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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19. 요셉프로젝트2 - '마르다의 마음' 미디어선교팀 201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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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19.

 

본 문 : 누가복음 1038-42절 말씀

제 목 ; 마르다의 마음

 

주기도문에 대해서 4주 동안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주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 것처럼 2013년 가족 수련회를 한 주 앞두고 있습니다. 수련회가 23일이기는 하지만 사실 아주 짧습니다. 가서 나누어야 할 말씀이 많고 생각할 것도 많습니다. 또 서로 사귀고 섬겨야 할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은 수련회에서 해야 할 프로그램에 대한 사전 이해를 돕는 말씀을 함께 생각할까 합니다. 물론 가족 수련회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이번 수련회는 요셉 프로젝트2’라는 제목으로 진행합니다. 지난 해 모두가 즐겁게 요셉 프로젝트를 잘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고, 좀 더 생각할 것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번 요셉 프로젝트 2에서는 Case Study를 중심으로 진행하되, 지난 해보다는 좀 심플한 분석의 틀을 제공하고 그 원칙에 의해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여러분이 사용할 분석의 틀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나누겠습니다.

 

4가지 창으로 보다.

 

먼저 그림을 보면서 개념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도표 1)

 

지난 3월 상담 학교에 오신 분들은 이 그림을 사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 문제를 만나면 그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답을 찾을 것인지에 대해 많이 혼란스러워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불평하는 마르다를 꾸짖으셨습니다. , 그렇다면 마르다는 요리를 계속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마르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마리아이기를 선택할까요? 마르다이기를 선택할까요? 지금 함께 사용할 이 4개의 창으로 마르다의 마음을 찾아보시지요.

 

먼저 이 창들의 개념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하나의 큰 창은 네 개가 작은 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에 있는 1번창의 이름은 상황(Situation)’입니다. 문제가 발생한 상황, 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을 말하는 겁니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문제에 대한 이해 또한 어렵습니다. 문제는 늘 상황에 깊이 복잡하게 뿌리 내리고 있고, 사람의 마음 또한 상황에 지배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왼쪽 옆에 있는 2번창의 이름은 반응(Response)’입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를 살피는 것입니다. 지금 함께 예배드리는 형제 여러분! 집에 혼자 있을 때 배가 고프면 어떻게 하십니까? 게다가 밥통에 밥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어떤 분은 아내가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어떤 분은 라면을 끓입니다. 어떤 분은 밖으로 나가서 사먹습니다. 어떤 분은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왜 밥도 안해놨느냐고,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냐고 화를 냅니다. 사람마다 각각 반응이 다릅니다. 왜 그런 반응의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요?

 

바로 해석(understanding)’의 차이입니다. 반응 옆에 있는 창, 해석의 창을 보십시오.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 아니야!”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집에 혼자 있고, 배가 고파도 절대 밥뿐만 아니라 라면도 끓이지 않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 분들은 이미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관한 하나의 해석의 체계를 마음 속에 두고 있는 분입니다. 마음 한편에서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남자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야...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니까 그래... 나는 밖에 나가서 돈을 벌고 아내는 당연히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줘야 해...’ 그리고 마음의 다른 한편에서는 내가 한번 스스로 먹을 것을 준비하면 나를 얕잡아볼거야... 다음에 또 시킬거야....’ 자신이 처한 상황과 다른 사람들의 반응, 그리고 자신의 역할에 대한 해석의 체계는 우리를 콘트롤합니다.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상대방의 말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해석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해석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리거나 과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 해석을 놓고 설명하고 다투고 분노합니다. “내 말을 그게 아니라니까...” “왜 말귀를 못알아들어...” 이런 말들은 서로에게 있는 해석의 차이에서 오는 답답함들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motivation)’의 창입니다. 배가 고파도 직접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 남성들의 고집은 대부분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옵니다. 차라리 내가 나가서 사먹지 직접 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아내가 나를 그만큼 인정해주고 섬겨주기를 원하는 마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저는 가끔씩 아내나 자녀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못해서 끙끙대는 가부장들을 만납니다. 왜 그 말을 못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모든 게 내가 잘못한 게 될 거고... 나중에 나를 어떻게 보겠어요. 얼마나 나를 무시하겠어요.” 그런데 그들의 내면에는 빨리 화해하고 좋은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많습니다. 다시 따뜻한 가장으로 인정받고 대접 받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짧은 영상 하나를 보여드릴까 합니다. (영상자료 1 / 성난 황소가 된 아내 / 30:49~33:33) 이 두 사람의 마음 속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죄송해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을 하면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자신을 무시할 것이라는 해석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상담자의 도움으로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했을 때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들은 내면의 소리, 자기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소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2. 환경을 이기는 힘

 

조금 전에 보여드린 영상의 주인공이 되는 가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번 가족 수련회에서 자료로 사용할 영상이기 때문에 가족 수련회를 할 때 좀 더 자세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만, 이 영상에서 남편에 처한 상황은 참 안됐습니다. 아내는 이미 성난 황소로 변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비난하고 멀어져 있습니다. 남편은 집에서 자기 방에만 갇혀서 삽니다. 가족들이 다 자기를 싫어하고 무시한다고 이미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가 처한 상황이 그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그런 행동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면 거절당할 것이고, 더 무시를 당할 것이라는 해석 때문입니다. 자신의 소원인 가족들과의 관계의 회복은 점점 멀어집니다.

 

그런데 상담을 통해서 남편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소원을 확인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경받는 아버지요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그가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결단은 바로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소원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일입니다. 거절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이기고 자신의 소원을 아내와 자녀들을 향해 오픈하고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때 비로소 자신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환경이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환경이 자신의 반응을 결정하던 삶에서 자신의 마음의 소원이 해석의 체계와 반응을 변화시키게 되고, 결국 가정과 가족관계라는 절망적 환경이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3. 마르다의 창

 

제가 조금 전에 소개한 4개의 창에 마르다의 이야기를 대입해보시겠습니까? 함께 그림을 그려보시지요.

 

, 먼저 지금 마르다는 마음이 평안합니까? 복잡합니까? 그녀의 마음이 복잡한 것은 그녀의 예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 때문입니까? 그녀가 처한 상황 때문입니까? 무엇이 그녀의 정서적인 반응을 결정할까요?

 

1) 마르다의 상황

 

먼저 상황을 정리해볼까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마르다의 집으로 왔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먼 길을 걸어왔을 것이고, 예수님은 오랫동안 바리새인과 제사장들로부터 많은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마르다는 그런 예수님을 잘 섬기고 싶었고, 맛있는 음식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변수가 등장합니다. 자신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턱 밑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아마 자매님들은 마르다의 이런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 마르다의 반응

 

일을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예수님 가까이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보니 마르다는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네가지를 봤나.....” 마르다는 예수님께 달려가서 따집니다. “예수님, 저는 이렇게 일하고 있는데, 왜 마리아는 예수님 턱 밑에서 말씀을 듣고 있나요?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마리아도 일하게 해주세요.” 마르다의 감정과 행동을 각각 생각해 볼까요? 그녀의 감정은 지금 어떻습니까? 분노...가 있습니다. 질투...도 있습니다. 자신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 섭섭함...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수고보다 마리아의 경청을 더 인정하는 것 아닌가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행동합니까? 자신과 마리아를 비교합니다. 예수님께 마리아를 고자질합니다. 자신의 수고를 과시합니다.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것을 빼앗으려 합니다. 모든 상황을 자신이 콘트롤하려고 합니다.

 

3) 마르다의 해석

 

마리아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녀의 상황에 대한 해석 때문입니다. 먼저 그녀는 예수님의 마음을 자신의 뜻대로 해석했습니다. 예수님이 일하고 있는 자신보다 말씀을 듣는 마리아를 더 사랑하고 인정할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마리아의 생각도 자신의 뜻대로 해석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거지요. 자신이 하는 수고를 예수님께 알리고 마리아를 부엌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해석한 방식대로 상황을 만들어가려 합니다.

 

4) 마르다의 소원

 

마르다는 지금 질투하고 분노하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마르다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잘 섬기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으로 일하지 못했습니다. 그 마음으로 일하고자 했지만 마리아라는 환경이 그녀의 마음을 지배해버렸습니다. 마음의 평강이 깨졌고, 예수님을 섬기고자 하던 마음도 흔들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분주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좋고, 말씀을 듣는 일도 좋습니다. 비교하거나 질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4. 마르다의 선택

 

이제 마르다는 선택해야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경이 마르다의 그 이후의 선택에 대해 기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 판단을 말씀을 읽고 있는 우리들에게 맡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마르다가 되어 그 이후의 행동을 선택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여러분이 마르다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먼저 계속 환경의 지배를 받으시겠습니까? 지금 마르다에게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환경은 무엇입니까? , 여동생 마리아입니다. 지금 마르다의 집은 참된 예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배는 주님과의 교통함이면서 잔치입니다. 집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말씀이 있고 찬양이 있고 풍성한 음식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배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예배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장 열심히 일하는 마르다입니다. 예배를 가장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마르다, 가장 큰 은혜를 받아야 할텐데 오히려 시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이런 상황들이 교회에서 참 자주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교회로 함께 모여 예배하고 섬기고 교제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고 교제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제일 열심히 일하고 가장 많이 섬기고 헌신하고 그리고 시험에 빠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고, 잘못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고, 자신의 내면의 동기를 바르게 읽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든 마르다는 새로운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선택 말입니까?

 

만일 그녀가 환경의 지배를 계속 받기로 선택한다면 그녀의 선택은 분명합니다. 마리아를 공격해야 합니다. 그녀를 데리고 부엌으로 가야 합니다. 자기만큼 일을 시켜야 합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그녀를 예수님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데려다놔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더 많이 일하는가보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선을 더 많이 받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그녀는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요? 마르다의 소원은 마리아를 제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로부터 더 큰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받아야 할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마르다는 그 일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환경의 지배를 받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르다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십니다. 많은 일로 마음을 분주하게 하지 말고, 네가 선택한 일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맡은 일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각자 은혜 받은 대로, 받은 은사대로, 허락하신 능력으로 섬기고 나누고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성장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마르다는 섬기고 봉사하고 헌신함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이 순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 소원이 바른 것이라면, 그 소원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녀는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그녀는 예수님을 예배하고 합당한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선택은 주니이 그녀에게 허락하신 아름다운 소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충성을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사역을 빼앗길 이유도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지금 일하고 있고, 이 일은 주님을 섬기는 가장 좋은 일입니다. 기뻐하고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마르다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선택을 할 때 해석이 변화되고 행동이 변화되고 환경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 가지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것을 해야 할까요? 그냥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되지 왜 마르다를 분석하고 T.V.에 나온 이야기를 분석하고 토론할까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과 영적 지혜로 산다는 것은 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성도와 교회가 믿음으로 살되, 지혜와 더불어 살기를 원하십니다. 공부하셔야 하고 말씀을 읽으셔야 하고 고민하셔야 하고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셔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의 마음을 읽는 방법 중 하나를 읽히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수련회를 통해서 함께 훈련하고 또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은혜로 날마다 더 지혜롭고 신실한 삶을 살아가시를 초대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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