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5.
* 본 문 : 누가복음 19장 9-10절 말씀
* 제 목 : 주님의 기쁨 - 4. 예수님의 비전(1)
저는 요즘 4주째 ‘주님의 기쁨’이라는 큰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 두 주일은 우리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고, 지난 주일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가치와 목적이 만들어내는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예, 비전입니다.
제가 지난 주에 숙제를 내드렸는데, 다들 하셨습니까? 몇 분에게 부탁을 좀 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성도들 중에 몇 분의 삶의 가치와 목적을 나눌까 합니다.
(안명화 집사, 최미혜 성도)
물론 몇 가지 정리하고 손 봐야 할 부분이 있지만 가감없이 그대로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많은 생각이 정리될 것이고, 유익할 것입니다.
자, 이분들처럼 여러분 모두가 숙제를 잘 해 오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치와 목적은 어떻게 비전을 만들 수 있을까요? 가치와 목적, 그리고 비전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1. 오늘 이집에 구원이 임하였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을 방문하시고 말씀을 전하시는 장면입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구원을 선포해버리신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이렇게 쉽고 간단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격적인 선언이 이뤄졌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삭개오의 무엇을 보고 구원을 선언하시는 것입니까?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였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죄인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집에 찾아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동일한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삭개오만이 그 복음에 반응합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지난 삶에 대해 회개하고, 복음에 합당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신앙고백과 결단에 근거하여 그의 삶과 가정에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복음을 믿고 그 복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성도, 구원에 대한 확증이 있는 성도입니다.
여기까지 별 문제의식 없이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 보십시오. 1) 예수님은 왜 삭개오의 구원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셨을까요? 2) 왜 이어서 열므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을까요? 3) 왜 예수님은 세상에 오신 목적을 그 중간에 설명하셨을까요?
2. 열므나 비유
삭개오 이야기 다음에 배치된 열므나 비유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모든 사람에게 한 므나 씩 주시다.
열므나 비유와 비슷한 비유가 있지요? 예, 달란트 비유입니다. 이 두 비유는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달란트를 주셨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열므나 비유는 같은 것을 주십니다. 즉 달란트 비유는 각각 주어진 은사의 차이를 설명한다면, 열므나 비유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은혜에 초점이 있습니다. 지금 이 비유가 설명되고 있는 삭개오의 집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 비유에 대해 설교를 듣고 있는 우리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같은 은혜, 같은 므나를 받고 있습니다.
2) 어떻게 살 것인가?
그렇다면 같은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같은 은혜를 받았지만 다른 결과로 살아가는 삶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같은 말씀을 받고, 같은 민족을 이루고, 같은 교회로 모인다고 할지라도 다른 삶의 결과를 만날 수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들은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오히려 비난했지만 오직 한 사람, 삭개오는 그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삶의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므나를 받은 어떤 종은 주인의 마음을 알아서 순종했고, 어떤 종은 자신의 뜻을 따라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은혜를 받았지만 다른 결과의 삶을 사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그들은 같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결과로 살 수 밖에 없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무엇에 집중하는가의 차이입니다. 므나를 함께 분배받고도 아무런 결과를 남기지 못했던 종들이 집중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첫째는 세상의 소리였습니다. 14절에 보시면 백성들은 귀인이 왕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므나를 받은 종들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왕이 되어 돌아올 귀인입니까? 백성들의 소리입니까? 그들은 백성들의 소리를 듣습니다. 또 하나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자신들 안에 있는 귀인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귀인의 뜻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귀인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종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철저하게 주인이 남기고 간 가치와 목적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으로 나가서 장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소리와 자신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인의 마음과 생각, 주인이 원하는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 세상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주인의 뜻과 목적을 이루는 통로가 되며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3. 삭개오, 예수의 비전
다시 질문을 생각해 보십시오. 질문은 이렇습니다. 1) 예수님은 왜 삭개오의 구원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셨을까요? 2) 왜 열므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을까요? 3) 왜 예수님은 세상에 오신 목적을 그 중간에 설명하셨을까요?
열므나 비유에서 가치와 목적과 비전을 구별해 봅시다. 귀인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통치할 나라에 있습니다.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 나라의 좋은 왕이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가 가치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선택한 비전은 무엇일까요? 그는 종들에게 므나를 주고 자신을 대신해서 사용하게 합니다. 왕이 되어 돌아올 때가지 종들은 주인의 비전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자, 다시 삭개오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오늘 삭개오의 집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가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뜻에 있습니다.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밝히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비전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그 가치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비전을 세우셨을까요? 그 비전의 이름은 바로 ‘삭개오’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심긴 그 가치와 목적이 삭개오를 통해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복음을 받고 유일하게 복음에 반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 삭개오가 바로 예수님의 비전인 것입니다. 왜 공개적으로 삭개오와 그 가정의 구원을 선포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지금 “이 사람이 나의 비전이다! 이렇게 복음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나의 비전이 된다. 나는 이런 성도, 이런 교회에 더 많은 은혜와 복을 주고, 사랑과 능력을 줄 것이다. 나의 가치가 그들의 가치가 될 것이고, 나의 목적이 그들의 목적이 될 것이고, 나의 비전이 그들의 비전이 될 것이다.”라고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통해서, 열므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의 목적과 비전을 함께 선언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4. 2011년 성탄에 생각하는 예수님의 비전
여러분! 성탄절입니다. 기쁘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어찌되었습니까? 만일 여기까지라면 우리는 한 므나씩을 받아 쥐고 있는 종들과 같습니다. 삭개오의 집에 가득 들어차있는 유대인과 같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동일한 복음을 들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복음으로 사는가에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과 같은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의 비전이 되어 살아가는가에 있습니다. 삭개오처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주인의 비전을 따라 한 므나로 열므나를 남기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주님과 같은 가치와 목적, 그리고 비전으로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오심은 기쁨입니다.
감사입니다. 찬양입니다. 은혜입니다. 구원입니다. 주님과 다른 가치와 목적, 비전으로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주님의 오심은 그리 유쾌하지 않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순종하지 않았던 종들을 주인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의 종으로, 주인의 집에서, 주인의 은혜로 먹고 살아가던 그들은 결국 자신도 모르게 주인을 반대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2000년 전, 삭개오의 집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셨습니다. 삭개오라는, 예수님의 비전으로 사는 한 사람을 통해서 밝히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였습니다. 예수님은 좀 더 적극적으로 열므나 비유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십니다. 내가 왕으로 돌아올 것인데, 누가 나와 같은 목적을 품고 나의 비전이 되어 살겠느냐를 묻고 계신 것입니다.
200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주님의 비전이 되어 살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교회’라고 했습니다. ‘성도’라고 했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세상에 허락된 한 므나가 되어 또 다른 열므나를 만드는 통로가 되며 비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에 주님 오심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이 날에, 우리는 다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비전을 생각합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주님이 허락하신 가치를 품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신 목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비전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이루실, 한 므나가 열 므나가 되고, 열 므나가 백 므나가 되는 놀라운 우리 주님의 비전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삭개오와 같이 이전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믿음과 결단, 용기와 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2011년의 성탄에 우리 초대교회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우리 주님이 우리를 향해 품으신 비전이 심겨지기를 소원합니다. 이 시대와 교회를 향한 뜻은 우리가 이 시대의 삭개오가 되고, 우리가 이 지역 사회의 열므나를 남긴 종이 되고, 바로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와 성도들이 삭개오와 같이 주님의 비전이 될 때 우리의 짧은 인생이 잘했다고 칭찬들을 수 있는 의미있는 인생이 될 것이요, 우리가 함께 섬기는 이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전, 바로 여러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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