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19.신약 1독 40일- 5. 말씀이 육신이 되어야 합니다. | 이응도 목사 | 2012-08-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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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 : 누가복음 5장 1-11절 말씀 * 제 목 : 5. 말씀이 육신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책나무에서 열심히 읽고 있는 James Packer 목사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묘사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 볼 때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그 아래 사는 사람이다. 그들은 ‘진리의 글’(단 10:21)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믿고, 약속을 신뢰하며, 그 명령을 따르면서 그 말씀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은 아버지이신 성경의 하나님과 구세주이신 성경의 그리스도를 향해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어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죄를 깨닫게 하고 또한 죄사함의 확신을 주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의 양심은 루터의 양심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들은 시편의 기자들처럼 삶 전체가 그 말씀과 일치하기를 열망한다.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들을 완전하게 하사”(시 119:5, 10, 26-27, 36, 80) 기도할 때 그 약속들이 그들 앞에 있으며, 그들이 일상의 일을 열심히 행할 때 그 법도가 그들 앞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 주위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정돈하기 위해 주어졌음을 안다. 성경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의 환경을 조정하신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다. 그리스도인들은 독립적인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제시된 다양한 견해를 시험하는 시금석으로 사용하며, 성경이 찬성한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어떤 것에도 손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중 이러한 묘사에 적합한 사람은 왜 그처럼 드문 것일까? 당신의 양심에 물어보고 양심이 당신에게 대답하도록 해보라. 여러분은 James Packer목사님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에 동의하십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그 아래 사는 사람이다…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제시된 다양한 견해를 시험하는 시금석으로 사용하며, 성경이 찬성한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어떤 것에도 손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질문은 던지기를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중 이러한 묘사에 적합한 사람은 왜 그처럼 드문 것일까? 당신의 양심에 물어보고 양심이 당신에게 대답하도록 해보라.” 저는 책을 잘 읽어 오다가 이 마지막 질문에 완전히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물으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자신의 양심을 비춰보고 묻고 양심이 대답하게 하라는 이 말이 저의 양심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1. 말씀과 믿음 그 책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3가지 특성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먼저 말씀은 율법적인 특성을 가집니다.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규범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믿고 회개하고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으로 주어집니다. 아브라함과 후손에 대한 약속,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에 대한 약속, 믿는 자들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약속이 말씀 속에 있습니다. 세 번째 특성은 선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진리가 무엇인지, 생명은 무엇인지, 자신은 누구이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를 선언하십니다. 거부할 수 없고 논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말씀의 세가지 특징 앞에서 우리의 믿음은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율법으로 주어지든, 약속으로 다가오든, 혹은 하나님이 선포하시든 우리들은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은 신화에 불과하고 이야기 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반응할 때 이 말씀은 우리의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 앞에 믿음으로 반응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렘 13:10과 사 66:2는 신앙과 불신앙의 경계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말씀을 비교해서 보실까요?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렘 13: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사 66:2)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에 있습니다.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스스로를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므로 그 말씀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합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두려워합니다.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 그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2.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다. 누가복음 5:5에는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베드로의 말씀에 대한 반응을 소개합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눅 5:5) 우리는 여기서 믿음이 가지는 중요한 증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혹시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는 장면에서 약간 뜬금없다고 생각해보신 일은 없습니까?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렇게 말씀하면 갑자기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 그물과 배와 가족들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단 말입니까? 이건 좀 이상합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은 이미 갈릴리 일대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부였던 그들도 예수의 이름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 베드로에게는 좀 더 특별한 경험이 생겼습니다. 4장 38절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집으로 들어가 병을 꾸짖어 쫓아내셨고, 베드로의 장모는 일어나 수종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면서 각종 병 있는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을 갈릴리 바다에서 만나기 전에 이미 베드로는 예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형제들, 친구들과 함께 바다에 나갔습니다. 평생을 누비며 살아온 갈릴리 바다입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낙심해서 그물을 씻고 있는데 무리에 둘러싸인 예수님이 그 배에 오르셨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배를 호수로 띄우시고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베드로와 그 형제들이 그 말씀을 함께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말씀을 마치시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알기로 예수님은 목수요, 자신은 어부입니다. 이미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상식이나 지식, 성품이나 피곤함으로 봤을 때 예수님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이미 경험한 것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직접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그 마음 속에 말씀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습니다. 나의 상식이나 판단을 넘어서는 일이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그는 3단계의 반응을 보입니다. 3. 세 단계의 반응 그가 첫 번째 보이는 반응은 순종입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라고 했습니다. 그는 상식적인 반응이 아닌 영적인 반응을 했습니다. 그의 영적인 반응의 근거는 무엇이었습니까? 예, 바로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순종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동료와 형제들이 그저 놀라고 기뻐하고 있을 때, 그는 두 번째 영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주님의 임재 앞에 자신의 죄성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영성이 있는 인간에게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엎드린 그를 부르십니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게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 베드로는 예수님이 이 부르심 앞에 세 번째 영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으니라”(눅 5:11) 그가 무엇을 버려두었다고 했습니까? 모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것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좋은 예를 보여줍니다. 먼저 베드로에게 믿음은 은혜이자 선물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다가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의 집에 오셨고 복음의 능력과 증거를 보이셨고, 그의 배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삶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베드로의 마음에 믿음을 심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베드로의 믿음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보여준 영적인 반응을 우리들에게 좋은 본이 됩니다. 그는 자신에게 허락된 믿음이 삶을 움직여 역사하도록 순종할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장모의 질병을 쫓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말씀의 결과가 능력으로 나타났을 때 그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느낍니다. 엎드려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셨을 때 그는 지체 없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릅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의 부르심이 베드로 안에 믿음을 심었다면 베드로는 그 믿음이 인도하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4. 가장 가치 있는 인생 ? 말씀이 육신이 되는 인생 성도 여러분! 어부로 살아가던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게 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주님이 그에게 믿음을 허락하셨기 때문이고, 그가 그 믿음을 사용해서 그의 삶을 움직였기 때문이고, 결국 그가 주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내려 놓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여전히 자신을 붙들기를 원했다면 그는 유능한 어부가 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그의 삶에 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부자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치 있는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자신이 생산한 부로 다른 사람을 돕는 선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세우는 일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자신에게 허락된 믿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믿음을 사용하여 삶을 순종시키는 결단을 했기 때문에 그의 삶에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감당할 수 없는 가치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장 가치 있는 인생, 어떤 인생일까요? 요한복음 1장은 우리 인생 가운데 가장 가치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일,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 때문에 인류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따르는 삶을 결단하고 살아갈 때 그저 한 때를 살다가 사라져가는 먼지와도 같은 인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우리를 통해 새생명이 증거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가장 가치 있는 인생, 우리의 연약한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 가운데 증거되는 놀라운 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육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그 가치를 세상에 나타냅니다. 우리가 말씀이 세상으로 흐르는 깊은 강이 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강물을 막고 선 댐이 되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을 사용하는가? 우리의 기질이나 성품, 혹은 상식을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말씀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육신이 되어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등불이 되고, 때로는 길이 되며, 때로는 능력이 되어 우리의 삶을 인도하게 됩니다. 세상에 하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허락하신 말씀에 대하여 믿음으로 반응하고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놀라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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