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3. 제2기 비전 - 3.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고후 6:1) | na kim | 2011-09-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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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23.
* 본 문 : 고린도후서 6장 1절 말씀 * 제 목 : 제2기 비전 - 3.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
프랭크 로바크(Frank Laubach)라는 분이 있습니다. 1884년 태어났고, 필리핀 선교사로 헌신했으며, 세계 문맹퇴치선교회(World Literacy Crusade)를 설립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미국의 수많은 선교사 중에서 우표에 등재된 유일한 선교사이기도 합니다. 정치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계2차 대전이 끝 난 후 미국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력을 미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가 과연 어떻게 이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그는 ‘Frank Lauback의 편지’라는 책에서 자신도 45세가 될 때까지는 신앙생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의 책에는 당시 그의 고민의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런 교류를 항상 유지할 수 있을까? 깨어 있는 동안 내내 그렇게 살다 잠들 때 그분 품 안에 잠들고 다시 깰 때 그분의 임재 안에 깰 수 있을까? 그 임재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항상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을까? 항상 그분의 생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 하나님이 언제나 내 마음에 거하실 수 있도록 내 생각의 흐름 속에 시시각각 주님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을까? 내 남은 인생을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실험으로 삼으리라!”
그리고, 그는 1930년 1월 1일부터 자신의 결단을 실천하는 과정을 일기로 썼습니다. 그의 일기를 잠시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1930년 1월 26일 / 매 순간 하나님을 느끼고 있다. 의지의 행동이다. 지금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는 이 손가락도 하나님이 인도해주시기를 바란다. 1930년 3월 1일 / 보이지 않는 한 손이 내 손을 잡아 이끄시고 또 다른 손이 앞에서 내 길을 예비하신다는 이 의식이 내 안에서 날마다 자라고 있다. 1930년 4월 18일 / 하나님과의 교제의 참맛을 느끼자 그분께 합당하지 않은 모든 일들이 역겹게 느껴진다. 오늘 오후 하나님의 임재의식에 강하게 붙들리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았다. 하나님이 어찌나 가깝고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찌나 놀랍게 차오르던지 마치 나 자신이 온통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경험은 이제 한 주에 여러 번 찾아온다. 1930년 5월 14일 / 매 순간 끊임없이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을 내 생각의 주제로 삼고 내 대화의 짝을 삼는 것, 이것이야말로 평생 접해보지 못한 가장 놀라운 일이다. 점점 된다. 물론 아직은 한 나절도 못 간다. 그러나 언젠가는 하루 종일 그렇게 될 날이 있을 줄로 믿는다. 1930년 5월 24일 / 하나님께 집중하는 마음은 갈수록 강해지는 반면 다른 모든 것은 더 이상 내게 집요함을 잃어버렸다.... 어떤 일에도 더 이상 조급한 마음이 없다....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놓치는 것, 그 한 가지만 빼고는 아무것도 잘못될 수 없다. 1930년 6월 1일 / 오, 하나님. 주님만이 저를 이해하실 수 있고 주님만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주님과 저 사이가 얼마나 더 가까워졌는지요.... 주님은 온전히 제 안에 계십니다.
1.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대해 자신과 선교팀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고후 6:1)라고 했습니다. 다시 보시겠습니까? 그는 자신과 선교팀이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고 표현합니다. 저는 이 표현에서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의 insight를 찾았습니다. 오늘은 초대교회의 2기 사역을 바라보는 세 번째 시간입니다.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여러분께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위하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서로를 위하여!” - 좋은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자로서’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40세 장년이 된 모세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참으로 힘든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이제 남자로,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펼쳐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이미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출 2:11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이미 그는 히브리인들을 자신의 형제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들을 위해 일하기로 결단합니다. 기회는 우연한 상황 속에 찾아옵니다. 하루는 노예들이 일하는 현장을 둘러보고 있을 때 애굽의 관리자가 노예인 히브리인을 때리는 것을 발견합니다. 애굽의 왕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던 모세는 애굽인을 쳐서 죽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자신의 형제들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히브리인들이 싸우고 있는 현장을 발견합니다. 모세는 왜 형제를 괴롭히느냐고 잘못한 사람을 타이릅니다. 그런데 그 히브리인은 거칠게 대답합니다. “누가 너를 우리의 통치자로 삼았느냐? 지난번 애굽인을 죽인 것처럼 우리도 죽이려는 것이냐?”
출 2:14 하반절에 보면 모세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가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일이 탄로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먼저는 자신이 애굽인을 죽인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닙니다. 그것과 관련하여 자신의 생각과 목표가 애굽과 바로 앞에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히브리인이며 그들을 형제로 생각하고 있고 그들을 위해서 일하고자 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분명 모세는 자신의 전 삶을 걸고 히브리인들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데, 정작 히브리인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히브리인들의 눈에 그는 여전히 애굽 왕자의 옷을 입고 있는 애굽인일 뿐인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모세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위해 일하겠다고? 애굽인의 옷을 입고, 애굽의 생각을 하며, 애굽의 말을 사용하면서 우리들을 위해 살겠다고? 천만에! 우리를 위해 일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되어봐. 우리와 같은 생각과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봐. 우리를 위해 일하지 말고, 먼저 우리가 되어 보라구!”
그는 결국 애굽인도 아닌, 히브리인도 아닌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 40년을 살게 됩니다.
2. 하나님의 통역자가 될 수 있을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살겠다는 결심이 왜 위험한지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그런 선한 의지를 가졌다 한들, 우리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인격과 삶과 믿음과 성품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해 일하겠다는 우리의 결심은 헛된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모든 헌신과 수고, 혹은 땀과 눈물이 나 자신의 영광을 위한 땔감은 될지언정 하나님 나라와 의에 도움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서신서 곳곳에서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그릇된 열심을 가지고 ‘교회와 성도를 위해 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은 그것과 어떻게 다르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먼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해봤습니다. 한 구절씩 따라 읽어볼까요? “하나님의 통역자가 되기 - 하나님의 귀로 듣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느끼고, 하나님의 입으로 말하고, 하나님의 가슴으로 안아주기”
저는 통역을 하러 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영어가 엉망이라 겨우 의미만 전달하는 일이 대부분이지요. 좋은 기억들이 많습니다만, 그동안 3번 정도 통역을 하다가 쫓겨난 일이 있습니다. 미국 사회가 보편적으로 목회자에 대한 존경이 많고, 또 제가 그들을 돕기 위해 갔는데 왜 쫓겨났을까요? 세 번 다 이유는 동일합니다. 제가 통역만 한 것이 아니라 제 생각대로 무엇인가 다른 것을 했기 때문입니다. 판사 혹은 검사가 묻는 말을 피고인에게 그대로 전하고, 피고인의 말을 그대로 판사 혹은 검사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저의 해석을 가미한다든지, 피고인을 돕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설명을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제가 정말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통역자로서의 저의 역할은 양측의 귀가 되고 입이 되는 것인데, 저의 생각과 판단을 사용하려 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와 성도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역자입니다. 이미 세상은 하나님의 언어를 들을 수 없고, 하나님께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성도를 택하시고 교회를 세우셔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예,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과 은혜의 생산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통로만 될 뿐입니다.
3.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준비하며
그런데 하나님이 세상에 주시는 은혜와 복과 사랑의 좋은 통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금 전에 따라 했던 말씀 다시 한번 해 봅시다. “하나님의 통역자 되기 - 하나님의 귀로 듣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느끼고, 하나님의 입으로 말하고, 하나님의 가슴으로 안아주기” 하나님의 마음, 귀, 입, 가슴이 되고, ,손과 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좋은 통역자로 살고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준비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람의 삶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변화와 성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은혜를 받고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겠다고, 혹은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보다,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삶으로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통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한 하나님의 권면과 약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 안에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나고 교제하며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는 일입니다. 성경은 이 일을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2)”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엡 6:18)” “기도를 항상 힘쓰고(골 4:2)”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등과 같이 많은 권면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항상, 모든 일에, 늘, 무시로, 쉬지 말고’ 하나님과 대화할 것은 권면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뜻을 알아가고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고 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고 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4. 네 가지 연습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네가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연습해보려고 합니다.
1) 아침에 잠에서 깰 때에 하나님을 생각합시다.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침마다 잠에서 깨는 순간.... 히루에 대한 당신의 모든 사원과 희망이 야생동물마냥 당신을 엄습해 온다. 아침마다 첫째로 할 일은 그 모든 잡념을 밀쳐 내고 다른 목소리를 들으며 다른 시각을 입는 일이다. 다른 삶,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고요한 삶이 내 안에 찾아 들게 하는 일이다.” 굳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누워 있는 채로 잠시 기도합시다. 하나님,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고 지켜주십시오. 하나님, 오늘도 아버지와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도록 인도해주십시오.
2) 하나님과 침묵의 시간을 보내십시오.
어떤 사람이 테레사 수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을 기도할 때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데레사 수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는 그냥 듣습니다.” 다시 그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데레사 주녀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분도 저를 들으신답니다.” 시편 46:10에서 기자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됨을 알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멈추어 서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합니다. 조용히 입술과 마음과 생각과 바쁜 걸음을 멈추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을 하루 중에 가져야 합니다. 시간 혹은 장소를 정하십시오. 그곳에서 짧으면 몇 분, 길면 몇 시간 하나님과 침묵 가운데 교통하는 시간을 보내십시오.
3) 짧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먼저 소개한 로바크는 2-3분마다 혹은 생각날 때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지금 주님 뜻 가운데 있습니까?” “주님, 제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습니까?” 혹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늘 기도하며 주님을 생각합시다. 밥을 하는 시간, 국이 끓는 시간에 이 밥을 먹는 식구들을 하나님에 의탁하는 기도를 하시면 됩니다. 운전을 하는 동안에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할 일을 위해서 기도하시면 됩니다. 내가 움직이는 모든 곳을 성전으로 삼고 기도의 처소로 삼으시면 됩니다.
4) 잠자기 전에 하나님을 생각합시다.
마지막으로 하루 일을 마치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립시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잠시 묵상하고 감사를, 혹은 용서에 대한 간구를, 혹은 안타깝고 불쌍한 일에 대한 중보를, 혹은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시편의 기자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 121:4)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 하나님께 의지하여 우리의 남은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도록 합시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 우리 인생이 감히 꿈꿀 수 없는 큰 영광입니다. 말로 할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과 은혜가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우리가 그 영광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섬기며 헌신하며 살아가는 초대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마음, 하나님의 눈과 귀와 입과 가슴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아름다운 통역자가 되어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날마다 마음을 열고 교제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일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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