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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주님의 기쁨 - 7. 예수님의 비전(4) 이응도 목사 201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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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 : 디모데후서 4장 5-8절 말씀

* 제 목 : 주님의 기쁨 - 7. 예수님의 비전(4) - 준비된 삶을 사는 인생


지난 5월에 한 방송사에서 ‘나는 엄마다’라는 소제목의 영상을 보여준 일이 있습니다. 전신 근육 무력증으로 점점 몸이 마비되어가는 중에 있는 41세의 변혜정씨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너무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그녀는 불치병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가족들의 배려와 사랑을 통해서 길지 않은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다시 그 가정에 대한 소식이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전보다 많이 야위어 있었고,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녀는 여전히 용기 있게 질병과 맞서고 있었습니다. 10여분의 영상 가운데 얼마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열정과 두고 떠나야 하는 가족들에 대한 아쉬움과 아픔, 그리고 서로에 대한 참으로 눈물겨운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긴 영상인데 함께 보시고 다시 말씀을 나누시겠습니다. (스타킹/변혜정 59:14~1:13:40)


1. “제 인생에는 스케줄이 있어요.”


그녀는 자신의 장기를 기증했다고 합니다.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 비록 엄마와 아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아직 젊은 딸이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세상 어디엔가 아직은 엄마가 이 땅에 남아서 함께 생명으로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이 읽어주는 편지에 한편으로 고맙고 행복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프게 눈물 흘리는 그녀를 보면서 모든 사람이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이 말이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전 죽어서도 스케줄이 다 있어요, 그렇게....”


저는 변혜정씨가 자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계획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 참으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비록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매일 신음하고, 예정된 이별이 마음 아파하지만 그 어떤 고통도, 그 어떤 슬픔도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삶의 존엄성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단단하고 아름다운 결단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작은 시련에도 절망하고 원망하면서 쉽게 포기해버리는 우리의 연약한 심성에 큰 시련을 만나도 당당한 한 엄마의 물기어린 두 눈이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내게 마지막 하루가 남아 있더라도 나는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인생은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사도 바울, 관제(冠祭)로 부어진 인생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면서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자신의 험난했던 인생, 이제는 그리스도의 제단 앞에 관제(冠祭)처럼 남김없이 다 부어졌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주님 만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생각해보니, 참 치열한 삶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자신의 삶에 대한 표현을 보십시오. 그에게는 싸워야 할 일이 있었고, 달려할 목표가 있었고, 지켜야 할 가치도 있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그의 인생은 분명한 가치와 뚜렷한 목표, 그리고 뜨거운 열정의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끝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쏟을 수 있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인생에 또 다른 스케줄이 있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깨달은 후 그의 삶은 십자가 위에 제물로 드려진 주님의 영광에 헌신하는 삶이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관제(冠祭)와 같이 부음이 되었다”고 표현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 예식 가운데 관제(冠祭)란 그야 말로 제물에 영광의 관을 씌우는 것을 말합니다. 이 제사는 화제로 제물을 단 위에 드릴 때 기름 혹은 포도주를 그 위에 부어 드립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사실 바울은 여기서 의미있는 단어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삶을 십자가 위에서 제물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께 관제로 부어드렸기 때문에 주님은 그에게 아름다운 면류관을 준비하십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영광의 관을 씌우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드려서 십자가 위에 제물로 계신 주님께 면류관을 드리는 것이고,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충성하며 섬기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온 바울에게 ‘면류관의 삶’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참 감격적이고 엄청난 이익이 남는 인생 아닌가요? 짧은 인생 살면서 주님께 헌신하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영광되게 하는 삶을 살았더니, 싸울 것과 달려갈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해 최선을 다했더니, 주님은 다시 그를 비교할 수 없이 큰 영광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부족한 우리의 삶으로 주님께 관을 씌워드렸는데, 주님은 성도를 위해 영광의 면류관으로 관을 씌워주시는 것입니다.


3.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그리고 바울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러한 영광이 우리들 모두에게 허락된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바울은 8절에서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이 영광이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아름다운 영광, 우리 주님이 준비하고 계신 생명과 거룩의 면류관이 우리들 모두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할 것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에게’라는 구절입니다. 이것은 어떤 말입니까?


가정 먼저 이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기다리는 성도를 말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믿음, 이 세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로우신 재판장되신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고 우리를 심판하시고 허락하신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는 이 영광이 허락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말씀이 가지는 폭넓은 의미를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한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입니까? 여러분, 혹시 길을 잃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한번은 학교 대표로 시내 구덕 공설 운동장에 어린이 날 행사에 참여했다가 그 엄청난 인파와 빌딩에 가로막혀서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분 아십니까? 밝은 대낮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가고, 내 앞에 쭉쭉 뻗은 길이 여기저기에 있는데, 정작 나는 길을 잃은 것입니다. 마음이 막막하고 두려움이 턱 밑까지 차올랐습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무엇인가 아는 것이 있는지 찾고 또 찾았습니다. 얼마나 헤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니, 응도 아이가!”라며 불렀습니다. 김석규 집사님이라는 분이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다가 저를 보신 것입니다. 눈물이 팍 쏟아졌습니다. 주님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은 저의 어린 그 마음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불의한 세상, 불평등한 세상, 부조리한 세상 가운데 주님의 공의와 사랑이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바로 이 마음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참 무섭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서로를 학대하고 추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동급생의 학대가 무서워서 자살하는 어린 자녀들이 있습
니다. 바로 그 현장에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이 말은 더 큰 의미를 포함합니다. 사회적 부조리가 발생하는 현장에 누가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대하고, 누가 그것을 싫어할까요? 예, 그렇습니다. 부정하고 부패한 삶을 통해 이익과 만족을 취하는 사람은 주님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고 소원하는 사람의 삶은 지향점이 있습니다. 더 연약하고 더 가난하고 더 부족한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할 때 주님께서 빨리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주님의 긍휼과 사랑, 은혜와 공평케 하심을 허락해주시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사람은 이미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고 주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께서 그의 삶과 인격과 선택을 통해 나타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 성도들의 이름이었던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 그리고 ‘예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예수가 그들의 삶을 통해 나타나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다시 오시는 날을 참되게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미 그들의 삶 속에서 주님의 만나며 증거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자신을 이 땅을 위해 쏟아부으셨습니다. 바울이 그 위에 자신을 부었습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영광의 면류관으로 다시 부으십니다. 이것이 주님 나타나시기를 소망하는 자들에게 허락된 은혜의 약속인 것입니다.


4. 그러므로, 디모데야!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들 디모데에게 사랑으로 권면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그래, 디모데야! 이제 헤어질 때가 온 것 같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광되게 하기 위해 나의 삶을 예배로 드리는 일도 이제 거의 마친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란다. 내게는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스케줄이 있단다. 그 스케줄은 내가 이미 주님께 맡겼지. 주님이 나를 위해 준비해주시는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계획, 주님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면류관의 삶이란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에게 허락된 이 아름다운 면류관의 삶에 먼저 들어간다. 너는 남은 삶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다 한 후 그곳에서 함께 영광으로 만나기를 소망한다.”(딤후 4:5-8)


5절을 봅시다. 영적인 아버지 바울이 아들 디모데에게 하는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권면이 무엇입니까?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너의 직무를 다하라”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유언을 남긴다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습니까? 여러분은 바울처럼 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모든 일에 늘 조심하여 깨어 있고, 고난을 잘 견디고 이기며,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목회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라!”고 권면합니다. 뭐 좀...감성적인 대화를 하거나 복을 빌거나 하지 않습니다. 디모데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모데에게 이것이 축복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이유를 아십니까? 그 다음 구절 6,7,8절에 바로 사도 바울의 관제로서의 삶과 주님의 바울을 향한 면류관이 소개되고,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예수님처럼 살고 바울처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뜻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고난 가운데 믿음을 지키며 사명을 감당하며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때 영광의 면류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아름다운 복음이 유언으로 증거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목요일 성일이 학교에 Assistant Teacher로 갔다가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 Kindergarden이니까요, 뭐 크게 가르치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날은 New Year's Resolution을 그림으로 만들고 쓰는 것이 project였고 저는 5-6명의 아이들을 그것을 만들 수 있도록 도우면 됐습니다. 성일이는 후다닥~ 급하게 하더니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구요, 성일이 옆에 Jane이라는 인형처럼 예쁜 아이가 있더군요. 엄마에게 야단맞는 그림을 그려 놓고 이렇게 신년 결심을 써놨습니다.
"Stop Sucking my thumb!” 엄마가 뭐하고 있느냐고 했더니 손가락 빨리 말라고 야단친다고 하더군요. 엄마와 아이가 세운 재미있는 1년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새해 결심을 만드셨나요? 하나님이 시간을 흐림을 규칙성있게 만드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어떤 목적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시간의 마디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결심과 결단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두 아들의 엄마요, 한 남편의 아내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그저 주어지는 시간을 그럭저럭 살고 있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삶의 모습이 보이십니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주님께 맡긴 그 다음의 계획을 자랑하는 바울의 고백을 들리십니까? 아직도 최선의 삶을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인정하십니까? 성도에게 허락된 가장 아름다운 복은 ‘죽음 이후에 허락된 아름다운 스케줄, 우리 주님의 마음에 성도를 위해 만든 계획’입니다. 그 계획을 바라보며 우리의 인생,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잘 계획되고 잘 준비되어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제물로 드려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끝 날까지 계획된 삶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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