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18. 특급 사랑(롬 1:7) | 이응도 목사 | 2012-11-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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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 : 로마서 1장 7절 말씀 * 제 목 : ‘특급 사랑’ 지난 여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한인 선교 대회’에 참석했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선교사님들이 자신의 선교 사역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선교 사역을 소개할 선교사들은 많고 시간은 제한되어 있어서 한 15분 내에 자신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 중에서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다곰바’라는 종족을 선교하는 ‘이태현 선교사’가 있었습니다.(사진1) 이분은 좀 우락부락하게 생겼고, 목소리도 걸걸하니 선교사 같지는 않았습니다. 강단에 올라서더니 시간 관계상 최근에 발견한,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한 시를 한편 읽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읽었습니다. 내가 필요할 땐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언제든지 달려갈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르면 한참을 생각해보겠지만 당신이 나를 불러준다면 무조건 달려 갈거야 당신을 향한 나의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당신을 향한 나의사랑은 특급 사랑이야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거야 무조건 달려갈거야
박장대소가 터졌습니다. 경건해서(?) 유행가를 모르는 성도들은 왜 웃는지를 몰랐지만, 곧 다 알게 되었습니다. 이태현 선교사가 한 소절을 걸쭉하게 불렀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박상철이라는 트로트 가수가 불러서 인기를 얻었던 ‘무조건’이라는 유행가의 가사입니다. 이태현 선교사는 짧게 자신의 사역을 요약했습니다. 아프리카 가나는 98%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고, 그 중에 다곰바족은 마약과 매춘, 폭력과 성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희망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만나고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 중에서 다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는 안타까운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이 노래처럼 그들의 형편이나 상황을 보지 않고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다시 가나의 다곰바에게로 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다곰바족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간절한 부르심을 마음으로 듣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시카고에서 필라델피아로 12시간 운전을 하면서 이태현 선교사의 표정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당신이 부르면 나는 무조건 달려갑니다.”라는 그의 고백을 기억하며 그 노래를 중얼거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과연 어떤 도전과 은혜가 있었기에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이교도의 땅에 생명을 걸고 달려간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계속 고민하며 왔습니다. 그리고 요즘도 저도 가끔씩 이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에 있는 “짜라라짜라라라 짠짠짠~~”을 함께 하면 더 흥겹습니다. 1.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다.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먼저 로마서 1장 1-6절은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첫째는 “편지를 쓴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시면,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다고 고백합니다. 2절에서 바울은 ‘복음’이란 무엇인지를 정의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입니다. 3절과 4절은 예수가 누구인지를 설명합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아들이요,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5절과 6절에서 복음으로 교제하고 있는 바울을 비롯한 선교팀과 로마 교회에 대해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은혜를 주시고 사도의 직분을 주셔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로마 교회는 그 이방인 교회 중 하나입니다. 특히 6절을 주목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함께 읽읍시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롬 1:6)
세상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 그들을 일컬어서 무엇이라 할까요? 예, 바로 성도요 교회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부르심을 입어서 거룩한 무리, 즉 성도가 되고, 함께 모여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2. 로마에서 교회가 되다. 그리고 본문 7절에서는 한 교회를 직접 지칭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바로 로마에 있는 교회입니다.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로마서의 수신자이면서 주인공들입니다. 바울은 지금 이 말을 의미심장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수요일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셨던 일곱 마디의 말씀을 차례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먼저 저 자신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십자가라고 하는 특별한 정황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수요일과 포도나무 성경 공부에서 이미 설명했습니다만,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가장 거리가 먼 곳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죄와 악과 관련이 없습니다. 하늘로 치면 우리가 측량할 수 없이 높은 곳에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 땅에 발붙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악하고, 사람들조차도 용납할 수 없는 죄인을 인류는 오랫동안 사형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제거해왔습니다. 함께 살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형 제도 가운데 가장 처참하고 비극적인 죽음이 있다면 바로 십자가입니다. 사람을 때리고 거의 죽게 만든 다음 발가벗겨서 십자가 형태를 한 나무에 매달고, 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리고 못을 받아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저 육체적인 고통 뿐만 아니라 사람이 가진 모든 감정을 다 사용하여 치욕과 공포 속에 죽어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십자가 사형을 당하셨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가장 거룩하고 높은 곳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들조차 용납하지 않는 가장 낮은 치욕의 십자가에 매달린 것입니다. 하늘 끝의 하나님과 땅 끝 십자가 - 하나님의 마음에 두신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먼 거리를 극복해야 합니다. 로마는 어떤 곳입니까? 군사력으로 세계를 장악했습니다. 성적으로 타락하고 온갖 우상을 섬겼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쾌락이 극대화된 세상이 바로 로마였습니다. 어쩌면 이 땅에 건설된 나라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와 가장 거리가 먼 나라였습니다. 그 나라의 권력이 유대를 정복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교회가 섰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가장 거리가 먼 나라, 가장 악하고 부패한 인간의 제국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로마서 1장 7절,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라는 말은 그러므로 대단한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가장 먼 거리에 있던 로마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졌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3. 우리를 향하여 달리시다. 저는 조금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나라가 로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바로 그곳에 교회가 섰다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의 제국으로 달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십자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누가 매달려 있습니까? 예,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으로 달려오셔서 이 세상이 버린 자리, 이 세상조차 멸시하는 자리에 스스로 제물이 되셨습니다. 로마에 교회가 선 것은 십자가에 예수님에 매달린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지금 로마서 1장은 참으로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과 십자가 사이에 있는 그 길고 먼 거리를 극복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의 제국에 세웁니다. 십자가 위에 구원의 길을 엽니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고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알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아셨고, 무능함을 아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부르기 전에 주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셨고, 우리에게 먼저 달려오신 것입니다. 하늘이 이 땅에 달려와 하늘로 가는 길을 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달려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제가 제일 즐겨 암송하던 시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였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내가 먼저 이름을 불러주고 의미를 부여해야 비로소 내게 꽃이 되고, 사랑이 되고, 의미있는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가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기도하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자리로 먼저 나아가셨고, 제물이 되셨고, 성도를 부르시며,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허락된 복음입니다. 4. 나를 부르소서! 이태현 선교사는 자신에 대해 잠시 소개했습니다.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많은 방황을 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 속도 참 많이 상하게 했습니다. 늦게 복음이 그 심령에 들어와 신학을 하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외면하고 부인할 때에도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어느 사랑이 더 큰 사랑입니까? 내가 부르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고, 외면하고 부인하고 배반했는데도 내가 다가와 준 사랑이 큽니까? 그 사랑을 깨닫고 알고 보니 너무 큰 사랑이어서 받은 사랑에 감격하여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랑이 큰 사랑입니까? 이태현 선교사는 자신이 알지못할 때에 먼저 다가와 주신 하나님의 큰 사랑을 잊지 못하여 하나님이 부르시면 어디든지 언제든지 달려가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사랑은 바로 ‘특급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하늘 가장 높은 곳, 그보다 높은 곳에서 이 땅에 가장 낮은 곳, 그보다 천하고 수치스러운 곳에 아들을 던지셨습니다. 그 먼 길, 그 어려운 길을 우리를 위해 달려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 차이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입니다. 그 먼 길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부르십니다. 가장 천하고 낮은 곳에서 일어나 우리 주님의 손을 붙들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살아가자 말씀하십니다. 특급 사랑을 받은 우리, 말로 다할 수 없는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우리들이 이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깨닫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자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이렇게 읽혀야 합니다. “필라델피아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달려오셔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가 되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차례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여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주님의 눈물이 있고 주님의 가슴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사랑의 사랑도 이러한데, 우리 주님을 향한 사랑에 무슨 이유와 조건이 필요하겠습니까? 2012년에도 많은 사랑을 받은 우리,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더 큰 사랑과 은혜 가운데 우리 주님께 달려가는 초대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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