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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2. 목숨 걸고 사랑하라 - 4. 하나님을 사랑하다. 이응도 목사 201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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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2.

* 본 문 : 로마서 8장 28절 말씀

* 제 목 : 목숨 걸고 사랑하라 - 4. 하나님을 사랑하다.


12세기 중세 교회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히는
클레르보의 Bernardus라는 수도사가 있습니다. 그는 22세에 수도사로 입문해서 64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뛰어난 설교로 유명했습니다. 종교 개혁가인 루터와 칼빈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있습니다. 그는 “The reason for loving God is God Himself. I find no other worthy reason for loving Him except Himself.”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삶에 필요한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민 사회에서 한국인들을 만나고 교제하기 위해서....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기 위해서.... 숨통이라도 좀 트려고.... 위로와 사랑이 필요해서.... 등등의 이유는 우리 신앙의 본질적인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그것을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오직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하신 아들을 주신 그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여 우리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삶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까지 4주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장 중요한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주제로 무엇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 하나님 사랑,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허락된 은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작이 우리의 지식이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우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사랑이라 여기십니까? 어떤 사람은 그리워하는 감정에 초점이 있고, 어떤 사람은 함께 나누는 시간에 관심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 대상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에 관심이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그것들을 사랑으로 여깁니다. 내가 느끼는 사랑이 나의 감정과 감각, 만족과 욕심의 충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모든 사랑은 충족되지 않는 기대로 말미암아 상처입거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의해 중단됩니다.
사람의 모든 사랑은 실패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우리들에 대한 사랑은 우리들이 가진 가치와 삶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랑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뜻 가운에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그것이 감정적이거나 이기적일 수 없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우리는 내가 끝낼 수도 있고, 이기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우리의 삶을 드려서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저는 먼저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택하심을 입고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아야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 교회가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도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찬송하면서 예배드리고 집에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부부 싸움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내 생각과 욕심대로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겠지요.” 하던 일이 잘 안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봐요.”라고 말합니다. 교회에서 필요한 일을 권할 때도 “집사님, 그게 하나님의 뜻이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업이 생각대로 잘 안되네요.” “내가잘못 생각했나봅니다.” “나는 집사님이 이 일을 해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정직하고 바른 표현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나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제가 제일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고 생각하는 어린이 찬양은 “예배 시간에 떠드는 아이 예수님이 보시면 뭐라 하실까? 아니 아니 안돼요. 예수님이 화내실거야...”하는 찬양이구요, 제가 제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말은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냐!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겠어”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좀 심각해지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아야 우리는 하나님의 정말 제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주간 나눈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알아야 우리의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에모리 화이트라는 목사님의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고, 우리의 마음의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기도하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아주 독특한 대답을 합니다. 그는 "지성을 계발하라, 도서관을 무기 창고로 삼아라!"라고 말합니다. 그 목사님이 혹독하게 비판하는 것은 기독교의 영성을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감성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장 많이 닮은 부분이 있다면 바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에모리 화이트 목사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 뜻과 감정을 깨닫고 알기 위해서 책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기도할 것을 권면합니다. 기독교 영성은 한 때는 세계 지성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 영성은 지식의 발전의 속도와 정보의 양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정보의 양과 속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믿는 믿음의 깊이와 합리성을 끊임없이 개발할 필요는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공부하셔야 합니다. 물론 성경을 많이 읽으십시오. 그리고 최소한 생명의 삶을 읽으시고, 교회 홈피에 들어가서 주일 설교와 수요 예배 설교를 반복해서 읽으시고, 나아가서 교회 도서실에 있는 책도 좀 빌려가서 읽으시고, 포도나무, 책나무, 목장에 참여하시구요, 많이 생각하시고, 많이 묵상하시고, 많이 고민하시고, 많이 질문하십시오. 생각하고 또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의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믿지 않는 사람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상식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어리석음을 피하셔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고, 생명의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허락하신 귀한 뜻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보다 어리석은 생각으로 성도의 삶을 결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왜 에모리 화이트 목사가 우리의 지성을 발전시키라고 권면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이것은 공부를 많이 하고 유식해지라는 권면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의 밭을 말씀으로 경작하고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에 가까워지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과 본성이 믿음을 넘어서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섭리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치라는 것입니다.


3. 합력하여 선을 이루다.


자, 그러면 본문을 다시 봅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 말씀을 좀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들이 서로 협력하고 조화되어 하나님의 선을 이루게 됩니다.”


가끔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는 이렇게 위로하고 권면합니다. “집사님, 힘을 내세요.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거예요.”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 옳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이런 권면에는 우리의 능동적인 참여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을 두 개 뽑으라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참되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 들어와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뜻이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는데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질서가 잘 잡혀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삶 역시 하나님의 뜻으로 질서가 잘 잡혀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질서’ 속에 살아갈 때, 인생에서 우연을 가장하고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 서로 꼬이고 얽힌 수많은 갈등과 인연들, 선뜻 다가오는 예상하지 못한 불행들... 그 모든 것들을 마치 잘 감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빗으로 빗어 내리듯 잘 정리하고 오히려 “이 풍랑 인연 하여서 더 빨리 나아가는 은혜”를 누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역할입니다. 모든 일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저 수동적으로 구경만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뜻’안에서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예,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더욱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 바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은혜’입니다.


4. 내 안에 사는 이


설교의 서론에서 소개한 클레르보의 Bernardus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네 가지 단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1단계의 사랑은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다소 이기적이고 본성적입니다. 자신을 위하고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주십니다.


2단계의 사랑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A man, therefore, loves God but still for a while for his own sake, not for Himself.” 인간은 얼마 동안, 그 신앙이 성장하기까지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기 위해 믿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믿습니다. 위로와 긍휼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성장하면서
3단계로 넘어갑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필요했었는데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지면서 자신의 이기적인 동기가 사라지는 단계가 찾아옵니다. 나 자신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에 대한 깨닫고 참된 감사와 찬양을 돌리게 됩니다. 자신의 위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단계로 의지적인 결단과 노력을 하게 됩니다. 저는 많은 성도들이 2단계와 3단계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4단계는 찬송가 204장의 경지입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즉,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의 영적 일치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삶의 동기가 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내 삶의 이유가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생각과 뜻으로 사는 놀라운 경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미 예수님께서 제 4단계의 사랑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9-10)


사도 바울 또한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 보이십니까? 그것은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데 있습니다. 그 마음, 그 뜻을 나의 마음과 나의 뜻에 심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과 뜻으로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한번 그런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고 고백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그 마음으로 살고 그 뜻으로 하루 하루를 매 순간을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말씀이 말하게 하고, 내 안에 있는 뜻이 결정하게 하고, 내 안에 있는 마음이 사랑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 나타나는 삶을 살 때, 나는 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다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 살면서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영성은 "마음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길 위에서 서로를 도우며 격려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에 성공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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