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
* 본 문 : 요한복음 6장 53-58절
* 제 목 : 주님의 기쁨 - 5. 예수님의 비전(2) - 성찬이 삶이 되다.
지난 5월에 제가 성일이와 있었던 일을 여러분께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성일이가 제게 와서 이제 자기도 아빠가 되었다면서 자랑을 했던 이야기입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양치질을 하고 입을 헹굴 때 제가 “카악~”하고 소리를 내는데 자기도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었습니다.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귀엽고 재미있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정말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어머니께서 오셨지 않습니까? 가일이가 깔깔 웃으며 “아빠... 이건 유전이예요.”라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어머니의 양치질 습관이 저와 같았습니다. 보고 배우는 것이 무섭다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제 몸에 익어서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고, 아들들을 통해서 비로소 저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삶으로 경험하며 배우는 것 - 이것은 어느 책이나 강의로 줄 수 없는 놀라운 학습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지혜를 전하던 많은 스승들은 제자들과 함께 살면서 구체적으로 자신이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과 판단을 하는지, 어떤 지혜를 사용하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스승 옆에서 10년을 바느질을 하고 20년 물 긷는 일만 했다 해도 스승을 보는 것이 곧 교육이요 스승과 사는 것이 곧 훈련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많은 장면 속에서 말과 글이 아닌, 행동으로 보게v 하고 삶으로 경험하게 하는 교육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제자를 선택하고 3년간 함께 생활한 것 자체가 이미 그런 교육의 방식을 택한 것이고, 나아가서 말보다는 삶으로 보여주신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리고 복음서는 곳곳에서 예수님께서 먼저 보이시고 걸어가신 길에 대해 우리가 간접으로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림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강력했던 교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서로 더 높다고, 더 잘났다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없이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만류하는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두가지 메시지입니다. 첫째는 ‘내가 너를 섬기지 않으면 너와 나는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고, 둘째는 ‘내가 너를 섬긴 것처럼 너도 형제를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백마디 말보다, 천권의 책보다 더 힘있고 설득력있는 교훈인 것입니다.
1. 성찬, 허락된 불가능한 은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고자했던 교훈의 의미를 깨달았을까요? 아마도 그 때, 그 당시에는 어리둥절하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선교를 하고 교회를 섬기면서 예수님의 무릎 꿇으신 모습, 그들의 발을 씻기시던 예수님의 손길이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교회를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거나 힘이 들 때, 사람들의 칭찬 앞에서 교만해질 때, 더 이상 이런 헌신과 수고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아마도 그들은 발을 씻기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은 또 하나의 강력한 교훈을 주십니다. 그들이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오히려 늘 기억하고 기념하며 삶에 새겨야 하는 중요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성찬식’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성찬은 그 개념이 쉽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유대인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양식’으로 소개하고 자신의 살을 ‘참된 양식’으로 자신의 피를 ‘참된 음료’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만일 여러분이 이 말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52절을 보시면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말이 된다는 것입니까? 안된다는 것입니까? 예, 이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입니다. 첫째는 사람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없다는 일반적인 의미이면서, 둘째는 만일 그가 참된 메시야라고 할 때 그 역할이나 지위를 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야면 왕이요, 하나님이신데 어찌 사람에게 먹힐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53절에서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의 말처럼 사람의 살과 피를, 그것도 심지어 메시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을 직접 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자신을 메시야로 소개하고 있는 예수님은 자신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어떻게 이렇게 불가능한 일을 우리들에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까? 이 불가능한 일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들의 삶과 신앙에서 가능한 은혜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2. 성찬을 허락하신 이유
성찬의 의미가 가장 잘 설명된 성경은 우리가 성찬식을 할 때마다 반복해서 읽는 고전 11장 23-2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어볼까요?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잔 11:23-26)
이 본문에는 성찬에 대한 여러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먼저 성찬은 누가 세운 예식일까요? 예,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이 의식을 계속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성찬을 계속 하라고 명령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기억하고 마음에 다시 새기기 위함입니다. “너희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기억하고 나의 희생을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한 성도와 교회의 의무는 과연 무엇일까요? 예, 그것은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주의 죽으심을 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이 죽었다.”라고 말을 전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와 목적,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드린 질문의 답이 고린도전서 11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불가능한 명령을 내리셨을까요? 이미 예수님께서 승천하신지 2000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과연 어떻게 성찬에 참여하고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고전 11장에서 바울은 답을 줍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직접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일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성찬식’에 참여함으로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영적으로 경험하고, 우리의 신앙과 삶을 통한 거룩한 결단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3. 성찬에 참여하다.
저는 조금 전에 성찬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요, 둘째는 고백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기념합니까? 무엇을 고백하고 결단해야 합니까?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저 작은 떡 하나와 작은 잔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살과 피로 인정합니다. 내가 그것의 의미를 영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고 마실 때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신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우리의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것이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우리 자신에 대해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교회와 성도에게 성찬을 주신 목적과 일치합니다.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되고,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은 바로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결단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나를 위해 살고, 나의 즐거움을 위해 내 인생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나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내 뜻과 욕심을 따라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소원으로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생명으로 충만한 삶을 결단하고 실천하는 삶 - 이것이 우리를 위해 성찬의 예식을 만드신 우리 주님의 거룩하신 뜻입니다.
4. 성찬이 실현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우리를 향하신 우리 주님의 또 하나의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주님의 가치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습니다. 주님의 목적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생명으로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시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가치와 목적을 이뤄가는 구체적인 비전은 무엇입니까? 지난 주일,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삭개오 비전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삭개오 비전이란 ‘한 므나가 열므나가 되는 이적’의 비전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한 성도가 열 성도가 되고, 백 성도가 되고,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또 하나의 비전을 발견합니다. 우리 주님의 거룩하신 가치와 목적이 이뤄지기 위해서 복음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 성도와 교회가 선택해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찬이 삶을 통해 실현되는 성도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찬이 삶을 통해 실현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먼저 우리 주님의 성찬에 대한 명령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묵상하고 생각하고 의미를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찬이 삶을 통해 실현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떡이 되고 잔이 되는 삶을 경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 앞에 겸손히 엎드릴 수 있을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낮고 낮은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을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나를 희생하고 헌신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성취되는 기쁨을 경험할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기꺼이 떡이 되어 내 삶을 헌신하고 기꺼이 잔이 되어 나를 희생할 있을 때 성찬의 은혜가 내 삶에서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먹고 마신 성찬이 내 삶을 통해 다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한 므나가 내 삶에서 열므나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가일이와 함께 영화를 한편 봤습니다. 그 영화를 소개하고 오늘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영화의 제목은 ‘The Express’입니다. 가족들끼리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어니 데이비스’라는 23세에 요절했던 한 비운의 풋볼 선수가 등장합니다. 그는 아직 흑인들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던 1950년대, 수많은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대학 풋볼 역사에 전설적인 기록을 남깁니다. 그에게 있어서 시련과 고난이 찾아올 때마다, 유혹과 시험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을 지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전 15:10에서 바울이 고백했던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의 삶을 살았던 그의 할아버지가 그의 마음에 남겨준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주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늘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그 은혜가 헛되지 않아서 자신이 받은 달란트가 있고, 자신이 이룬 업적과 성과가 있고, 자신의 영광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라는 말씀이 우리들의 마음에 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찬의 은혜가, 그 사랑과 뜻이 헛되지 않아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을 허락하시고 기념하고 지키라 말씀하신 우리 주님의 거룩한 소원이 헛되지 않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성찬이 실현되고, 우리의 관계를 통해서 성찬이 이뤄지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성찬의 은혜가 헛되지 않는, 참된 가치와 의미를 얻는 아름다운 현장인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말씀을 나눈 후 성찬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우리 주님이 허락하신 성찬에 참여하는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삶과 관계 속에서 실천되고 실현되는 놀라운 이적이 2012년에 교회와 가정과 우리의 삶에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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