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18.
* 본 문 : 여호수아 24장 15절 말씀
* 제 목 : 주님의 기쁨 - 3. 인생의 목적
어릴 적 가정 예배를 드릴 때면 아버지와 네 남매, 그리고 어머니 할머니까지 일곱 식구가 둘러 앉아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중얼거렸습니다. 몸을 좌우로 천천히 흔드시는 아버지를 따라 모든 식구가 함께 오뚜기처럼 좌우로 흔들흔들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아마도 가족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매일 하시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설교를 하지 않으시는 대신 성구들을 20-30개 중얼중얼 암송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틀리지 않고 암송할 수 있는 성구들은 대부분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암송하던 성구들입니다. 이유도 몰랐고 뜻도 몰랐지만 신앙 고백, 찬송 한 장, 성구 20-30개, 그리고 돌아가면서 모든 식구가 간단하게 기도, 주기도문.... 이것이 저희 가정의 가정 예배 순서였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 암송했던 내용 중에서 유일하게 성구가 아닌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부분 몇 장 몇 절로 끝나는데 그것 하나만 장절이 없이 끝났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소요리문답 1번이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니라” 참 이해하기 힘들고, 또 딱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아버지를 따라 늘 몸을 흔들면서 암송하고 또 암송했습니다.
요즘 심각하게 생각하고 또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소요리 문답 1번과 관련한 고민입니다. “내가 과연 목회자로서의 나의 삶에 대해 행복한가?”를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시작할 때는 열정과 감사함으로 시작했는데, 날마다 만나는 새로운 현실 속에서 지치고 힘들어서 표정 없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만큼의 길을 걸어왔고, 이미 다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겨우 감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미 기쁨도, 감사함도, 열정도 없는데, 어쩔 수 없이 표정 없는 얼굴로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 나의 즐거움이 없다면, 내 인생이 하나님의 기쁨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인데, 나도 하나님도 나에 대해 만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1. 목적 있는 인생
여러분은 자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의 목적’ 혹은 ‘목적 있는 인생’이라고 했을 때 제게 있어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여호수아‘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했고, 이제 수백년 노예로 살던 그들에게 땅과 자유가 함께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그 땅과 자유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바로 그것을 걱정합니다.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자유의 땅, 그들의 자격과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희생하고 헌신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쉽게 하나님의 은혜와 공로를 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을 걱정하고 염려하여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권면합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천명하는 것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
여호수아의 이러한 인생의 목적 선언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을 보시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하나님 앞에서 거듭 자신들 또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수 24:18)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수 24: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수 24:24)
그들이 거듭거듭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하지만 여호수아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약속에 대해 그들 스스로를 증인으로 세웁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수 24:22) 여기에 여호수아는 한 걸음 더 나갑니다. 26-27절을 보시면 여호수아는 그들 앞에 큰 돌비를 세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그 돌을 볼 때마다 그들이 여호수아와 하나님 앞에 했었던 약속과 맹세를 기억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는 그 일을 마치고 110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여호수아는 참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인생의 목적에 대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 내 나이 110세인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하고 주저앉거나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다”는 자기 인생의 목적을 110세에 다시 한번 확인했고, 그 고백을 통해 끊임없이 배반하고 끊임없이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고백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는 자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생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순종과 헌신, 믿음과 지혜를 통해 이뤄지는 인생 -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2. 목적의 조건
다시 여러분께 여쭤 볼까요?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한 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까? 얼마 전에 상담을 하면서 한 청년에게 “인생의 목적이 있는가?”하고 물었더니 좋은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인생의 목적일까요? 직업 혹은 삶의 비전이 목적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 우리 인생의 목적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쉬우면서도 어려우시죠? 인생의 목적, 과연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몇 가지 ‘목적’이 갖는 조건들을 먼저 설명할까 합니다.
우리들의 인생의 목적은 먼저 우리의 가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성도이고, 한 교회를 섬기지만 우리 안에 있는 가치는 각각 특수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경험와 여정을 통해 다듬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2주 동안 설명한 ‘가치 중심의 삶’이 우리 인생의 목적을 결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치가 우리 인생의 목적을 결정합니다. 제가 2주 전에 제 안에 있는 다섯 가지 가치를 말씀드렸습니다. ‘약한 사람’ ‘섬김과 나눔’ ‘행복한 가정’ ‘지역성과 시대성’ ‘끝까지 사람 중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의 목적을 ‘사업에 성공하는 것’ 혹은 ‘화려한 인생을 한번 살아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가치였던지, 이루어질 수 없는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의 여정을 통해 내 마음 속에 심어주신 반짝이는 가치들이 연결되고, 그 위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나의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이 결정됩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흔히들 인생을 여행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여행을 하고 있는 여러분께 누군가 묻는다고 합시다.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왜 이 길을 가고 계십니까?“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초대교회로 모였습니다. 함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누군가 묻는다고 합시다. ”초대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무엇이라 대답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모여야 하고, 우리가 교회이어야 하는 이유가 설명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목적입니다.
하나 더 인생의 목적이 가지는 조건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쉽게 ‘직업’ 혹은 ‘장래 희망’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있습니다. 즉, doing 보다 더 중요한 것이 being의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묻는 것이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질문입니다. 어떤 직업,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인생의 목적은 이렇게 설정될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사랑의 가치를 알아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섬기는 삶을 살 것이다. 내 삶의 여정에서 그리스도의 평안과 기쁨이 발견되기를 원한다.” 이것은 제가 고민하고 설정한 인생의 목적입니다. 제가 고민하고 선택한 인생의 가치에 근거한 목적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 어떤 삶을 살 것인지가 먼저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대교회의 목적도 새로워져야 합니다. 선교사를 얼마나 배출하고, 기독교 학교를 짓고,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돕고, 상담소를 설립하고.... 이 모든 것은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만일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데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은 교회가 이 일을 교회 부흥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에 불과합니다. 모두가 이렇게 하니까, 혹은 다른 교회보다 돋보이기 위해서 이런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쉽게 지치게 되고 쉽게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가치가 정확해야 목적이 바르게 설정됩니다. 목적이 바르게 설정되어야 건강한 비전이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인생의 목적을, 교회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3. 바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목적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안에서 가치가 충돌하듯 목적도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생, 가정, 그리고 교회의 목적을 설정할 때 그것이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 안에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모든 가치가 선한 것이 아니듯 모든 목적 또한 선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그 목적지에 먼저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지를 확인합시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가 왜 선듯 110세의 나이, 자신의 죽음이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재천명했을까요?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자신과 같은 인생의 목적을 고백하기를 원해서였습니다. 왜 그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요?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고 난 다음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노예였을 때 자유를 사모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 있을 때 그들의 땅을 갈망했습니다. 자유와 땅에 주어지기만 하면 어떤 순종도, 어떤 헌신도 할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약속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자유와 땅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초점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절박하고 간절할 때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의 소원이 하나님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유와 땅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유와 땅을 얻자, 그들의 소원이 성취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말합니다. “땅이 아니다. 자유가 아니다. 우리들의 인생의 목적이 이 땅 가나안에서의 자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적이다.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의 목적이다.” 110세의 노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앞에서 이 복음을 선포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흔들리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목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께 2011년이 다 지나가기 전에 숙제를 한가지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두신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가치에 근거해서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을 기록해보십시오. 가치를 번호를 붙여서 3-5개 정하시고, 그 가치에 근거한 목적을 종이에 써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그 목적을 지지하는 하나님의 말씀, 여러분의 인생을 설명하고 인도하는 말씀을 찾아보십시오. 한 페이지 정도되는 작업인데,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걸쳐서 제가 점검하겠습니다. 여러분께 담임 목사가 드리는 숙제입니다. 꼭, 반드시, 정말, 진짜로 하셔야 합니다.
4. 아름다운 인생을 소망하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가장 크게 반성한 것이 있습니다. 말씀 드린 대로 제가 얼굴에 표정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때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해 힘들고, 교회에 대하여 욕심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들에 취해 일희일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고 잊고 지내기도 했습니다.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왜 내가 목회자로 살아야 하는지를 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2011년의 마지막에 다시 제게 물으십니다. “너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었더냐?”
비로소 깨닫습니다. 평생 힘든 목회길을 걸어가셨던 아버지께서 왜 아들들의 마음 깊은 곳에 이 구절을 새겨 놓으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수 천 번 암송하고 또 암송했을 그 구절, 소요리문답 1번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니라”는 말씀에 제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대답이 숨어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 내 인생의 의미와 이유는 무엇입니까? 방향 없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무표정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저는 소요리 문답 1번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일과 하나님을 기뻐하며 사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기뻐하고, 하나님과 내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즐거워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러한 삶의 자리에서 참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보다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에 저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했던 일과 같습니다. 그는 세상에 눈과 마음이 흔들리는 그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의 마음으로, 그에게 그 마음 주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여러분께 묻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주어진 가장 큰 행복과 의미가 하나님의 기쁨에 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녀들을 더욱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쁨이 되고, 주님은 우리의 즐거움이 되는 인생 - 그 인생길 가운데 우리 서로를 발견하며 더욱 격려하며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초대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