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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1. 신년 예배 주님의 기쁨 - 6.예수님의 비전(3) 이응도 목사 201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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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1.

* 본 문 : 빌립보서 1장 6-8절 말씀

* 제 목 : 주님의 기쁨 - 6. 예수님의 비전(3) / 예수님이 마음으로


‘내 마음이 들리니?’
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다들 삶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남자 주인공은 청력을 잃어가고 있고, 여자 주인공은 7세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아버지를 모시고 삽니다. 등장 인물마다 문제가 있고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지만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진심을 알아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참 잘 정하지 않았습니까? 서로의 마음이 물 흐르듯 소통되는 관계가 살아있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복음서에는 이 세상을 향한 예수님이 마음이 잘 소개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제자들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병이어의 이적이 일어나는 갈릴리 해변의 한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루 종일 자신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듣다가 배고프고 지친 사람들을 위해 식탁을 준비하고자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예수님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마음에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백성들을 민망하게, 즉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느끼지 못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메말랐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단호합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시는 일을 돕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2012년의 첫 주일 예배에서 저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1년 동안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또 답하면서 이 한 해의 마지막에는 같은 질문에 대해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들리십니까?”


1.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우리들 모두에게, 그리고 하나님과 모든 성도들 앞에 당당하게, 과감하게 선언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예수님의 마음이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으로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고, 그 마음으로 예수님과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입니다.


6~8절을 차례대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6절 /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 “하나님의 뜻이 너희들의 삶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7절 /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 “왜냐하면 내가 너희를 나의 마음에 두고 있고, 너희는 나와 함께 은혜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8절 /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 “나는 예수님의 마음과 심장으로 너희를 사랑한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말씀의 결론을 아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라는 가치와 이 세상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서 사용하시는 세 번째 비전이 사도 바울의 선언을 통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삭개오 비전’이었습니다. ‘한 므나가 열므나가 되는 비전’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가 오늘 새벽 송구영신 예배 때 나눈 ‘성찬 비전’이었습니다. ‘성찬이 실현되는 삶과 관계의 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마음 비전’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교통하는 비전’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이 마음을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다면, 이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거룩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찬양을 다 같이 함께 부르고 말씀을 나눌까요?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찬양입니다.


2. 마음을 공격하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마음으로 사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사탄은 심지어 예수님조차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역할 수 없다고 방해했습니다. 사탄은 늘 우리의 마음을 공격하고 어둡게 하고 다른 말과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빼앗으려 합니다.


이런 생각해보셨습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신 마음을 지키지 않으셨다면, 그 마음을 바꾸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구원도, 영원한 생명도, 하나님의 나라도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한번 정하시고 스스로 약속하신 주님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님의 마음을 공격하는 것들은 참 많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 모든 공격으로부터 우리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 마음을 지키심으로 자신의 희생과 고통의 결단을 지켜내신 것입니다. 생각해보실까요? 예수님의 마음을 공격하고 연약하게 했던 것들을 무엇일까요?


1) 제자들의 연약함


예수님이 탄식했던 장면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제자들은 연약함을 만날 때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땀과 피와 눈물을 쏟으며 기도할 때에 잠을 잤습니다. 예수님의 목전에서 뿔뿔이 도망치는가 하면 세 번이나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누가 높은지를 다투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에 대해 예수님은 탄식했습니다.


2) 세상의 악함


예수님은 세상의 완악함에 대해서도 탄식하셨고, 진노하셨습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마 11:23)라고 탄식하시는가 하면,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며 진노하셨습니다. 그들이 메시야마저 부정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히려 민중들을 압제했기 때문입니다.


3) 예상되는 고통


한편으로 예수님 또한 고통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고통의 잔을 피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큰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누가 고통을 원하겠습니까? 고통 없는 성공을 원하는 것이 우리들 모두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예상되는 고통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유혹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4) 다른 대안의 유혹


또 예수님의 마음을 유혹했던 것은 사탄이 제시하는 또 다른 대안들이었습니다. “꼭 그렇게 할 필요까지 있겠습니까?”라는 것이지요. 아니, 하나님이면서 꼭 십자가를 질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그런 방식의 구원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도 충분히 뜻을 펼칠 수 있을텐데요.... 사탄은 때로 영광을, 때로 권력을, 때로는 사람들의 소원들을 가져와서 예수님의 마음을 흔들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도 이런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마음에 감동이 와서 무엇인가 큰 뜻을 세웁니다. 그런데 곧 이런 말들이 마음에 들려옵니다. “뭐 꼭 그럴 필요까지야.....”


5)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또 하나 예수님의 마음에 유혹이 되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계획과 약속이 성도와 교회의 자격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마음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지 않기로 결정해도 됩니다. 사람들은 연약하고 악했기 때문에 아무도 예수님의 결정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한 마음을 바꾸거나 포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3. 마음을 지키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그 무엇도 예수님의 우리들을 향한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을 지키셨습니다. 그 마음에 변함이 없었고, 그 마음을 포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의 마음,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붙들고 모든 고난과 시험, 유혹과 시련을 이기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까지 사탄은 시험하고 유혹했지만 결국 예수님의 마음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
은 그가 사역했던 교회에 대해 ‘예수님의 마음’을 가졌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그 나라의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주님의 가치와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사는 비전으로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 마음으로 교회를 섬길 때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 마음으로 성도를 섬길 때 낙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 와도, 아무리 악한 사람이 와도 교회와 성도를 향한 사도 바울의 마음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은 곧 우리 주님의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문제는 바로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거룩한 마음을 품었다가도 누군가 나를 시기하고 모함하는 말을 하면 분노가 내 마음을 지배합니다.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가도 염려와 걱정거리가 생기면 머리를 싸매고 눕기도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가도 사람들의 연약함과 악함을 만나면, 우리의 삶에 고통이 다가오면, 좀 더 쉬운 길이 내 앞에 찾아오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서면 우리는 너무 쉽게 주님이 주신 마음을 저버립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고,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었던 바울이 사도로 평생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책임지고 우리의 신앙을 책임지는 거룩하고 신실한 성도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과 시대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그 마음을 함께 나누고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오늘 우리들에게 강력하게 도전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여러분! 이 교회당 건물 인스펙션을 받던 기억이 나십니까? 야... 참 험난한 과정이었습니다. 지극히 제한된 재정과 인력으로 건물을 뜯어고치고 검사를 받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제 기억에 우리가 8번째인가 통과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처음 2-3번 검사 통과를 하지 못할 때는 그래도 웃으면서 넘겼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자꾸 떨어지고 또 떨어지자 슬며시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분명 완벽하게 한 것 같은데.... 인스펙터가 나오면 지적 사항이 생기고 또 생겼습니다. 저의 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인스펙터는 저와 다른 눈을 가지고 건물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인스펙션에 빨리 통과하려면 내 기준이 아니라
인스펙터의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눈과 마음의 기준에 맞아야 하는 것이지 내 눈과 마음에 좋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고 싶으십니까? 우리 주님의 참된 기쁨으로 살고 싶으십니까?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있게 선언하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나를 점검하고 가정을 돌보며 교회를 섬기고 세상에 대해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일군인 것입니다. 내 마음으로 예수님의 일을 하려 할 때 우리는 성과에 낙심하고, 칭찬을 기대하고, 실패에 절망합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할 때 우리는 그 어떤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지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승리하시는 분이 주님이시오, 열매를 거두시는 분도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거룩한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거룩한 비전을 주십니다. 첫 번째는
‘삭개오 비전’이었습니다. ‘한 므나가 열므나가 되는 비전’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가 오늘 새벽 송구영신 예배 때 나눈 ‘성찬 비전’이었습니다. ‘성찬 실현 비전'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교회와 이웃을 위한 성찬으로 드려지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마음 비전’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교통하는 비전’입니다. 주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같은 열심과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초대교회 모든 성도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이 맡시기를 일을 넉넉하게 감당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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