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초에 Focused Living Retreat Workshop에 참석했습니다. ‘초점 맞춰진 삶 수련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대단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제가 지금 적어도 한번쯤은 점검해야 할 중요한 사항들을 되짚어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수련회 중에 모든 목회자들이 자신의 삶과 목회에 두고 있는 가치에 대해 점검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삶의 여정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서 세워진 내 삶의 중요한 원칙을 말합니다. 그것은 나의 선택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삶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은 ‘이윤 추구’가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 사람의 모든 생활과 관계는 이윤 추구에 초점이 맞춰 집니다. 지난 수련회에서 어느 목사님은 자기 안에 ‘고통 회피’라는 부정적인 가치가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은 피하고 싶다는 욕구화된 가치가 자기 안에 있어서 늘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내 안에 자리잡은 가치가 하는 역할을 아시겠습니까?
가치는 우리가 가진 은사보다 더 중요합니다. 은사는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지만, 가치는 삶의 여정에서 고난과 고통을 경험하면서 내 마음 속에 형성된 ‘operating system’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우리의 의사결정과 행동들을 지속적으로 형성해가는 기본 전제이며 근본적인 확신이 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삶의 보람과 기쁨, 감사와 만족을 내 속에 있는 가치가 삶을 통해 형상화될 때 얻습니다. 내 안에 있는 가치가 삶에서 실현되는 것만큼 짜릿하면서 깊은 감동과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1. 내게 허락하신 다섯 가지 가치
그래서 저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저의 삶과 목회에 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보시고 나름대로 평가하시는 것과 제가 생각하는 제 가치가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지 한번 보시겠습니까? 저는 제 삶과 목회에 5가지 가치가 있고 그 이유들이 있습니다.
1) 약한 사람 - 첫 번째는 ‘약한 사람’이라는 가치입니다. 저는 이것이 저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연약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사회 변혁 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 연장에 있고, 또 그 경험은 저의 약한 사람에 대한 가치를 심화시켰습니다. 저는 약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가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사역의 핵심 가치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2) 섬김과 나눔 - 두 번째 제 삶의 가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배운 헌신과 한 친구의 죽음에서 왔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다 아시듯 목회자와 사모였고, 당신들의 삶을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목회자 자녀로서 불만은 많았지만 다른 면으로는 많이 존경했습니다. 또한 제가 잊지 못하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 시절에 함께 시를 쓰던 1년 후배였던 친구가 있습니다. 지금은 소위 ‘민주 열사’로 불립니다. 왜냐하면 ‘민주화’를 외치면서 자살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 친구의 죽음은 23살의 제 삶을 정지 상태로 만들어놓았습니다. 희생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헌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3) 행복한 가정 - 세 번째는 행복한 가정입니다. 저는 참 아버지를 많이 닮았습니다. 아버지는 철저하게 일 중심의 품성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희생되는 것을 봤었는데, 여전히 저 또한 일중심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제가 압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조금 더 가정 중심의 사역을 하고 싶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이 제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목회자로 있어서 성도 여러분들이 행복하다는 말도 듣고 싶습니다.
4) 지역성과 시대성 - 제 안에 있는 네 번째 가치는 ‘지역성과 시대성’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제가 섬기는 교회를 통해서, 그리고 저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서 반드시 고민해야 할 삶의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성이란 미국 한인 사회, 펜실바니아 필라델피아 근교에 있는 이민자들의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을 말합니다. 시대성이란 역사성으로 바꾸어도 됩니다. 21세기, 속도와 정보의 양이 주도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떤 신앙적인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가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말은 ‘상황’이라는 또 다른 말로 통합될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 상황이란 그 시대와 지역의 영적 필요와 요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5) 끝까지 사람 중심 - 마지막으로 저의 가치는 ‘끝까지 사람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소수의 리더가 100걸음의 비전을 가지고 달려가고 나머지 모든 사람은 그 리더들의 사역을 구경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모습입니다. 저의 가치는 모든 사람이 함께 비전을 나누고 한걸음씩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제가 가진 기본 성품을 거스르는, 철저하게 학습에 의한 가치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의 원래의 성품을 누르고 또 조절합니다. 가끔 그것이 되지 않았을 때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을 제가 압니다. 주님께서 부족한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이 제게 힘이 되고 거울이 됩니다.
2. 가치는 시련과 고통을 통해 다듬어집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치들이 어떻게 제게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제가 이번에 발견한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가치들은 사실 제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책에 나오고, T.V에서도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에도 나옵니다. 그런데 저 가치들은 바로 저의 가치들입니다.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가치들이 저 자신의 가치로 자리 잡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학교에 보냅니다. ‘교육’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보편적인 지식을 구비하여 사회에 적응하고 자기 삶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자녀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같은 질의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같은 것을 배워도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이유는 지식이 내 안에 들어와서 자기화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보편적인 가치가 저 자신만의 가치로 자리 잡는데 두가지 중요한 원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중 단연 첫 번째는 ‘고통과 시련’의 과정입니다.
앞서 설명 드린 대로, 연약한 사람들, 섬김과 나눔, 행복한 가정, 상황에 대한 이해, 사람 중심의 사역... 이 모든 것은 저의 삶의 경험들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의 과정 가운데 특히 고통과 시련의 과정 속에서 이러한 가치들이 빚어지고 다듬어졌습니다. 어릴 때, 그 과정 속에 있을 때는 참 고통스러웠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모든 과정을 지나고 나니 그것들이 내 안에 빛나는 가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연약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의 가치는 늘 약자로 사셨던 어머니를 향한 아픈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섬김과 나눔의 삶은 단 한번도 넉넉한 삶을 살지 못하셨으면서도 늘 나누고 늘 섬기기를 즐겨하셨던 부모님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친구의 죽음은 이러한 가치들을 더 심화시켰습니다. 행복한 가정에 대한 가치는 제게는 좀 아픈 기억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릴 적 저는 그렇게 행복감을 느끼면서 자라지는 못했습니다. 지역성과 시대성은 상장 한 후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제 안에 자리잡은 가치입니다. 신학과 교회가, 신앙과 삶이 ‘상황’을 잃어버리면 가장 공허한 것이 됩니다. 한국 교회가 역사성을 상실했을 때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신앙을 잃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함께 거치면서 제게는 오히려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끝까지 사람 중심’이라는 가치는 저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아픈 자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참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입니다. 인내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각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뭐 그렇게 대단한 차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 대해 품으신 마음, 끝까지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제가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결심은 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깨닫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가치입니다.
3. 학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만일 아름다운 가치가 고통과 시련으로 다듬어 지는 것이라면, 어릴 적 고난과 시련의 삶을 경험한 모든 사람의 삶은 아름다운 가치로 가득차야 합니다. 상처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내면의 가치를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잘 보십시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서 현재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자신의 미래까지 그 상처와 고통의 기억에 맡겨버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상처와 고통, 아픔과 시련이 가치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다치고 그것에 상하고 그것을 탓하면서 평생을 허우적거리며 삽니다. 상처와 아픔, 고통과 눈물을 우리의 가치로 바꾸는 것은 또 다른 힘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가치를 발견하게 하고 가르치고 또 다른 가치를 제시하는 것은 학습과 훈련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예배하며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처를 상처로 머물지 않게 하고, 고통을 고통에 머물지 않게 하는 힘은 바로 우리 안에 임한 하나님의 교훈과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이 고난과 고통의 현실 속에서도 우리의 삶의 방향을 지키기 때문에, 상처와 아픔을 말씀으로 어루만져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과거가 오늘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발견했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우리 삶의 아름다운 가치가 되어 우리의 마음에 뿌리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2011년을 마무리하고 2012년을 준비하면서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와 교회가 여러분 각자의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지나온 삶이요, 경험한 아픔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지에 대해서는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2012년에는 이 부분이 좀 더 강화될 것입니다. 좀 더 많은 성도들이 그저 예배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제시하는 프로그램, 말씀을 배우고 나누며 섬기고 헌신하는 일들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참여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프로그램을 함께 인도하는 사역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두신 아름다운 가치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진주처럼 빛나는 가치들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해변 곳곳에 깔아두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주워서 내 마음에 심어야 합니다. 내 인생을 결정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으로 삼아야 하며, 유혹과 시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창과 방패로 삼아야 합니다.
시련과 고통, 학습과 훈련 -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보석들을 발견하고 다듬어가는 두가지 거룩한 도구입니다. 이 두 가지 도구를 통해서 우리가 서로를 돕고 협력하고 격려하며 연결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삶에 있는 가치들이 더욱 빛날 것입니다.
4. ‘뜻이 이루어지는 삶’에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상상 해보셨습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가 사람들에 대해 너무 실망했다고 합시다. 태어나면서부터 실망, 대실망입니다. 가축들이 사는 곳에서 태어나 가축들의 밥통에 가장 먼저 누웠습니다. 목수의 아들로 자라는데, 무엇인가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 요셉이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어렵고 힘든 환경의 연속입니다. 처음에는 물론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큰 뜻을 품고 이 땅에 직접 내려오긴 하셨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경험하면 경험할 수록 실망만 하게 됩니다. 도대체 사람에게 희망이 있는지 고민합니다. 그래서 만일 그 뜻을 포기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대로 하늘로 돌아가시든지.... 혹 기왕에 온 거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돌아가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행스럽게도 예수님은 단 한 번도, 한 순간도 그 뜻을 포기하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속에 정하신 가치를 따라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어떤 고난 속에서도, 어떤 사람 앞에서도, 어떤 유혹 앞에서도 예수님은 자기 안에 두신 가치를 붙들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시작에 예수님은 그 가치를 사탄 앞에, 인간의 역사 앞에 고백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있는 가치, 가장 중요하고 가장 아름다운 가치는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예수님의 마음과 삶에 박혀 있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예,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말씀에도 이것이 핵심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리고 예수님은 묵묵히 그 길을 가십니다. 그 길은 곧 십자가의 길이요 죽음의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기쁨으로 갑니다. 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하나님 자신이 자신에게 두신 가치를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이 하나님이 두신 가치가 이루어지는 현장이 되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가치가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해 실현되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고통과 시련이어도, 시험과 비난이어도, 심지어 십자가와 죽음이어도 주님의 기쁨은 그 가치가 이루어지는 삶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그 공생애의 마지막 말씀을 이렇게 마칩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 19:30)
예수님이 이루신 것은 무엇입니까? 대단한 사업입니까? 성공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삶에 두신 하나님의 뜻이요, 가치입니다. 그것을 실현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아니 죽음까지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이번 주부터 조금 어려운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저 자신이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말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좀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좀 더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는 인생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가치 중심이 생각’과 ‘가치 중심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이익도 아니요 성품도 아니요 욕심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내 안에 두신 가치, 내 삶에 말씀과 가르침을 통해 허락하시고 시련과 고통의 과정을 통해 다듬고 빚으신 가치 중심의 삶을 살아야하겠습니다. 그것은 묻혀 있을 수 있고, 녹슬어 있을 수 있고, 외면당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한 해가 지나가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정말 빨리 지나가는 이 낙엽 같은 우리 인생을 제대로 한번 살겠다는 새로운 결단과 결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하겠습니다. 떡으로도, 명예로도, 욕심으로도, 권위로도 살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으로 살고 죽고 사랑하신 우리 주님을 본 받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그 무엇도 아닌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가치를 따라 한 평생 수고하고 헌신하며 감사하며 기뻐하며 이 인생길 함께 걸어가는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