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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5. 예수님을 사랑하는 법(요 14:21) na kim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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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5.

* 본 문 : 요한복음 14:21

* 제 목 :  예수님을 사랑하는 법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1)


기독교인들이 성경책 다음으로 많이 읽은 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소위
기독교의 3대 고전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그 중 하나요,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도 그 중 하나이며, 마지막으로 오늘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은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도 그 속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 받아’ - 제목부터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어떤 내용일 것 같습니까? 예, 우리의 보이는 생활 만 아니라 성품과 소원과 생각까지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가자는 내용입니다. 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일은 세상을 바라보는 대신 하늘의 일을 좇는 것이다. 덧없이 사라질 부요함을 바라고 의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명예를 뒤좇거나 출세하려고 하는 것 역시 헛되기는 마찬가지다. 이기적인 즐거움을 좇아 가혹한 벌을 불러올 뿐인 육체의 욕심과 그릇된 일에 집착하는 것도 헛된 일이다. 오래 살기를 바라면서 바르게 사는 데 무관심한 것 역시 헛된 일이다. 현재의 삶만 생각하고 앞으로 닥칠 일에 무관심한 것도 물론 헛된 일이다. 영원한 즐거움을 사모하기보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무익하다. 언제나 다음의 잠언을 명심해야 한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전 1:8). 그런즉 눈에 보이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하도록 하라. 욕망의 길을 따르는 이들은 그 과정에서 양심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럽힐 뿐이다.”
(p.16)


내용을 자세히 보시면 저자는 지금 즐거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눈과 귀를 만족시키는 세상의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만족을 찾으며 살아갈 것을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말씀 드린 대로 저는 지난 설교부터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도의 삶에 대해서 설교를 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그런 주제로 설교를 하기 전에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입니까? 대부분 우리는 좋아하는 일, 즐거워하는 일에 우리의 삶을 헌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즐거워하는 것을 함께 즐거워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추구하는 삶의 즐거움은 얼마나 하나님을 닮았을까요? 우리는 정말 예수님이 즐거워하셨던 일들을 즐거워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과 우리의 즐거움은 얼마나 닮아 있을까요?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처럼 살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 질문들에 대한 좋은 대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천천히 살피면서 과연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1. 예수님을 사랑하기


오늘 본문의 첫 구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성취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다른 규칙이나 기준을 만족시키는가를 보는 것이 아닌, 예수님이 제시하신 계명을 지키는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계명을 지킨다는 것과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좀 다르지 않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이라고 강조하신 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강조하고 또 강조하신 계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에 심어두고자 하셨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말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것은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이 가르치고자 했던 핵심 정신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들의 일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순종하는 일과 이웃들을 사랑하여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표현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그리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해 보실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다시 다른 질문 하나, “여러분은 이웃과 성도들을 사랑하십니까?” 예,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이렇게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되 이렇게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네 자신 같이....” 여러분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십니까? 이웃과 형제를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십니까?


예수님 사랑을 이 말씀처럼 실천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사랑에는 제약과 한계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 이상 안되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쉽게 넘지 못하는 장벽, 제약과 한계 - 그 이름은 무엇일까요? 예,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마음과 목숨과 뜻도 우리 자신의 것이요, 이웃 사랑을 위해 넘어야 할 것도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신의 한계를 넘지 못하면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날 수 없고, 자신의 한계를 넘지 못하면 이웃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내 안에 견고하게 쌓아둔 자기 한계의 벽을 넘어서는 헌신과 사랑, 그 무너진 장벽 뒤에 우리 주님의 사랑이 보석처럼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본문의 그 다음 구절에서 그러한 사랑의 결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2. 예수 사랑의 열매


1)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에게 주시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본문은 먼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는 자들에 대한 축복은 성경에서 여러 번 강조되었습니다. 잠언 8:17에서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는 바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인격화해서 표현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간절하게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고, 결국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예수 사랑의 결과를 ‘하나님의 사랑을 입음’이라고 표현하신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말씀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에게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허락하시며 더 큰 사랑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경험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하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심


그리고 여러분! 예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놀라운 또 하나의 열매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봅시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이 말씀,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말씀 전체를 요약해 봅시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을 지키는 성도들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성도에게 허락된 첫 번째 은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능력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도 그런 성도들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성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약속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누가 나타납니까? 예, 예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I WILL LOVE HIM AND SHOW MYSELF TO HIM."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그런 성도들에게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의아합니다. 이미 예수님은 그들 앞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예수님이 자신을 보이신다니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령이 임하셨을 때 비로소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보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보게 됩니다. 영으로,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비로소 구원의 주요 창조주로 우리 주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해 볼까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와 교회, 즉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성도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예수님 또한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이런 성도들을 사도행전에는 한마디로 무엇이라 불렀을까요? 예, 바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라구요? 예,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왜, 어떻게 이들이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이 그 비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은 말씀을 사모하고 예수님은 말씀의 영으로 그들의 삶과 심령 가운데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3. 예수가 나타나는 삶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닮을 수 있을까요? 요즘 친하게 지내는 목사님 중 한 분이 얼마 전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분은 아들만 셋을 두고 있는데, 각각 12살, 8살, 4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 아들이 각각 하나씩 아버지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첫째는 긴장하면 귀를 움직이는 버릇이 있습니다. 둘째는 안경을 끼지 않았는데도 코와 미간을 찡그리는 버릇이 있구요, 셋째는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날 때 그 목사님이 하는 말투와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답니다. 웃긴 것은 각각 하나씩만 따라하고 다른 것은 못한다는 겁니다. 교회에서도 세 아들이 각각 다를 모습으로 아버지 흉내를 내는 것을 보고 너무 재미있어 한다는 말을 하더군요.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보고 배운 것, 삶과 몸으로 익힌 것들이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들이요 성도로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들에게 주님을 나타내시고, 우리들 속에 들어와 계시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을 통해서 주님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계명을 지킬 것인데, 그 계명이 하나님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은 또 더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십니다. 그 큰 사랑을 마음껏 받은 성도가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은 더 크고 깊은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 주님의 모습이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시고 우리들을 통해서 우리 주님이 활동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 우리를 통해 세상에 증거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 예수님처럼 살고 싶은가?


다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처럼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사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처럼 살고 싶으십니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과 ‘나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장벽들을 넘어서야 합니다. 내가 넘을 수 없다고 여겼던 벽 하나를 넘을 때마다 그곳에서 우리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리가 주님을 더욱 닮아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 받아’의 책 한 부분을 다시 함께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그대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겠는가?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처참한 지옥이요,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즐거운 천국이다. 예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신다면 어떠한 원수도 그대를 해치지 못하리라. 예수님을 얻은 자는 아름다운 보배를 얻은 것이니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해도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리라. 예수님을 잃은 자는 이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보다 더 큰 손실을 입으리라.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는 지극히 가난한 자요, 예수님과 더불어 잘 지내는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이다. 예수님과 사귀는 법을 안다는 것은 훌륭한 재능이며 예수님을 꾸준히 따르는 법을 안다는 것은 큰 지혜이다.”


믿음 있는 여러분들에게 우리 주님이 자신을 나타내시고, 여러분 안에 들어오시고, 여러분은 그 주님의 손을 잡고 여러분 자신의 한계와 벽을 넘어서서 하나님과 이웃을 참되게 사랑함으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아름다우신 주님이 나타나는, 우리 주님을 닮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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