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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3. 예수, 우리의 이웃 - 8. 나비효과 이응도 목사 20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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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3.

 

* 본 문 : 룻기 116-17

* 제 목 : 예수, 우리의 이웃 - 8. 나비효과

 

1972년에 미국의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츠은 미국 과학부흥협회에서 예측가능성-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라고 하는 제목의 강연을 합니다. 그때 그가 처음 사용했던 말이 바로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입니다. 과학적으로 이 말은 초기 조건의 민감한 의존성에 따른 미래결과의 예측불가능성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로는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는 예측할 수 없는 커다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같은 제목으로 나비효과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제 한국 쇼 프로그램을 보는 중에 재미있으면서도 약간은 고민이 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잠시 함께 보실까요?(영상 자료1 - 황금어장 / 라디오스타 19일 분 / 5:01~6:34)

 

홍석천이라는 연예인은 여러분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한국 연예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커밍 아웃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가 커밍 아웃이라는 말 자체를 잘 알지 못할 때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커밍 아웃이라는 것이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이후 출연 정지 등의 다소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요식업계의 CEO가 되었고, 연예계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꿈이 무엇입니까? 표본을 만드는 것 즉, 영향력 있는 삶입니다. 용산 구청장이 되고 싶다는 그는 정치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자신과 같은 사람도 이렇게 CEO가 되고, 구청장이 되어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꽤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는 21세기에 적합한 리더십에 대한 정확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카리스마나 권력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리더십이 아닙니다. 어떤 삶을 살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인지 표본을 보여주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입니다.

 

요즘 한국 교회는 참 많이 바쁩니다. 한국 교회의 감소추세에 대해 걱정하랴, 정치에 간섭하랴,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 변호하고 변명하랴, 교단 내부의 문제로 서로 다투고 비난하랴.... 그렇게 바쁜 중에 한국 교회에 쏟아지는 수많은 비판과 손가락질에 대해서 교회는 참으로 무력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교회는 한국 사회의 양심도 아니고 거울도 아니며 발전의 동력도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 최초의 연예인 커밍 아웃을 했던 한 사람이 자신의 꿈을 말하면서 스스로 표본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삶으로 영향력을 끼지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교회가 그의 이러한 말을 그저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교회가 인정할 수 없는 생각과 삶이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고, 오늘 한국의 한 쇼프로그램에서 표본과 영향력에 대해 말하고 있는 한 동성애자의 꿈이 다음 세대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떤 큰 돌풍으로 나타나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내가 언제 그 일을?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설교에서 사용하던 예화 중에서 아주 고전적이면서 인기 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전에 한번 소개한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런 내용입니다. 유년 주일학교를 다니던 한 어린 아이가 예수님을 정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느냐고 선생님께 질문을 했더니 선생님은 다소 무책임하게 기도를 하면 만나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내일 낮에 너희 집을 방문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꿈에서 깬 아이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집을 청소하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이 지나고 점심 때가 지났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도 예수님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둑어둑해지자 아이는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은 안오시나보다...’ 그런데 그 때 누가 딩동~하고 벨을 울립니다. 문을 열어보니 거지가 서 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벨을 눌렀으니 밥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 거지를 집으로 오라고 해서 예수님을 위해 준비한 밥을 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다시 꿈을 꿉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이는 예수님께 울면서 항의했습니다. “예수님, 왜 오신다고 해놓고 안오셨어요.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안갔다고? 나는 분명히 너의 집에 가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단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게 해줘서 참 고맙다.” 그리고 성경 본문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25:34-40)

 

물론 이 예화와 적용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알고 보니 부처였더라는 이야기는 불교에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중요한 복음의 원리 하나가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바로 이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입니다. 이 한 사람과 만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우리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 내 삶 속에서 이 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한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오늘 나의 삶의 현장에서 이 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평강과 은혜를 나누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위대한 비전을 꿈꿀 수도, 성취할 수도 없습니다.

2. 한 사람을 위한 선택

 

오늘 본문에서 룻의 결심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결정은 단 한 사람에 대한 결정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변화시키겠다,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결심이 아닙니다. 혼자 남은 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섬기겠다는 결정입니다. 이름 없는 한 이방 여인의 늙고 병든 한 시어머니를 위한 선택, 이 장면을 성경이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룻의 삶과 선택을 기록으로 남기시고, 우리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모든 교회와 성도들로 하여금 읽고 알고 믿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선 룻의 한 사람을 위한 선택이 참으로 선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대부분의 선택이 그렇습니다. 옳은 선택, 의로운 결정은 대부분 나 자신의 손해와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내가 과연 얼마나 옳은 선택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내가 이 선택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반면 나를 위한 선택, 이기적인 결정은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방치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과 결정은 늘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아픔과 눈물에 내가 동참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또한 룻의 선택의 계속되는 결과에 주목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룻의 선택이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 주목하는 것입니다. 룻에게 있어서 시어머니에 대한 의무가 우선이었는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두 결정에서 한 결정은 다른 결정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러한 결정은 그녀의 삶을 하나님의 언약의 영역으로 끌어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들어왔더니 언약이 그녀에게 새로운 만남을 허락합니다. 그 만남은 거룩한 자녀를 생산하게 합니다. 마라의 삶을 나오미의 삶으로 변화시킵니다.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과 제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있습니다. 3000년 전의 한 불행을 당한 여인의 결정 - 그것은 그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도하고 있고, 마라로 변했던 시어머니의 삶을 다시 나오미 즉 기쁨의 삶으로 회복시키고 있고, 새 남편을 만나서 그 남편의 인생을 거룩한 계보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고, 다윗의 조상이 되어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고 있으며, 예수의 조상이 되어 인류의 역사에 공헌합니다. 이것은 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영향력입니다.

 

3. 믿음의 나비효과

 

저는 성경이 보여주는 이 현상을 믿음의 나비효과라고 이름 붙여봤습니다. 한 사람의 다른 한 사람을 위한 선택은 자신과 그 사람과 그리고 함께 살아가고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결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성경이 룻의 선택을 통해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는 이 믿음의 나비효과가 과연 우리의 삶에서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의 선택과 결정이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다른 결정과 선택을 만드는 것은 믿음의 나비효과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비신앙적인 선택, 어리석고 악한 선택을 하게 될 때 그 결과 또한 같은 영향력으로 나와 가족과 교회와 이웃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나의 잘못된 선택과 판단의 날개짓이 토네이도가 되어 내게 되돌아오기도 하고, 세상에 불어 닥치기도 합니다.

 

,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에 대해서 신중하게 질문하셔야 할 시간입니다. 나는 나와 함께 사는 가족들, 나의 자녀들,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믿음의 나비효과를 만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는 믿고 교회는 출석하지만 구체적인 나의 일상적인 선택과 판단은 비신앙적인 날개짓이 되어 나 자신과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나와 함께 신앙 생활을 하는 교회 공동체는 나의 신앙적인 선택으로 말미암아 더 건강해지고 더 성장합니까? 나의 비신앙적인 생각과 행동의 날개짓에 때로 힘들어 합니까? 나는 이 세상에 살면서 어느 한 사람에게 그들의 삶의 변화의 시작을 만들어낸 일이 있습니까? 나의 희생과 헌신 혹은 사랑으로 돌이키고 변화되고 성장하여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의 거울이 되는 삶의 영향력을 발견하신 일이 있습니까? 혹시 나의 무모하고 비신앙적인 날개짓으로 고통당하고 아파하는 나의 영향력 안에 있는 내 아내와 남편, 나의 자녀들, 내가 섬겨야 할 성도들, 나의 이웃들, 나와 이웃의 미래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4. 위대한 선택을 합시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2013년을 시작하면서 온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구호 하나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 구호를 위대한 선택을 합시다!’로 정했습니다. 위대한 선택, 내 가정과 교회와 이웃의 삶에 복음의 토네이도를 몰고 올 수 있는 믿음의 선택입니다. 그 선택은 대단히 거창한 계획과 대단히 거룩한 결심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계보가 룻이라는 참으로 연약한 한 이방 여인의 순전하고 맑은 믿음의 선택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오늘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한 사람을 위한 헌신, 아주 작은 일에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나의 헌신과 믿음에 하늘의 능력을 더하셔서 나의 선택을 위대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헌신을 거룩한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의 영광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으로 오늘의 작은 선택에서 승리하고 내일의 더 큰 은혜와 영광의 삶을 사는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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