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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0. 선교를 위한 기도 이응도 목사 201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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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0.

* 본 문 : 빌립보서 1장 3-11절 말씀

* 제 목 : 선교를 위한 기도


여러분이 잘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사는 곳은 Arrowhead라는 동네에 있습니다. 저희 집 주소는 1500 Seneca Run 으로 시작합니다. 그 외에도 저희 Town 안에는 Iroquois , Cherokee, Seminoles, Cheppewa 등의 길 이름이 있습니다. Susquehana Road라는 길 옆에 있습니다. 공통점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저도 이번에 단기 선교를 준비하면서 관심이 생겨서 알아봤습니다. 모두 인디언 부족의 이름입니다. Arrowhead는 화살촉을 말합니다. 제가 자주 가는 Robins Park이라는 작은 공원에 가면 인디언들이 사용하던 천막이 있고 그 옆에 장승이 서 있습니다. 조금 전에 소개한 인디언들 중에서 Iroquois , Cherokee 족은 지금도 토속 종교를 강하게 믿고 있는데, 그들이 믿는 신앙의 핵심은 장승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곳에 인디언들이 많이 살았나보다 생각은 했지만 인디언들의 흔적이 그렇게 많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렇게 흐린 흔적만, 이름만 남았을까요....?


오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자료를 찾다 보니 ‘뽀비에누’라는 인디언 이름을 사용하는 한국 선교사님을 발견했습니다. 자료를 나눠드립니다. 그 선교사님은 인디언들의 현재의 피폐한 삶에 대해 가슴 아파하면서 “하나님께 묻고 또 묻는다”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넓고 아름다운 땅의 주인이었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그들이 지금은 보호구역이라는 이름의 가장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 갇혀 살면서 알콜과 마약과 도박에 찌들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절규하듯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들의 삶을 무너뜨린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청교도와 함께 이 땅에 상륙한 그리스도의 복음 - 나는 과연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내가 전하는 복음과 그들의 조상의 생명과 땅을 빼앗았던 자들의 복음은 어떻게 다릅니까? 그들에게 어떻게 새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1. Indian Reservation


오늘날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Indian Reservation일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디언 보호구역’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누구를 보호하는 것일까요? 이 제목을 가진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Raiders라는 그룹이 1971년 불러서 빅 히트를 했습니다. 잠시 함께 감상해보실까요?


(http://www.youtube.com/watch?v=kVwEwdIIZD0 / 09초부터 볼 수 있게 하고, 3:00 분이 지나면 점점 작아지게)


Indian Reservation


They took the whole Cherokee nation 그들은 체로키 땅을 다 빼앗았어요.

Put us on this reservation 우리를 보호구역으로 밀어 넣었죠

Took away our ways of life 도끼와 활과 칼을 들고 평원을 달리던

The tomahawk and the bow and knife 우리들의 삶을 지워버렸어요.

Took away our native tongue 우리의 말을 빼앗고

And taught their English to our young 아이들에게 그들의 말을 가르쳤어요.

And all the beads we made by hand 우리 손으로 만들었던 모든 장신구들은

Are nowadays made in Japan 이제 일본에서 만들어서 수입하고 있어요.

Cherokee people, Cherokee tribe 체로키 사람들이여, 체로키 부족들이여

So proud to live, so proud to die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여!.


They took the whole Indian nation 그들은 인디언들을 다 몰아냈어요

Lock us on this reservation 인디언 보호구역에 가둬놓았죠.

Though I wear a shirt and tie 우리가 아무리 양복을 입는다 해도

I`m still part redman deep inside 우리는 뼛속 깊은 인디언

Cherokee people, Cherokee tribe 체로키 사람들이여, 체로키 부족이여

So proud to live, so proud to die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여


But maybe someday when they learn 그러나 아마도 언젠가 그들은 알게 될 거예요.

Cherokee nation will return 체로키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Will return, will return, will return, will return 체로키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저는 처음 이 노래의 가사를 접했을 때 “So proud to live, so proud to die”라는 말의 뜻을 “자랑스럽게 살 수 있고, 자랑스럽게 죽을 수 있는”으로 해석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살수도 죽을 수도 없는 비참한 모습”을 말하는 것이더군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던 이 노래가 말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디언들의 비극적인 역사입니다.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던 백인들의 영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 체로키라는 그들의 이름으로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안타까운 그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만났던 ‘뽀비에누’라는 한국 선교사는 그들의 현실과 자신의 선교의 현장을 보면서 “하나님께 묻고 또 묻노니”라는 기도의 제목을 쓴 것입니다.


2. 한국 교회, 인디언 선교를 발견하다.


지난 번 수련회에서 황성기 선교사님이 오셔서 나바호 인디언과 선교 현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주셨습니다. 그 중 하나는 지금 인디언 선교에 대해 가장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선교할 수 있는 교회는 바로 한국 교회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비슷하게 생겼으니까요.... 우리는 역사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까요.... 우리는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minority니까요....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어쩌면 북미 인디언 선교는 북미 지역에 살아가는 한국 교회가 감당해야하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교인지 모릅니다. 그들을 선교하기에 좋은 무기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같은 색깔의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선교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선교의 역사를 돌아보면, 선교에서 우리가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문화제국주의적인 선교’입니다. 황선교사님도 지적했듯이 수많은 미국 선교사들이 인디언 선교를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해왔습니다. 그들의 인디언 선교, 왜 안되는 것일까요? 단순히 그들이 피부가 다르고 역사적인 정복자로서의 역사적인 부채가 있었기 때문일까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Indian Reservation’이라는 노래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미국 교회가 인디언 선교에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인디언들을 그들처럼 바꿔놓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은 인디언들의 언어를 빼앗았고, 땅을 빼앗았고, 나라를 빼앗았습니다.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미개한 것으로 여기고 부정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보다 나은 것, 보다 화려한 것, 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하는 서양의 문화를 인디언들에게 옷 입혔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Though I wear a shirt and tie, I`m still part redman deep inside" 아무리 서양의 옷을 입혀도, 그들은 여전히 인디언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인디언 선교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좋은 선교지역입니다. 우리에게 그들에 대한 장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미 서구화된 한국인들의 삶과 문화를 전하는 것이 선교가 아니라는 사실, 우리가 전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지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복자들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 그들에게 복음은 그들을 살리는 것이며, 복음과 서양의 문화와 문명은 다른 것이며, 복음만이 죽어가는 그들을 다시 살리는 것임을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의 선교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단기 선교를 준비하면서 어떤 선교,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저는 여러분께 한 선교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입니다.


브레이너드는 인디언 선교에 생애를 바친 미국 식민지 시대의 선교사입니다. 24세에 선교사로 헌신하고, 불꽃같은 헌신의 삶을 살다가, 29세라는 아주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했던 스코틀랜드 전도협회의 요청에 따라 모든 활동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고, 그것을 요나단 에드워드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오늘날 선교의 가장 모범적인 교본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선교했던 지역은 우리가 살고 있는 뉴저지, 펜실베니아, 그리고 델라웨어 등 미국 북동부였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도로명인 Susquehana족을 만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기록도 있습니다. 그의 일기에서 그는 “불쌍한 영혼들과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의 확장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그가 인디언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복음의 초점은 분명했습니다. “인간의 죄를 위하여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만을 전했고, 그 사랑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일기를 보면 그는 당시 백인들의 정복의 대상이었던 인디언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인디언의 인권과 복지를 위하여 인디언의 입장에 섰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인디언들과 같은 조건 속에 살아가면서 그들을 살리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경계했던 인디언들이 스스로 인디언이 된 블레이너드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하고 그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20대 초반에 얻었던 폐결핵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디언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점점 열악한 환경으로 쫓겨나던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는 중에 병세가 악화됩니다. 결국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요즘 저는 인디언을 주제로 한 영화를 하나씩 보고 있는데요, 그 모든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인디언과의 가슴 깊은 교제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모두 인디언들을 백인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먼저 인디언이 됩니다. 그들의 문화와 습관 속에 들어갑니다. 인디언들이 그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스스로 먼저 인디언이 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인디언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블레이너드의 선교가 이후 많은 선교사들의 본이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스스로 선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디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복지와 인권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들의 일부가 되어 그들을 살리는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그들처럼 되었고, 그들을 사랑했기에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심장으로 예수님처럼


그러나 이러한 선교의 방법은 블레이너드 선교사가 최초로 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이 일을 먼저했을까요? 예,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먼저 우리와 같이 되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는 복음을 저 멀리 하늘에서 선포하시고, 창조주요 심판자로서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중 한 사람으로, 우리와 같은 성정과 같은 연약함과 같은 눈물과 가슴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를 더욱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신 방법이요, 예수님의 선교 전략의 핵심입니다.


이 선교 전략을 누가 실천했을까요? 예,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1세기 모든 선교지에 대해 동일한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십자가의 사랑과 함께 전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에 대한 그의 절절한 사랑의 표현을 보십시오. 오늘 누가 자신이 섬기는 교회를 이렇게 사랑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선교지인 빌립보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늘 그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위한 헌신, 그것은 바울의 생명보다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을 유대인처럼 만드는 것이 그의 선교의 목적이 아니라, 빌립보 사람들을 예수 믿는 사람들로 만드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처음으로 단기 선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지표입니다. 참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 일을 해야 합니까?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미국 땅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서서 우리가 할 말은 무엇이고,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인디언의 역사를 좀 더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나바호족에게 다가서기 위해서 나바호의 역사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야겠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같이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절망과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는 박탈감과 이방인들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이해할 수는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다 낮고 낮은 마음을 가져야하겠습니다. 우리는 2400 마일, 먼 길을 갑니다. 이 먼 여정을 한걸음 한걸음 달려갈 때마다 우리는 한걸음씩 더 낮아지면 좋겠습니다. 한 걸음씩 예수님의 심장,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서 함께 눈물 흘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절망의 땅, 증오의 땅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눈물과 고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몇 가지 기도의 제목을 우리 교회에 대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이 기도의 제목으로 기도하고 싶습니다. 먼저 기도하고 싶은 것은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았던 인디언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빼앗긴 그들에게 우리는 가장 귀한 것으로 되갚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눈물과 말씀을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눈물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 약자의 절망과 강자의 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과 눈물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연약하여 빼앗긴 자도 하나님의 자녀요, 강하여 빼앗은 자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모두를 위해 눈물 흘리시는 분입니다. 세 번째 기도의 제목은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선교하겠다고 한 걸음 내딛는 우리들에게 그들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성령님,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도 감동하셔서 우리에게 주님의 심장을 주시고 주님의 마음을 주시고 주님의 사랑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비로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함께 세가지 기도 제목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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