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교회 - 7. 손을 씻다 | na kim | 2018-01-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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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28. * 본 문 : 로마서 12장 1-2절 말씀 * 제 목 : 선교적 교회 - 7. ‘손을 씻다.’
지난 25일 JTBC 뉴스룸에서는 재미있는 장면 하나를 마지막 부분에 방송했습니다. 국립 현충원 광장에서 국군기무사령부 주관으로 ‘군의 정치적 중립 준수 다짐 선포식’을 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친 남성이라면 ‘기무사’라는 이름이 얼마나 무서운 지 다 압니다. 그야말로 별도 따고 달도 따는 부대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이석구 기무사령관을 필두로 별들을 주렁주렁 어깨에 매단 장성들이 먼저 ‘세심수’(洗心水)라고 써 붙인 투명한 아크릴 세수대야에 담긴 물에 차례로 손을 씻었습니다. 물 이름을 ‘세심수’(洗心水) 즉, ’마음을 씻는 물’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씻고자 했던 것은 손이 아닌 마음인 것 같습니다. 행사의 이름을 ‘군의 정치적 중립 준수 다짐 선포식’이라고 한 것은 그들이 정치적인 중립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손이 아닌 그들의 과거를 씻은 것이지요. 손석희 앵커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 각오를 보여준 것 같은데 각오대로 잘되기를 바라겠습니다.”
한국이 군부의 독재로부터 벗어난 후 벌써 6번째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지난 정권까지 국군 기무사령부는 민간인을 사찰하고 국회정치에 개입하며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일들이 드러났습니다. 군인들이 우리나라를 통치하던 시절에 ‘보안사’(국군 보안 사령부)는 중앙정보부와 더불어 그들의 권력을 지키고 행사하는 손과 발이었습니다. 민간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그 권력은 여전했습니다. 1992년 윤석양이라는 한 군인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양심선언을 했고, 이름을 ‘기무사’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그들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불과 1-2년 전까지도 그들은 권력 가까이에서 군대가 아닌 국가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신임기무사령관은 과거 그들의 정치적인 행적을 일부 소수가 한 일로, 혹은 지금은 상관이 없는 일로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육사출신의 대통령들이 수십 년 한국 사회를 지배했고, 그들의 후배들이 하나회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이어갔으며, 최근까지 독사파(독일유학파)라는 이름으로 군사 권력을 독점하고 정치권력에 영향을 미쳐왔던 군인들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10여년 한국 군대가사들인 이해할 수 없는 군장비들은 모두 그들의 작품입니다. 그들의 후배들이 여전히 어깨에 산보다 무거운 별을 달고서 새로운 정권 앞에 손을 씻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별은 지켜야겠고, 권력은 잃기 싫고, 과거로부터는 자유로와야겠기에 그들은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손을 씻었습니다.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치는 가운데 김을 펄펄 날리면서 손을 닦는 그들의 모습이 안스러워보였습니다. 저 역시 그들이 각오대로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빌라도, 손을 씻는 사람
우리는 손을 씻었던 또 한 사람을 압니다. 로마가 파송한 유대의 총독 빌라도입니다. 그는 예수를 심문하고 무죄임을 거듭 확증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만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로마에 반대한다는 누명을 씌우고 만일 그를 방면하면 총독 빌라도를 로마의 황제에게 고소하겠다고 말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제거하기 위해 로마의 황제에 대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빌라도는 그들의 간교한 생각을 알고 있었지만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 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소리치는 군중들 앞에서 손을 씻습니다. 이 결정에 대해 자신은 무죄함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이 결정에 대한 모든 책임은 너희들이 지라는 것입니다. 판결의 모든 권위가 자신에게 있고, 자신은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판단에 예수를 맡기고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간교한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가 손을 씻습니다. 죄책감을 씻습니다. 내 잘못을 씻어버리고 마음에 자유를 얻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것은 빌라도가 손을 씻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어깨에 무거운 별들을 단 장성들이 흰 김을 펄펄 날리며 손을 씻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일주일에 한번 예배로 모여서 지난 일주일의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물에 우리의 손과 입과 마음을 씻고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거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예배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빌라도가 손을 씻는다고 죄를 씻을 수 있는 것 아니고, 별들이 손을 씻는다고 그들의 과거의 행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잠시 마음을 씻는다고 우리의 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빌라도는 손을 씻기 전에 다른 결정을 했어야 했고, 기무사의 별들은 이제 정말 그들의 다짐과 각오대로 그들의 마음과 결정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예배하는 우리들은 ‘예배했다’는 자기만족과 위로가 아닌 우리의 마음과 삶이 변화해야 합니다. 씻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변화가 핵심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변화를 확인하고 제물로 드리는 과정입니다. 변화입니다. 변화, 의식이 아닌 본질입니다.
2. 거룩한 제사, 거룩한 제물
혹시 의식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성찬식을 할 때마다 여러분이 떡과 잔을 나누는 시간에 매번 같은 성구를 읽습니다. 여러분이 떡을 나누는 시간에는 고후 5:14-15를 읽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잔을 나누는 시간에는 오늘 본문의 말씀인 롬 12:1-2를 읽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 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은혜를 받는 말씀이면서 제 마음의 중심에 들어온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한 성찬의 의미를 가장 잘 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예식 때마다 이 말씀을 읽어드립니다.
이 두 말씀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성찬에서 우리가 획득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변화’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15절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목적의 변화를 말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십자가를 위하고, 십자가의 목적에 함께 헌신하는 삶에 대한 결단입니다. 바울이 결단했고, 초대교회가 결단했고, 그리고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들 모두가 결단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2:1-2의 말씀은 거룩한 제사와 제물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제사,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살아 있는 제물 -본문에서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변화된 마음과 삶이라고 말합니다.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성찬에 참여하고 마음에 새기고 삶에 획득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미를 한 단어로 말한다면 바로...... 바로..... ‘변화’입니다.
3.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설교 후에 부를 찬송를 선택하다가... 마음에 떠오른 찬송이 있었습니다. 바로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라는 찬송입니다. 다들 아시지요. 1절만 한번 불러볼까요? 이 찬송을 어제 오후 Youtube를 통해서 계속 들으면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고민인지는 짐작하실 겁니다.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어서 새 사람되었다는 고백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새 삶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게 있어서 이 찬송의 어디까지가 사실입니까?
1.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되고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음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What a wonderful change in my life has been wrought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I have light in my soul for which long I had sought,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2.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망령된 행실을 끊고 머리털보다도 더 많던 내 죄가 눈보다 더 희어졌네 I have ceased from my wandering and going astray,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And my sins, which were many, are all washed away,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3. 내 맘에 소망을 든든히 가짐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의심의 구름이 사라져 버림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I’m possessed of a hope that is steadfast and sure,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And no dark clouds of doubt now my pathway obscure,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4.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다가 밝은 빛 홀연히 보고 저 멀리 하늘 문 환하게 보임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There’s a light in the valley of death now for me,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And the gates of the City beyond I can see,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5. 나 이제 천성에 올라가 살기는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천성을 향하여 내가 곧 가리니 그 기쁨 비길 데 없네 I shall go there to dwell in that City, I know,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And I’m happy, so happy, as onward I go,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후렴 Refrain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물밀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 Floods of joy o’er my soul Like the sea billows roll,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제가 드렸던 질문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이 찬송을 부릅니다. 우리가 부른다고 이 찬송이 우리의 삶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이 찬송의 어느 만큼이 우리의 삶에서 진실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셨습니까? 그래서 새사람이 되셨습니까? 우리가 늘 소원하던 참된 빛을 찾으셨습니까? 망령된 행실은 끝났습니까? 머리털보다도 더 많던 죄와 악은 깨끗해졌습니까? 소망만을 든든히 가지고 의심은 사라지고 없습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환한 생명의 하늘문을 바라보며 사십니까? 이미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 살고 계십니까? 천국을 향한 발걸음 흔들리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주 예수님이 마음에 들어오신 후 물 밀 듯 마음에 넘치는 기쁨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어느만큼이 진실입니까?
4, 변화, 예식이 아닌 본질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 선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그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예수의 십자가가 당신과 나를 위한 것임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가 묵상한 찬송이 그 대답 을 하고 있습니다. “What a wonderful change in my life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내가 예수님을 만난 후 경험하는 변화를 그 말씀에 옷 입혀서 전하는 것입니다. 그 성도를 보면 복음의 능력이 보이게 해야 합니다. 그 교회를 보면 십자가의 흔적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고 변화가 있어야 하고, 예수와 교제하고 동행한 이후 분명하고 뚜렷한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 차이, 그 변화, 그 성장이 바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입어야 할 거룩한 옷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십자가를 통해서 복음을 주셨지만 우리는 마음과 삶의 변화로 아름다운 제물을 드립니다. 주님의 은혜와 우리의 감사가 만나고, 주님의 우리를 향한 헌신과 그 헌신으로 만든 변화가 만날 때 그것이 참된 교통이요 교제이며, 천국의 잔치가 이뤄지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는 현장이 됩니다.
아무리 손을 씻어도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손을 씻어도 나의 죄와 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예배에 참석하고 신앙행위를 해도 내 마음과 삶이 말씀을 따라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아직 마음과 몸이 더러운데 손만 하얗게 씻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2000년 전 초대교회와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 변화의 요청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되고 거룩한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고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헌신하는 삶을 살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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