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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2. 신약 1독 40일 - 4. 말씀으로 나를 압니다. 이응도 목사 201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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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2. 신약 1 40 4주 차

 

l  본 문 : 에베소서 2:1-7

l  제 목 : 4. 말씀으로 나를 압니다.

 

어릴 적 부르던 동요 중에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노래 기억이 나십니까?  나는 이응도라고 대답하면 그 이름 아름답구나라고 칭찬하는 노래였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알기 위해서는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1.     성경이 선언하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성경이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2 1절에서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 대해 하신 일을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에 대해 죽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생명은 얻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과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2:2-3)  2절에서 바울은 그때에…’라는 말로 우리의 과거를 기술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이 아닌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탄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삶의 본질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즉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됩니다. 

 

바울은 우리의 현재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2:4-5)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이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은혜로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무엇일까요?( 2:6)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키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찬양하며 예배하며 기쁨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선언을 하시고, 우리의 모든 과거를 용서하고 용납하시며 우리의 오늘을 인도하시며 우리의 내일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2:7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2:7)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초대교회 중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던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어떻게 일하시고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참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해서 이렇게 너희들의 과거를 오늘과 내일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그저 감격과 기쁨으로 그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에베소 교회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들의 현실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 대해 구원받은 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새생명의 사람으로 선언하시고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주님이 나에 대해서 선언하신 대로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며 주님 오실 때까지 사랑과 자비하심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나는 주님의 선언하신 오늘의 삶, 죄와 허물에 대하여 죽고 새생명으로 풍성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나는 영원한 미래에 준비된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의 나의 삶이 나를 향하신 주님의 목적에 맞게 살고 있습니까?  나를 통하여 이 세상에 주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증거하는 일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까? 

 

안타까운 것은 내가 우리 주님이 선언하신 나의 현재의 삶의 가치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는 세상의 풍속을 좇는 불순종하는 아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나는 나의 욕심을 따라 삽니다.  오히려 나는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 나라의 백성이지만, 나는 세상의 질서에 내 삶의 더 많은 영역을 할애하며 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22에서 바울이 지적하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사람" 습성이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아직도 현저하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의 문제제기가 있습니다.

 

3.     성경이 나를 압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나 자신이 싫어질 때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실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때로 성도들에게도 실망합니다.  기대했던 사람이 변화되지 않고, 시간과 정성을 쏟은 사람이 성장하지 않고, 믿었던 사람이 뜻밖의 행동을 할 때 아과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복음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기도 합니다.  나의 연약함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연약함 때문에 근본적인 복음에까지 회의를 가지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1)     나의 악함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어느 날 말씀을 읽는 중에 정말 놀라운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죄와 악함에 대해 크게 낙심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상한 가슴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슬퍼합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백성이 이렇게 범죄하고 타락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17:9)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렘17:10)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거짓됨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악함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선하고 의로와서 나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와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의 거짓됨과 부패함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하신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아들을 보내실 정도의 강력한 사랑이 아니면 우리에게 깊이 뿌리내린 죄와 악의 습성을 뽑아낼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분이 은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악한 줄을 알고 계셨구나…. 마음이 얼마나 악한 생각과 거짓된 것으로 들끓는지를 아시는구나… 그런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셨구나….  제가 자신에 대해 용기를 내어야 하는 이유, 성도들에 대해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말아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를 아시는 주님, 우리를 위해 계속 일하고 계시고 희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    나의 비겁함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에 대해 품었던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도로 살아가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소원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선하고 의로운 것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악이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7:21)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함께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 그가 하나님의 법을 섬길까요?  , 아마도 믿음과 구원에 관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언제 그가 죄의 법을 섬기게 될까요?  아마도 자신의 성품이나 욕심에 관한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내 마음의 소원은 남아 있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하겠는데, 여전히 분노와 정죄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바울은 고민하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비겁한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자랑하고, 복음으로 산다고 큰소리치면서 나는 왜 나의 소원조차 극복하지 못하는가?  나는 왜 나의 성품조차 이기지 못하는가?  나는 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 죄의 법을 포기하지 않는가?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비겁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그는 자신에 대해 탄식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왜 이 말씀이 은혜가 되는가 하면, 성경이 나의 비겁함을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우리의 연약함을 책망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용납합니다.  말씀과 세상 사이를 줄다리기 하는 우리들, 복음으로 구원을 얻고 세상의 기쁨도 포기할 수 없는 우리들을 꾸짖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품으시고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3)    따라서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우리의 악함과 비겁함을 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다음 구절, 2:8을 봅시다.  너희는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옛사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더욱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알고 계십니다.

 

4)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 성경이 아는 것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의 마지막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7:24)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래서 8장에서는 그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합니다.  8:37-9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8:37-39) 

여기서 말하는 모든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모든 일입니다.  그것은 환란일 수도 있고, 시련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내면의 문제일 수 있고, 관계의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그 모든 것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고 또 계속 공급되어야 함을 성경이 알고 있습니다.  


4.    
성경에 써 있네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자꾸 제 입에 감도는 찬송이 있었습니다.  참 자주 부르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는 찬송인데, 말씀과 함께 묵상하면서 많은 은혜를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찬송가 411, 예수 사랑하심은이라는 찬송입니다.  가사를 함께 읽어 보실까요?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다 씻어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세상 사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하시고 세상 떠나 가는 날 천국 가게 하소서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저는 이 찬송이 성경이 우리들에 대한 이해를 이렇게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묵상하고 준비하면서 찬송의 의미가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1절 앞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참으로 거룩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참 연약한데 주님의 사랑은 능력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거룩한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절도 묵상해볼까요?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죄를 십자가의 은혜로 씻기신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거룩한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에도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은 나를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렇게 낮고 천한 나를 저 높은 곳에서 늘 보살펴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거룩한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 세상 사는 동안에 나를 이해하시고 품어주시고 보살펴주시고,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 나를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고 말씀을 통해 우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이해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자신에 대해 알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만물보다 연약하고 만물보다 악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어쩌면 함께 말씀을 읽는 시간을 정하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과 게으름을 보여주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말씀이 인도하는 삶을 결단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과 은혜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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