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2. 예수, 우리의 이웃 - 1. 이웃이 되신 하나님 | 이응도 목사 | 2012-12-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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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 : 룻기 4장 13-17절 말씀 * 제 목 : 예수, 우리의 이웃 - 1. 이웃이 되신 하나님
저의 군대 이야기에는 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최** 대령이라는 분입니다. 제가 공군 교육 사령부 의장대장으로 군복무를 시작할 때 교육 사령부의 수송, 보급, 시설, 헌병 등 사령부를 지원하데 필요한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기지 전대장’이었습니다. 공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종사로 근무했었고, 곧 별을 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투기 조종사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해서 여전히 조종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기지 전대에는 장교, 하사관, 사병을 포함해서 약 100명 정도의 부대원이 있었습니다. 4개의 사무실로 나뉘어져서 각각의 업무를 봅니다. 그런데 건물 중앙에 화장실이 하나 있었고, 그 화장실에는 소변기가 3개, 좌변기가 2개가 있었습니다. 좌변기와 소변기 중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것에는 ‘전대장용’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침부터 부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전대장을 보필하는 중령인 작전과정과 소령인 상황실장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사병들을 족치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그날 아침 전대장이 전용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누군가가 먼저 사용한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전대장은 감히 누가 내 화장실을 사용했느냐고 노발대발했고, 부대는 한동안 살얼음을 걷는 듯 했습니다. 10여명의 예하부대 지휘관들이 다 모였습니다. 전대장은 씩씩거리며 훈시를 했습니다. 대령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별을 다는 일이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일인지, 지금 곧 별을 달 자신이 사병들과 함께 화장실을 쓰는 일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세상 참 좋아졌지... 엉망진창이야... 이제 곧 장군이 될 사람 옆에서 감히 방위병이 오줌을 눠...? 이놈의 군대가 어떻게 되려고 말이야!!!” 저는 그분이 이후에 장군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분이 장군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대 후에 예비군 훈련을 갔더니 그날 강사가 최** 대령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면서, 죄송한 마음이지만, 아직 대령인 것이 대해서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그런 것 같습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쉽게 교만해집니다. 대접을 받으려 합니다. 군림하고 다스리고 올라서려고 합니다. 친구로 지내다가도 내가 좀 잘되면 금방 얼굴을 바꾸고 가르치려고 들기도 합니다. 낮아지는 일, 섬기는 일, 헌신하는 일은 그래서 참 어렵습니다. 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성경이 소개하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 정말 드라마틱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바로 룻기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감미롭고 감동적이면서 반전에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이번 12월에는 매 주일 조금씩 다른 관점과 주제로 룻기를 통해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룻기는 사사 시대의 한 가정을 소개하면서 시작합니다. 남편은 엘리멜렉이요 아내는 나오미, 그리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 지역에 흉년이 들었고, 그들은 고향 베들레헴을 떠나서 모압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두 아들은 모압 여인이었던 오르바와 룻과 결혼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가정의 모든 남자들이 차례로 먼저 죽습니다. 나오미와 오르바와 룻, 세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두 며느리에게 각각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합니다. 오르바는 울면서 고향으로 돌아갔고, 룻은 나오미와 함께 죽은 남편의 고향인 유대땅 베들레헴으로 오게 됩니다. 이쯤에서 여러분은 눈치를 챘어야 합니다. 엘리멜렉의 가정이 원래 살았던 곳이 어디라구요? 예, 베들레헴입니다. 나중에 남자들이 다 죽고 나오미와 룻이 돌아온 곳이 어디라구요? 예, 역시 베들레헴입니다. ‘유대땅 베들레헴’, 뭔가 좀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여기는 누가 태어난 곳일까요? 다른 말로 하면 누가 이 세상과 얼굴을 대면하여 만난 마을일까요?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이 세상과 처음으로 만난 마을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때로부터 약 1100년 전에 이 마을은 또 하나의 진짜, 정말, 아주, 굉장하게, 엄청나게 중요한 만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만남의 주인공은 바로 룻과 보아스입니다. 룻과 보아스는 원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룻은 모압 족속으로 이방의 여인입니다.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혼자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혼자된 여성입니다. 가난해서 구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베들레헴에서 아주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다의 후손이면서 다윗의 증조 할아버지가 됩니다. 집안에서 부리는 일꾼들이 많았던 것을 보면 부자였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의 여인을, 그것도 남편이 죽어서 혼자된 여인을 취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라는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그 노래 가사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을 나는 잊을테요.”입니다. 하지만 보아스와 룻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혈통과 신분의 차이, 사회적 지위와 삶의 상황의 차이를 극복합니다. 만나기에 너무 먼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이루는 사랑이 더 아름답고 그 거리를 넘어섰기에 열매는 더 빛이 납니다. 2. 거리를 극복하는 힘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이 두 사람은 그 먼 거리를 극복하고 만나고 사랑을 이루게 되었을까요? 룻기에는 이들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던 세 가지 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율법을 지키려는 마음 보아스와 룻의 만남이 성사될 무렵 성경이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정해주신 규례입니다. 당시에 전쟁이나 역병, 기근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가정의 가장이 먼저 죽을 때 남은 여성이나 자녀들이 학대를 당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법을 주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약자에 대한 보호였습니다. 그래서 가장이 먼저 죽는 경우 남은 가족들에 대해 그와 가장 가까운 친척이 남은 가족들을 책임지는 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이 소위 ‘계대 결혼법’(繼代 結婚法)으로 불리는 법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법을 잘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법이 있었지만 우리 한 가족도 먹고 살기 힘든데, 다른 가족까지 책임지는 것은 여전히 힘이 듭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이 법을 지켰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주신 법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긍휼히 여기는 마음 성경이 보여주는 두 번째 마음은 ‘긍휼’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누구인지 모를 때부터 긍휼의 마음으로 선대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법 중에서 추수를 할 때 농사할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남겨두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의 종들이 추수를 마치면 나그네나 가난한 사람들이 다시 와서 벼이삭을 주워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룻은 그런 여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보아스는 그때 룻을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서 더 많은 이삭을 주워갈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 마음은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과 통합니다. 이 마음으로 그들은 사랑을 이루게 됩니다. 3) 책임지려는 마음 세 번째 마음은 책임지려는 마음입니다. 사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에게는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이 두 과부를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책임집니다. 나오미를 함께 책임집니다. 하나님은 보아스는 책임감 있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서의 영광을 함께 허락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신의 삶과 이웃의 삶에 대한 거룩한 책임감을 가진 일꾼을 찾고 있습니다. 3. 이웃이 되기로 결심하다. 사실 룻기는 그저 평범하고 재미있는 한 가정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한 가정의 이야기를 성경으로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룻기가 단순한 한 가정사가 아닌, 예수님과 교회의 만남을 보여주는 그림자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설교의 서두에 소개한 한 군인 이야기를 떠올려보십시오. 그 군인은 아주 특별하게 나쁜 군인일까요? 사실 그의 모습이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입니다. 계급이 높거나 사회적 신분이 인정되거나 재물이 많거나... 우리는 틈만 나면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려 하고 자랑하려 하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죄와 허물로 죽어가는 불쌍한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결심을 하십니다. 우리를 살리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그 결심을 실행하기 위해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 약속을 맺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기로 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사람이 되어 이 땅에 내려왔고, 사람들의 이웃으로 살다가, 사람의 손에 죽임 당했습니다. 나를 향한, 우리를 향한,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결심이 단 한 번도 흔들리거나 변함이 없이 이 땅 위에서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이웃이 되신 것입니다. 저는 조금 전에 룻을 향한 보아스의 마음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책임을 지는 마음 - 이 마음이 바로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십자가를 지되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와 함께 눈물 흘리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거룩한 결심으로 우리는 성도가 되고 교회가 되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지금 이렇게 예배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4. 우리들의 이웃 저는 2013년 목회 계획을 세우면서 2013년의 표어를 ‘예수, 우리의 이웃’으로 정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이웃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보아스가 룻과 결혼을 했다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사건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행복의 가능성도 없이 보였던 룻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랑하고 아내로 맞이하였던 보아스와 같이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따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보다 악하고 허물 많은 세상에 직접 찾아오셔서 이웃이 되어주셨습니다. 내가 가진 어떤 자격이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이 약속과 그 마음에 두신 사랑으로 인해 이웃이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초대교회의 2013년이 하나님의 이웃되심을 확인하는 좋은 시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를 선대하시는 하나님과 친근한 사귐이 있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딱 한 걸음만 더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한걸음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처럼 세상의 좋은 이웃이 되기로 결정하고 이웃을 향해 내딛는 딱 한 걸음입니다. 너무 많은 일, 너무 역량에 지나친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이 되는 일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랑하고 섬기는가에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주님께서 다 이루시고 하신 일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를 이웃 삼아주신 우리 주님의 마음을 배우고 알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거룩한 마음, 이웃을 보며 불쌍히 여기고 섬기고자 하는 긍휼의 마음, 그리고 이웃의 문제와 아픔을 나의 것으로 인정하고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결정하는 책임지는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함께 따라해 보시겠습니까? “예수, 우리의 이웃!” “성도와 교회, 세상의 이웃” 이 두 구호 사이에 있는 연결고리를 아시겠습니까? 우리의 이웃이 되어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우리는 세상의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이웃되신 주님과 어깨를 걸고 세상을 향해 함께 사랑의 발걸음을 시작하는 초대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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