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2.
* 본 문 ; 로마서 15장 30-33절 말씀
* 제 목 : 함께 가는 길 - 3. 나를 위해 기도하라!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을 올라가십니다. 앞으로 있을 모든 일을 알고 계셨을 주님, 그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장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으셨던 것 같습니다. 동산 한 편에 제자들을 두고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좀 있으면 제자 중 한 사람이 노예들이 팔리는 값으로 스승인 예수님을 넘기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올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겠다고 큰소리쳤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칠 것입니다. 외롭고도 힘든 길,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그 길을 예수님 혼자 걷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땀과 피와 눈물을 쏟으시며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의 마음과 삶에 온전히 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이 때 예수님은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 26:38)라고 했습니다. 37절에는 “고민하고 슬퍼하사”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마음에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이었을까요? 십자가 위에서 당하실 고통일까요? 모든 사람들로부터 받는 조롱과 수치일까요? 지난 3년간 그들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였건만 어떤 자는 배신하고 어떤 자는 부인하고 어떤 자는 돌아서는 제자들의 비참한 모습일까요? 아니면 외로움일까요? 과연 예수님의 마음을 죽기까지 괴롭게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게 여러분이 물으셔도 무엇이라 답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 예수님께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하십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다음 구절에서 쉽게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 26:40-41) 이 말씀에는 제자들이 깨어서 했어야 할 일, 예수님이 그들에게 기대하셨던 일이 무엇인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예, 바로 기도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게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토록 죽기까지 괴로웠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대하셨던 한 가지, 예수님께서 필요로 하셨던 한 가지는 바로 ’예수님을 위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1. 나를 위해 기도하라.
생각해 봅시다. 과연 예수님은 제자들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 제자들이 기도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될까요? 아니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님의 선택이 달라지는 것일까요? 제자들의 무성의와 게으름, 혹은 영적인 무지함은 예수님이 선택하신 길을 걸어가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데 어떤 변화도 주지 않습니다. 기도했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기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십자기 지는 일을 포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기도와 관계 없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이고, 십자가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로마서 15장 본문에서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자신의 사역을 위해 자신과 함께 기도하자고 권면합니다.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로마교회 성도들, 아니 한번도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던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과연 바울이 영적으로 의지할만한 무엇인가가 있었을까요? 그런데 왜 바울은 그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는 것일까요?
2. 기도의 이유
저는 여기서 우리가 믿는 신앙의 중요한 본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이 그랬고,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영적인 강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다 그 어느 부분에서도 영적인 교만 혹은 자기 만족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묘사하고 있고, 바울 또한 심각하게 로마 교회의 기도가 필요하고 그들이 그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제자들과 로마 교회 성도들의 기도의 도움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중에 영적으로 완전한 성도가 있을까요? 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니 나는 삶의 어느 부분에도, 신앙의 어느 한 부분에도 조금의 결핍도 없이, 조금의 연약함도 없이 늘 강하고 담대하게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가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다른 성도의 기도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약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는 이유,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깨어 있어서 자신을 위해 기도할 것을 부탁하시는 이유,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것은 스스로 강자로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마음입니다. 이웃의 필요를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고 바울이 그러하고 우리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서로가 성숙한 것처럼 보이기를 좋아합니다. 강자로 보이기를 좋아합니다. “혹시 무슨 제가 기도해 드릴 것이 있나요? 저를 위해 기도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오늘 본문에서, 그리고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님과 바울은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원칙 하나,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연약하며 모든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기도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단순히 나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입으로 중얼중얼 말을 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바울의 기도의 요청은 나의 삶과 눈물과 고통과 헌신에 동참해달라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기도할 때 나와 함께 내 삶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눈물과 땀과 피를 쏟으며 기도할 수 있는 성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바울의 사역을 위해 눈물을 쏟으며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성도가 바울의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나의 연약함의 자리에 너의 사랑과 헌신이 함께 해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가자는 권면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에 동참하지 못했던 제자들이 십자가를 함께 질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기도에 동참하지 못하면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연약함에 대해 아픔을 느끼며 눈물로 서로를 위하는 기도를 드릴 때 우리가 서로의 삶에 대해 동참하고 헌신하는 교회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삶이 있어야 기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기도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3가지 기도 제목으로 부탁하고 있습니다.
1) 유대주의자들의 위험에서 안전하게 사역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2) 예루살렘 교회가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한다.
3) 로마 교회와의 영적 평안 가운데 교제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저는 지난 주에 포도나무와 책나무, 목장에서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모임에서 다 기도 제목을 나누었습니다. 여러분을 비판하거나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변화와 성장이 필요함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넉넉히 하고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제목을 점검해 보십시오. 내 가족, 내 삶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편함이나 어려움, 성취해야 할 목표들이 대부분 우리들의 기도의 제목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것 또한 우리의 연약함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와 성장을 원하십니다. 그것은 마음의 변화와 삶의 성장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기도의 제목의 변화와 성장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의 제목을 유심히 보십시오. 예수님의 기도의 제목을 보십시오. 우리들의 삶에 있는 염려와 걱정, 두려움과 근심이 있습니까? 내 삶에 이루고 싶은 성공의 여부가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모든 기도의 제목,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모든 기도의 제목은 사명에 관한 것입니다. 그 기도는 오히려 기도를 부탁했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로마 교회에 기도를 부탁하는 사도 바울의 삶은 로마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시는 예수님의 삶은 제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기도의 제목이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삶이 있어야 기도가 있습니다.” 뭐라구요? 삶이 있어야 기도가 있다고 했습니다. 참된 기도는 우리의 소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기도가 매일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기만 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삶에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삶이 건강하지 않으면 기도가 건강할 수 없습니다.
4. 거절되는 소원도 아름답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기도를 통해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바울의 기도는 응답될까요? 사도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이 끝날 무렵 로마서를 기록했고, 이제 곧 예루살렘으로 복음을 들고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의 제목은 무엇이었습니까? 앞으로 있을 사역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주의자들이 방해하지 않도록,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예루살렘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로마로 가서 성도들과 사랑과 평화의 교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자, 이 기도는 응답되었을까요? 저는 사도 바울의 이 마지막 기도의 제목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평생 세계를 누비며 복음을 전했던 노종이 이제 그 마지막 사역을 계획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롬 15:32)
바울의 소원은 이뤄졌을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 소원이 응답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부탁했을까요? 역시 아닙니다. 우리의 소원과 살아가는 삶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소원은 교회의 모든 성도들과 평안하게, 행복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선교를 중단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고난을 당할 줄 알면서도 원수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갑니다. 핍박을 당하고 배척을 당합니다. 왜 바울은 소원이 있는 곳에서 살지 않고 고난과 역경의 땅으로 가는 것입니까? 왜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고 고난이 기다리는 땅으로 가는 것입니까?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소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원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 성도가 아니라 소명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 앞에서 거절될 수 있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삶, 내 모든 필요가 채워지는 삶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스스로 만족하고 교만하여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도 바울을 통해서 소원이 아닌 소명으로 사는 삶을 보여주십니다. 그 소원이 거절되고 있지만 하나님께 받은 거룩한 소명이 이루어지는 삶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거절되는 소원, 성취되는 소명’ 바울의 삶은 이 두 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저는 지는 주간 생명의 삶을 통해 로마서를 묵상하면서 바울은 참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1월 초에 나누었던 말씀 중에서 변혜정씨 기억나시나요?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고 있지만 죽음 이후의 할 일까지 계획하고 있었던 어머니 말입니다. 로마서 15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그렇습니다. 그는 참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연로하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계획이 창창합니다. 때로 그 계획이 막히고 부딪히고 무너진다 해도 그는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삶을 통해 계속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함께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연약하니까, 혼자서는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결국 모든 교회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니까 함께 기도하고 사역에 동참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기도가 그러하고 바울이 로마 교회에 대해 부탁하는 기도가 그러하고 오늘 우리가 서로에 대해 부탁하는 기도가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함께 일하기로 결단해야 하는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인사는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저도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로 해볼까요?
깨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기도하라! 우리 주님의 간곡한 말씀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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