을 듣습니다. 실은 성령 하나님이 옥문을 여신 것이 아니라 간수의 마음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그에게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16:31) 진리를 발견한 간수는 자신의 집 모든 식구들에게 복음을 소개하고 다 함께 세례를 받습니다.

 

여러분, 뭔가 좀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여시고 그를 한 집안의 복음의 문으로 만드십니다. 그를 통해서 복음이 가정에 들어가고 온 가족이 함께 구원의 은혜를 누립니다. 루디아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일이 copy가 되어 간수의 가정에 paste가 된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은 이렇게 copy and paste가 반복되는 과정입니다.

 

다음날 바울이 로마의 시민인 것을 알게 된 빌립보 지역의 관리들은 바울을 석방합니다. 40절에서 바울과 실라는 루디아의 집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형제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루디아의 집은 이미 교회로 변했습니다. 아마 이제 간수의 가족들도 빌립보에 세워진 이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지금 단 두 가정만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런 가정들이 모여서 빌립보 교회가 되고 초대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4. 교회가 되는 사람들

 

선교적 교회란 나는 일하고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선교적 교회란 루디아처럼, 루디아의 집처럼, 루디아의 교회처럼, 간수처럼, 간수의 집처럼, 그들이 함께 모였던 빌립보 교회처럼.... 선교적 교회란 교회가 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 ‘자신의 삶을 교회로 만드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교회가 되는 가정들의 교회입니다. 교회가 되는 목장들의 교회이고, 교회가 되는 관계가 있는 교회입니다.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된 빌립보 교회는 물론 선교적 교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빌립보 교회가 선교적 교회로서 자리잡기 전에 먼저 선교적 교회가 된 사람들, 가정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함께 모여서 선교적 교회가 됩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루디아가 교회입니다. 간수가 교회입니다. 그들의 가정이 교회입니다. 어떻게 그들이 먼저 교회가 되었을까요? 그들의 마음과 삶이 하나님께 개방되고, 그들 스스로가 열린 문이 되었을 때... 하나님과 세상이 교통하는 통로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하나님의 교회로 인정하시고 함께 역사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교회와 개인의 삶의 분리에서 왔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경제 활동을 하고 교회에서는 예배합니다. 세상에서 얻은 재정으로 교회에 헌금을 하면 교회가 선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세상과 교회가 분리됩니다. 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하는지, 그것이 정의롭고 윤리적인 일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상에서 성공하고 교회에 재정적으로 크게 기여하면 그것이 복이자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에 오면 성도인데 세상에서는 손가락질 받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첫째, 그 자신이 성도로서의 삶을 상실하게 됩니다. 둘째 직장에서 신앙이 구현되지 못합니다. 셋째 가정 또한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는 좋은 신앙인인데 가정에서는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회원, 등록된 성도인데 그 개인의 삶은 교회가 아닙니다. 모여서 예배할 때는 교회인데 개인의 삶에서, 관계에서, 직장에서, 사업에서 성도가 아닙니다. 이웃과 동료들에게 복음을 소개하는 통로, 혹은 문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막고 서 있는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닫힌 문이 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그들 자체가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나가는 열린 문이 됩니다. 길이 됩니다. 그들을 만난 루디아가 교회가 됩니다. 간수가 교회가 됩니다. 그들의 가정이 교회가 됩니다. 그들이 모여서 빌립보 교회가 됩니다. 그들을 통해서 착한 일을 시작하는 하나님은 마지막 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그들과 함께 하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모이는 목장이 교회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개방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모이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과 가정을 copy해서 저 가정으로 옮겨놓을 때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고 가정이 복음으로 새로워질 수 있는 교회로서의 삶과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목장으로 모일 때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거룩한 교회가 되며 우리의 모임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000년 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빌립보라는 도시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복음만을 들고 갔던 바울과 실라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막막해서 기도할 곳을 찾던 두 사람에게 하나님이 기도하기 전에 먼저 응답을 주십니다. 문 하나를 열어주셨습니다. 그 문의 이름은 바로 루디아의 마음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하는 복음이 그 문으로 들어갑니다. 루디아가 교회로 변하고, 가정이 교회로 변하고, 빌립보가 교회로 변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초대교회를 허락하셨고, 우리 각 사람을 하나님의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복음이 세상으로 나가는 열린 문으로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삶이 교회가 되는 은혜를 누리는 우리들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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