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28.
* 본 문 : 마가복음 1장 14-20절 말씀
* 제 목 : OMTL - 5. 떠나라, 미련없이!
손광세라는 시인이 쓴 ‘여행’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앞부분만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떠나면 만난다
그것이 무엇이건
떠나면 만나게 된다
잔뜩 찌푸린 날씨이거나
속잎을 열고 나오는 새벽 파도이거나
내가 있건 없건 스쳐갈
스카프 두른 바람이거나
모래톱에 떠밀려온 조개껍질이거나
조개껍질처럼 뽀얀 낱말이거나
아직은 만나지 못한
무언가를 떠나면 만난다
그리고 중간에 이런 문구가 더해집니다.
“방구석에 결코 만날 수 없는 무언가를
떠나면 만나게 된다”
저는 이 마지막 문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렇지, 그렇지....”하면서 지난 주간 내내 묵상했습니다. 머물러 있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세상, 두려워하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신비가 우리의 삶에는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나 자신을 가두고 있는 마음의 문, 자기 한계의 문을 열고 나와서 과거의 자신, 자신을 가두는 벽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아름답고 새로운 삶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떠나기로 결정하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예수
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떠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집에 있기 위해서는 굳이 무엇인가를 선택하지 않아도 됩니다.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래를 설계해 보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이제껏 하던 대로 먹고 마시고 살면서 불평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면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미래를 원한다면 그는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선택,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선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 그것은 자신의 과거를 떠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여행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신의 과거가 자신의 인생을 얽매지 못하도록, 더 이상 분노하고 불평하며 과거에 얽매인 현재를 살지 않도록,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을 살았고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내일이 되지 않도록 새로운 삶을 향한 여행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나를 얽매고 있던 과거를 떨쳐 버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새로운 땅을 향해 떠나겠다는 결단 - 우리가 해야 할 영적 여정의 첫 발걸음입니다.
2. 버려야 합니다.
여행을 위해서는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우리는 여행을 하지 못할까요? 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길을 떠나는 제자들에 대해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버려두고’입니다. 버리고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여행하기 위해서, 즐겁게 여행하기 위해서는 나를 얽매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길을 떠나서 나의 과거로부터 떠나기 전의 문제입니다. 나를 얽매고 있는 것들로부터 먼저 자유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말씀드린 대로 제자들이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 딱 12제자들만 초청하신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새로운 삶으로 초청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새롭게 출발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들이 버리지 못한 것이 좋은 것들, 즉 부나 명예나 편안한 삶만은 아닙니다. “좋으니까 안버리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괴롭히던 죄책감을 버리지 못합니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평생 괴로워하던 상처를 버리지 못합니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수치심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분노와 슬픔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그것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고, 그것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면서도 끙끙대며 붙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지고 있는 모든 짐에 관한 말씀입니다. 수고스럽고 무거운 짐, 고통스럽고 아픈 짐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번 짐을 버렸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영원히 짐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물과 배를, 고향과 가족들을 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십자가라는 길에서 막히고 말았습니다. 버린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남은 것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좁은 길, 예수 그리스도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에는 내가 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겁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고민하던 그들은 쓸쓸히 돌아섭니다. 아무도 예수님과 함께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막힘을 경험해보신 일이 없습니까? 내가 믿는 예수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여행을 위해 참 많은 것을 내려놓고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만난 좁은 길,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서성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신 일은 없습니까? 내려놓아도, 뿌리치려해도 끊임없이 나에게 안겨들고 나를 붙드는, 정말 끈질기고 무거운 짐을 붙들고 고민하신 적은 없습니까?
한번 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의지적인 믿음으로 반복되어야 합니다. 이기적인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은 것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수치와 죄책감과 상처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버리고 내려놓는 기준이 나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준은 십자가라는 좁은 길이요, 예수 그리스도라는 좁은 문입니다. 그것에 합당하지 않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새로운 여행이 시작됩니다. 그 여행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3. 숲, 시야를 가리다.
그리고 여행에서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난 6월과 7월에 걸쳐서 미국의 각 주를 여행하면서 느끼고 본 것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Highway로 다녔습니다. 기억나는 것 중 하나가 아리조나에서 펜실바니아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아리조나 평원을 지나고, 뉴멕시코를 거쳐서, 텍사스를 지나고, 오클라호마를 지나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좀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도로 주변이 다 광야여서 시야가 아주 넓게 확보되기 때문입니다. 언덕 혹은 산이 있기는 하지만 나무가 없고 길이 곧아서 운전하기가 편합니다. 평소에 잘 보지 못하던 풍경이어서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운전을 했습니다. 눈앞에 곧게 펼쳐진 지평선을 가르는 도로와 룸미러를 통해 보이는 내가 지나온 지평선을 가르는 길이 보이고 그 길을 혼자서 바람 소리를 내면서 달리는 기분은 정말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주리를 들어서면 풍경이 갑자기 바뀝니다. 펜실바니아보다 더 많은 숲들이 고속도로 주변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더군요. 울창한 숲이 시야를 다 가려버려서 길 너머에 있는 풍경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숲은 그 자체로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숲만 보였습니다. 그것에 가려서 다른 것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아..... 여행을 한다고 해서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함정이 있습니다. 나는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시야를 가리는 것들이 많아서 정작 볼 수 있는 것은 적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 싼 숲이 높으면 볼 수 가 없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들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의 세상을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게 하난,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마음과 눈을 가로막고 있는 숲 중에서 시간의 숲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간 속에 우리가 누려야 할 참 아름다운 것들을 숨겨놓으셨습니다. 믿음과 용기로 담대하게 그 시간을 넘어서면 될 것인데 안타깝게도 시간 너머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지 못합니다. 늘 눈앞에 있는 현실에만 집착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허락하셨던 미래의 아름다움이 시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때 눈물겨운 오늘의 현실로 다가오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과거의 사람이요 시간에 얽매인 삶을 살게 됩니다.
또 예를 들어 사람의 숲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야는 늘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막혀 있습니다. 사람만 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통해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지 못합니다. 사람으로 인해 고민하고 기뻐하고 보람을 느끼고 즐거워하다보니 정작 하나님이 사람을 향해 주신 비전과 생각, 하나님의 소원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사람과 부대끼다보니 어느새 여행이 끝나 있기도 합니다.
4. 하나님의 시선으로 내일을 바라보라.
그렇다면 어떻게 이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은 우리들에게 여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를 제공합니다. 길을 떠나되 시선을 어디에 두고 떠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어떻게 부리시는지를 봅시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말씀 속에는 숨어 있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이전에는 너희들이 먹고 살기 위해 물고기 그물에 얽매인 삶을 살았지만, 이제 너희가 나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면, 너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너희의 삶을 그물로 던지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제자들이 이 말씀에 순종할 때 그들은 자신의 계획과 생각이 아닌 주님의 계획 속에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인생에 목표가 생기고, 그들의 인생에 어떤 길로 사야 하는지 방향이 결정됩니다. 그들의 앞길을 향한 예수님의 시선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그들의 삶에 대한 시선이 일치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한걸음씩 걷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은 여행입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여행을 합니다. 이 여행에는 불편한 두 가지 진실이 있습니다. 첫째, 이 여행에는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시계를 맞춰 놓으셨습니다. 둘째, 우리는 그 시계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주어지는 시간 속을 걷습니다. 자, 여러분은 어떤 여행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은 떠나기로 결단했고, 짐을 내려놓았고, 내 시야를 가리는 여러 장애물 너머 하나님의 시선에 그들의 마음을 두었습니다. 오랜 훈련을 거쳐서 비로소 제자가 되고, 비로소 그들을 통해 세계 교회가 건설됩니다. 성도 여러분! 제자들이 이미 출발한 그 여행길, 우리 주님의 마음이 머물고 있고 시선이 머물고 있는 그 여행길에서 우리가 서로 만났습니다. 나를 위해 살고, 나의 소원을 위해 허덕이던 인생에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새로운 여행이 허락되었습니다. 허락하신 새로운 삶으로 담대하게 떠날 수 있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행에 합당하지 않은 모든 것으로 버리고 가벼운 모습으로 미련없이 떠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하나님의 시선에 우리의 마음을 두고 좁은 길, 좁은 문에서 서로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