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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 OMTL - 6. 생명에 집중하라.(요 10:10) 이응도 목사 201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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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4.

* 본 문 : 요한복음 10장 10절 말씀

* 제 목 : OMTL - 6. 생명에 집중하라.


지난 8월 우리는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캠페인에 동참했습니다. 매일 열심히 책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 주일 설교를 들으면서, 모임에 참석하고 토론하면서 우리가 다 함께 고민했던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이제 20대 푸른 청춘이든, 30대 아직 꿈이 남아 있든, 40대 조금씩 삶에 대해 지쳐가든, 50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든, 60대 남은 날들을 계산하며 마음이 조금씩 초초해지든, 70대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든.... 아직 허락된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30일 간 고민을 통해 답을 얻으셨습니까? 결심한 것이 있으십니까? 실천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모두에게 시간을 드려서 고민하고 결단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지만 오늘은 예배 후에각 전도회에서 한 분씩 대표로 간증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전에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가진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고 계시는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어쩌면 예수님 자신의 간증이면서 우리를 향한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제시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One Month To Live 2011년 캠페인을 마치고, The Blessing Day 2011로 들어가는 문을 열려고 합니다.


1.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길들


지난 수요일 오후에 Maple Glen Elementary School에서 입학 예정 자녀들과 부모들을 함께 초대했습니다. 성일이도 그 대상이어서 함께 학교에 갔습니다. 놀이터에 불러 놓고 서로 어울려 놀면서 얼굴을 익히는 시간을 마련했더군요. 좁은 학교 놀이터에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와글거리고 부모들까지 함께 있으니까 정말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100여명의 아이들, 그리고 100여명의 부모들.... 모두 그 누구의 자녀들이고 모두 그 누구의 부모들이었습니다. 섞여서 놀고 있을 때는 모두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올 때 제가 아빠라고 해서 그 아이들 중에서 아무나 데리고 오면 어떻게 될까요? 성일이가 부모들 중에서 아무나 손을 잡고 따라가면 될까요? 그곳에 있는 모든 자녀들은 저의 관점에서 딱 두 종류 밖에 없습니다.
내 아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자녀들입니다. 성일이의 관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내 아빠와 아빠가 아닌 사람들만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잠언 4:23절에서 지혜자는 세상에 지키고 싶은 가치들이 많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고 하지요. 그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심기고 생명이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수많은 길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따를 수 있는 수많은 가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이 있고, 복음이라는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에 의하면 세상에는 딱 두가지 종류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길, 예수와 함께 하는 길, 구원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나머지 모두’입니다. 그저 ‘다른 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꽃길일 수 있고, 깊은 숲일 수 있고, 넓고 편안 고속도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길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다는 말은 곧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을
다원화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오랫동안 세상을 해석하고 인도하던 가치와 이념이 흔들리고 무너졌고, 새로운 생각들이 빠르게 발생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현대 문화는 모든 가치와 신념의 체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상대화하려는 노력을 보입니다. 인류가 믿어온 신앙 혹은 가치관에 대해서도 ‘진리가 아닌 진리 혹은 진리에 가까운 지혜 중 하나’라고 해석하려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시도는 교회와 신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진리를 여러 진리 중 하나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구원의 길을 여러 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잘못입니다. 놀이터에 놀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제 아들이 하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수많은 부모들 중에서 성일이의 아빠는 저 하나였던 것처럼, 아무리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지혜가 있고, 사람들이 따르고자하는 가치가 있다고 해도 참 생명의 길, 참 소망이 길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2. 예수, 길이 되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것을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놓은 길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길은 생명과 관련이 없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그것은 때때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고, 기쁨과 쾌락을 줄 수도 있고,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길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 길이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악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때로 선할 수 있고 삶의 중요한 지혜를 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따르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길에 결정적으로 없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 하나를 가지지 못할 때 생명은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예, 바로 예수입니다. 그 길에는 예수가 없습니다. “예수가 없는 길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 길은 ‘생명이 없는 모든 종류의 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예수 없는 모든 길은 ‘죽음’을 넘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하반절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와서 너희의 길이 된 것은 바로 ‘생명’ 때문이다. 너희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하게 누리도록 하기 위해 왔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길을 제시하시는 방법입니다.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하는데요, 그 첫 번째는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손을 들어서 길을 가리키시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길이 되어 우리 앞에 눕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자기 선언이 많이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것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0장에서도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또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양들을 지키고 인도하는 목자이면서 양들이 들어가야 하는 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중성(二重性)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 수 있는 문은 내게 길이 됩니다. 닫힌 문은 내게 벽입니다. 양의 문이라는 말은 양들이 걸어야 할 생명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서고, 그 길을 걸어야 보호를 받고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목자이면서 양의 문이 되시는 분, 대제사장이면서 제물이 되시는 분, 생명의 구주시면서 생명의 길이 되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손을 들어 저리로 가라고 말씀하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우리들이 걸어야 할 길이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고 도우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3. 선한 목자, 목숨을 버리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그 참된 생명의 길을 알도록 하기 위해 주님이 택하신 방법입니다. 스스로 길이 되신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 길을 걷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는 것입니다. 11절과 15절을 차례로 봅시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생명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 생명을 주기 위해서, 우리들을 생명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진리를 믿고 이 진리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시겠다는 주님의 거룩한 의지가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 위에 내어 주시는 실천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하게 얻도록 하신다고 했습니다. 생명을 더 풍성하게 얻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랑과 은혜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새생명을 얻습니다. 새로운 생명,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영적인 상태는 구원받는 백성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때로 우리들은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법적으로 새생명을 얻었고, 구원 받은 백성으로 살고 있는데 마치 생명이 없는 듯한 삶을 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새생명 얻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새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어쩌면 ‘목표’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스스로 목표가 되시면서 또 길이 되시는 분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우리들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더 풍성한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 성령을 보내십니다. 이전에는 나의 생각과 상식과 욕심과 판단을 따라 살았는데, 새생명을 얻은 우리들은 이제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며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갑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과 판단이 외롭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길을 걸으며 풍성한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4.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우리는 요한복음 10장의 말씀을 통해서 크게 용기를 얻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하게 주시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스스로 생명의 길이 되시며, 자신의 목숨까지 십자가 위에 두셨습니다. 여기까지도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스스로 우리들의 길이 되시며 스스로를 헌신하여 우리들에게 생명의 삶을 주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희생이 참으로 컸습니다. 우리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수고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우리 교회를 위한 주님의 눈물과 땀이 정말 많았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여러분과 저를,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희생이 컸다는 것은 가치가 컸다는 것이요,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27-28절을 봅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7-28)


이 두 구절의 논리적인 전개를 자세히 보십시오. 첫째 주님의 양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목자 또한 그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둘째, 그래서 양들은 목자이자 주인이신 주님을 잘 따릅니다. 셋째, 주님은 그들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넷째,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그들을 결코 빼앗기지 않습니다. 이 말씀에는
목자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양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을 지킵니다. 우리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양들을 지킨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8절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양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함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오늘 말씀의 제목에 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OMTL에 제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삶의 원리입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생명에 집중하라!” 이 집중은 나 자신의 생명에 대하여도 그러하고, 죽어가는 이웃의 생명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 서로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무엇에 우리의 남은 인생의 에너지와 관심과 정력을 쏟을 것인지를 분명하게 하고 싶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의 삶을 사는 일, 살리는 일, 살도록 돕는 일에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미 우리들에게 이러한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 스스로 길이 되셨고, 스스로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길이 되며 서로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 때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에 생명이 넘쳐나고 풍성하게 나누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로부터 자유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유혹과 위협으로부터도 자유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여러분에 대한 관심과 세상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에서도 자유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생명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사랑의 목자의 음성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음성에 순종하며 그 음성을 따를 때 우리의 삶에는 생명으로 풍성한 은혜가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결코 빼앗기지 않으시는 놀라운 그 사랑에 의지하여 날마다 생명 풍성히 넘치는 삶을 사는 가정과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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