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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21. 일꾼보다 예배자 - 6. “이와 같은 때에….” 이응도 목사 201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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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문 : 잠언 30 7-9절 말씀

   * 제 목 : 일꾼보다 예배자 - 6. “이와 같은 때에….”

 

지난 주, 한국에 있는 갈릴리 마을에서는갈말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갈릴리 마을은 작년에 우리 교회를 방문해서 간증 집회를 했던 최용덕 간사님이 만들고 꾸려가는 인터넷 공동체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최간사님과 함께 찬양 사역을 한 전문 찬양 사역자들이 많이 있고, 최간사님도 좋은 찬양 사역자이기 때문에 갈릴리 마을 음악회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음악회를 마치고 갈릴리 마을 홈페이지에 동영상이 올라왔습니다.  기대감에 영상을 열었습니다.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있는 최용덕 간사님의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가사의 첫 시작은 의미심장합니다.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의 각자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우리가 고난 중에 있든지, 병환 중에 있든지, 장애의 몸을 입고 있든지, 실패한 상황이든지, 오랫동안 기도하던 것들이 오히려 반대로 응답되든지…. 그때에 우리는 이 노래를 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함께 노래합시다.”

 

그리고 모든 갈릴릴 마을 식구들이 노래합니다.

 

이와 같은 때에 난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에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이와 같은 때에 난 기도하네 조용히 기도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에 난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주님 감사해요 감사해요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동영상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런 노래, 이런 기도, 이런 감사를 드린 적이 참 오래되었습니다.  날마다 참 바쁘게 살았습니다. 사람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내가 해치워야 할 일로 여겼습니다.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예배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과정으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많이 지치고 많이 피곤했습니다.  찬양과 감사가 없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지치고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을 돕는다고 말하면서 감사도 없고 사랑도 없이 그저 일의 대상으로만 대했다는 자책이 밀려왔습니다.

 

1.     아굴의 두 가지 소원

 

잠언은 일반적으로 솔로몬이 기록한 성경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존재하던 삶과 신앙의 지혜를 솔로몬이 자신에게 허락된 지혜와 함께 기록했고, 히스기야의 시대에 편집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30장은 아굴이라는 사람의 지혜가, 31장에는 르무엘이라는 왕이 그 어머니에게 듣고 배운 지혜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아굴이라는 사람의 잠언입니다.  그는 2절과 3절에서 자신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짐승과도 같고, 지혜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의 지혜가 성경에 소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삶에 기준이 되고 중심이 되는 두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소원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갔고, 아무 것도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뛰어난 것 없지만 하나님은 그의 소원과 생각을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뛰어난 지혜로 인정하셔서 성경으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의 두 가지 소원은 무엇일까요?  8절을 읽읍시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30:8)  그의 첫번째 소원은 헛된 생각과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헛된 욕심과 잘못된 생각으로 사는 것은 마치 잘못 그려진 지도를 들고 길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입력이 잘못된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운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15)라고 했습니다.  아굴이 헛된 것과 거짓말을 자신의 삶에서 멀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 결과가 죄와 사망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 가난하게도, 너무 부하게도 만들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가난해서 도둑질하거나 비겁한 삶을 살아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삶을 살 수 없고, 너무 부하게 살아서 하나님을 모른다, 혹은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말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2.     소원의 의미

 

여러분은 이 두 가지 소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두 소원이 이뤄지면 행복하고 의미있게 살 수 있을까요?  헛된 것과 거짓이 없는 삶을 살고, 일용할 양식을 먹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일까요?  이것이 정말 성경에서 소개할만한 참된 지혜일 수 있을까요? 

 

이 두 가지 소원이 가지는 참된 의미는 이 소원에 숨겨진 한 가지 소원에 있습니다.  아굴은 왜 헛된 생각과 거짓말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을까요?  왜 그는 가난도 부도 아닌 일용할 양식을 원했을까요? 

 

그의 소원이 사람이 가져야 할 참된 지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헛된 생각을 멀리하고 그가 품어야 할 생각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요, 거짓말을 멀리하고 그가 해야 할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난도 부도 아닌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찬양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의 소원은 하나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을 이렇게 풀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현실에 얽매여서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굴의 소원과 기도가 참된 지혜인 것은, 그가 비록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면 마치 짐승처럼 어리석고 연약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의 마음의 중심과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예배하는 삶을 소원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각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그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소원

 

, 그러면 우리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통일입니까?  부자가 되는 것입니까?  어떤 생각, 어떤 소원이 우리의 중심에 있어서 우리 인생의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에게 아굴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과 같이 현실의 상황에 얽매여서 예배하는 마음,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마음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아굴은 현실적인 삶의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습니다.  사람은 너무 쉽게 그렇게 됩니다.  우리는 오감(五感)에 집중합니다.  오죽하면 광고를 하면서 오감만족(五感滿足)’이라는 말을 사용할까요?  우리는 감각에 만족할 수 없을 때 괴로워하고, 만족했을 때 교만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고통과 시련에도 민감합니다.  작은 어려움에도 원망하고 작은 시련에도 절망합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우리의 반응을 결정합니다.  아굴은 바로 이것을 염려합니다.  자신의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생각과 말이 있어서 그 말과 생각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가야 할텐데, 자신의 삶의 환경과 상황에 의해 결정되기 쉬운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굴과 같이 소원의 중심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소원이

아굴과같이, 현실적인 문제가 아닌 오직 하나님, 자신의 필요가 아닌 오직 하나님께 초점 맞춰야 합니다.  고난이나 고통, 쾌락이나 즐거움, 사람들과 함께 있거나 혼자 있을 때, 부할 때가 가난할 그 모든 때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자의 마음이자 예배자의 삶입니다.

 

4.     이와 같은 때에….

 

이와 같은 때에…”라는 찬양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내게는 이와 같은 때는 언제였던가?  도저히 찬양할 수 없고, 기도할 수 없고, 예배할 수 없을 것 같은 때는 언제였던가?  그 때 나는 노래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예배했던가?  아니면 원망하고 절망하고 쾌락하고 즐기고 교만하고 하나님을 떠났던가?  

 

우리 각자에게는 이와 같은 때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팍팍한 삶은 이와 같은 때’, ‘이렇게 어렵고 힘이 든 삶의 연속인지도 모릅니다.  가정이 행복의 샘이 되지 못할 수 있고, 교회가 가장 큰 시험과 시련의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사업에서 큰 아픔을 경험할 수도 있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아픔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혹 잘되고 성공하는 것이 큰 시험일 수도 있습니다.  잘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이별할 수 있습니다.  혹 자신조차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죄의 수렁에서 헤매기도 합니다.  죄와 욕심을 이길 수 없다고 스스로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수치와 자책으로 이 세상 끝에 숨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합니까?  무엇을 합니까?  아굴은 바로 그때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 때 찬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때, 찬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때, 예배가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내 기도와 음성을 듣지 않는다고 느낄 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니다.  우리 다시 함께 찬양을 하시겠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난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에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이와 같은 때에 난 기도하네 조용히 기도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에 난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주님 감사해요 감사해요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X2)

 

잠시 말씀과 찬양을 묵상하시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가 언제 어디에 있던지 거룩한 예배자의 마음으로 살게해주십시오.  삶의 조건과 환경이 우리의 마음이 주인이 되지 않게 하시고, 어디에 있던지 어떤 상황 속에 있던지, 어떤 어려움이 우리 앞에 있어도 우리는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내 삶을 인도하시고 그 어떤 때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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