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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29. 요셉 프로젝트 - 1. 나는 누구인가? 이응도 목사 201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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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29.

* 본 문 : 창세기 40장 12-15절
* 제 목 : 요셉 프로젝트 1. 나는 누구인가?

본 회퍼라는 목사요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1906년 독일 브레슬라우의 유복하고 전통 있는 가문에서 팔남매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피아노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어려서부터 형제들과 자주 협연을 했습니다. 1923년 17세로 튀빙겐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21세에는 베를린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4세에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한 천재 신학자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독일 교회는 히틀러의 하수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국민의 90%가 기독교인이었지만 교회는 히틀러의 나찌즘을 공식적으로 지지할만큼 영적으로 어두웠습니다. 본 회퍼는 잘못된 선택을 한 독일교회, 그리고 교회를 위협하고 굴복시킨 히틀러와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가 히틀러에 대해 했던 말은 아직도 유명합니다. “미친 운전수가 광장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차에 상하고 있습니다. 목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를 빨리 차에서 끌어내리는 일입니다.” 그는 히틀러 암살단에 합류합니다. 1943년 체포되었고, 18개월의 수감 생활을 했고, 히틀러가 항복을 선언하고 자살하기 15일 전인 1945년 4월9일,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3명의 가족, 그리고 나치에 저항한 5000명이 함께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그는 오늘날 나치즘에 굴복했던 독일 교회에 생명을 불어넣은 목회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견고한 신념과 탁월한 지식으로 흔들리지 않았던 신학자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을 만일 가까이에서 만난다면... 도대체 이런 사람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1. “나는 누구인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우리는 한 청년을 만납니다. 그는 아직 20대의 청년입니다. 17세에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 와서 감옥살이까지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를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받는 사람이었다고 소개하지만 그의 현실은 감옥이요, 그는 신분은 죄수입니다. 그를 만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밝고 환한 모습일까요? 눈물과 분노에 찌든 모습일까요?

요셉의 마음을 잘 표현한 시가 있습니다. 소개한 본 회퍼가 감옥에 있을 때 지은 시입니다. 이 시를 통해서 그들의 얼굴과 마음,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상상해 봅시다.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명랑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간수들과 대화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사근사근하고 밝은지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불행한 나날을 견디는 내 모습이
어찌나 한결같고 벙글거리고 당당한지
늘 승리하는 사람 같다는데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목 졸린 사람처럼 숨을 쉬려고 버둥거리는 나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방자함과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나
좋은 일을 학수고대하며 서성거리는 나
멀리 있는 벗의 신변을 무력하게 걱정하는 나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인데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인가?
둘 다인가?
사람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자신 앞에선 천박하게 우는소리 잘하는 겁쟁이인가?
내 속에 남아있는 것은
이미 거둔 승리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패잔병 같은가?
나는 누구인가?

날카로운 질문이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

본 회퍼는 감옥 안에서도 당당하고 의연했습니다. 어떤 시험과 고통도 그의 확고한 믿음을 흔들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바라보며 존경하고 칭찬합니다. 갇혀 있지만 자유로운 사람, 억압당하지만 권위 있는 사람, 핍박 당하지만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이 시를 보십시오. 그의 내면은 불안합니다. 떨고 있습니다. 갈등합니다. 고민합니다. 그는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 /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 이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인가? / 둘 다인가? / 사람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 자신 앞에선 천박하게 우는소리 잘하는 겁쟁이인가?” 여러분! 어떤 모습이 본 회퍼의 참된 모습일까요? 어떤 얼굴이 본회퍼의 참된 얼굴일까요?

2. 나는 그 무엇도 아니다.

여러분은 혹시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설명합니다. 나는 누구의 아버지이고, 나는 누구의 친구입니다. 나와 이런 사람과 이런 그런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을 통해서 자신을 설명합니다. 내가 이룬 성취, 내가 이룬 부, 내가 얻은 명예와 자랑이 나를 설명하는 말들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서 자신을 설명하려 합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데, 그 일이 나를 설명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를 통해서 나를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평가와 칭찬이 너무 중요합니다. 인기를 잃으면 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와 생각, 관념이 자신을 설명한다고 말합니다. 다소 철학적이겠지만 내가 생각하고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느낌 혹은 감성이 중요합니다. 내가 즐거워야 하고, 좋아해야 합니다. 즐길 수 있어야 하고, 느낄 수 있어야 존재감이 든다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입니까? 만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나라면 나는 사람들의 생각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나를 생각해주지 않고 평가해주지 않고 좋아해주지 않으면 내 삶의 의미는 없어지는 것일까요? 내가 하는 일이 나라면 일의 성공과 실패가 내 삶을 결정합니다. 늘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을 실패하면 삶에서 실패감을 맛봅니다. 내가 가진 관계를 통해서 나를 설명하려 한다면, 나는 결국 다른 사람에 의존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직업이 나라면 나는 직업을 잃게 되는 날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내 생각이 나라면 때때로 잘못된 생각을 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이겠습니까? 내가 느끼고 즐거워해야 존재한다면, 슬픔 많고 고통 많은 이 세상에서 아마도 어느새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감옥에서 본 회퍼가 고민했고, 그리고 요셉이 고민했을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나를 사랑해주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존경해주는데, 과연 그것이 나란 말인가? 나는 그들의 평가와 관계없이 불안정한 내면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헤어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지나온 과거에 대한 분노로 출렁거리고 있는데,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그들은 고민하면서 자신을 찾으려고, 고난과 고통의 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의 현실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지키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3. 회복과 부흥

성도의 삶의 참된 ‘회복과 부흥’은 바로 이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직업도 내가 아니요, 사람들의 평가도 내가 아니요, 업적이나 재산도 내가 아닙니다. “그 무엇도 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부터 나를 설명하고 무엇으로 나를 정의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처절한 고민과 분명한 대답, 이것이 성도와 교회의 참된 의미로서의 삶의 회복과 영적인 부흥의 핵심인 것입니다.

본 회퍼는 그의 시 마지막에 우리들에게 힌트를 하나 주고 있습니다. 그가 그 감옥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유일한 열쇠, 그것은 사람들의 칭찬이나 평가, 존경이나 인정함이 아닌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시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 당신은 아시오니 /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 오, 하나님!” 그는 자신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잘 알 수 없지만, 나를 지으시고 나를 구속하시며 나에게 삶의 이유와 목적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안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 든든하게 뿌리 내린 나무입니다. 본 회퍼는 내가 느끼고, 다른 사람이 인정하고,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은 거짓될 수도 있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다시 발견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알고 있는 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나 - 이전의 모든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 안에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타나는 나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갈라디아서 2:20에서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본 회퍼의 삶의 참된 회복과 부흥은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바울의 삶의 참된 회복과 부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 내가 아는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내 삶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회복과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요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참 오랜 시간 고난을 견뎌왔습니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 또한 그와 함께 하셨다고 증거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창 39:2)라고 했고,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창 39:21)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꿈을 꾸는 은혜 뿐만 아니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지혜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로 오랜 고난을 신실한 모습으로 견뎌왔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3)라고 했으며,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창 39:22-23)라고 했습니다.

4.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다.

그렇다면 그는 늘 평안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애굽 바로왕의 술을 맡았던 관원이 꿈을 꾸자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꿈을 해석합니다. 그는 곧 석방되어 제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요셉은 그에게 자신에 대해 부탁합니다. 그가 전하는 것은 두가지 메시지입니다. 첫째는 “나는 이런 벌을 받을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바로에게 청하여 나를 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아주 작은 희망에도 무너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난과 시험 가운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의지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여 자유를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창 40:23) 그리고 그는 2년이라는 시간을 절망 속에 보냅니다. 요셉이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먼저 그는 사람이 희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처절하게,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고난과 시험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견뎌왔지만 눈 앞에 보이는 작은 희망에 흔들린 자신을 바라보며, 그 희망이 얼마나 가치없이 버려지는지를 경험하면서 그는 다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아무리 인정받고 사랑 받아도 하나님이 아니면 그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어두운 감옥에서 처절히 경하고 있고, 비로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이루실 뜻을 바라보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주신이 누구인지를 비로소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그의 회복과 부흥이 시작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마음과 귀에 정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여러분의 삶을 흔들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흔들리는 것은 다른 사람이 흔들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이번 요셉 프로젝트 기간에 여러분은 이 말씀을 암송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귀에, 마음에 이 말씀으로 못이 박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세상은 우리에 대하여 악을 행하지만 우리의 삶은 무너지고 부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오늘을 빚으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바꾸신 사람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구원의 도구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하나님이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수군대는 내가 내가 아닙니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내가 내가 아닙니다. 세상이 아무리 나를 칭찬하고 좋아한다, 존경한다, 사랑한다, 최고다..... 해도 그 모든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 하나님께 뿌리내린 새 사람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의 삶의 회복과 부흥이 출발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의 삶에 요셉과 같은 회복과 부흥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이 고백했고, 본 회퍼가 외쳤던 그 놀라운 회복과 부흥이 우리들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늘 새롭게 시작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날카로운 질문이 나를 조롱합니다. / 내가 누구인지 / 당신은 아시오니 /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 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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